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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Jul 26. 2024

멕이는 사람들(3)

문댕이


월화수목금금불금불금 총무는 언제나 볼금이 좋습니다.

물론 토욜이 있긴 하지만 어디 불금만 할까요? 일욜 오후부터는 시무룩 해지는 건 저 혼자만의 생각이겠지요. 금욜 저녁은 월급에 상여금, 떡상한 주식의 배당금까지 입금된 기분입니다. 아주 빵빵합니다. 여기에 내 맘대로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금욜 저녁의 만찬. 배도 빵빵하게 채워야겠지요. 이 기분으로 일주일을 견디곤 합니다. 그러므로 만찬은 한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남들한테도 비싼 밥을 사는데 제 자신한테는 많은 돈을 써야 하지 않겠어요. 왜냐고요? 나는 소중하니깐요. 그러려고 돈 버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부랴부랴 마트에 들러 만찬에 쓸 재료들을 준비합니다. 오늘은 외쿡음식으로 월남 쌈을 먹으려 합니다. 파자마 바람보다 알록달록 꽃가라 홈드레스(만원)를 입어 줘야겠지요. 쏘주보다는 와인이 더 잘 어울리지요. 그래서 총무는 음식세팅을 성스럽게 준비합니다. 화병에 장미꽃 안아름 꽂아놓는 센스 좀 보소.


라이스페이퍼에 돌돌 말아 소불고기와 야채들을 싸 먹으면 이 세상 맛이 압니다. 오리 훈제까지 추가합니다. 당근, 오이, 새싹채소, 파프리카, 파인애플통조림, 크래미게살, 깻잎, 무쌈, 땅콩소스와 칠리소스... 접시가 늘어날수록 식탁에 알록달록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음식은 색감이죠.


오마나~ 이런 이런~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가 식탁에 떠 있네요. 너무 황홀해 죽습니다. 이렇게 차려놓고 산적 영감이 프로포즈를 한다면.... 아이잉~ 몰러몰러~.

얼른 돌돌 말아먹고 싶어서 허둥지둥합니다. 대충 씻고 머릿수건을 감은 채로 앉았습니다.

커다란 도자기 그릇에 뜨거운 물을 붓고 라이스페이퍼 대여섯 장을 차례로 넣습니다. 한 장 넣고 기다렸다가 돌돌 말아서 먹고 다시 한 장 말고... 우리는 성질 급해서 그리 못합니다. 돈가스도 한 조각씩 잘라서 못 먹습니다. 미리 잘라두고 먹어야 배불리 먹을 수 있지요.

월남 쌈도 몇 장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 더 맛나게 먹을 수 있습니다. 음식은 흐름입니다. 먹다가 흐름이 끊기면 정말 려버립니다. 미리 열댓 개씩 쌓아 올린 후 하나씩 주워 먹으면서 말고, 말으면서 먹고... 나이 들면 먹는 게 낙입니다. 더 나이 들면 먹고 싶어도  먹을 테니깐요.

 집게로 라이스페이퍼를 건지려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개무시합니다. 한 장, 두 장, 세장을 건지려는데 계속 울려댑니다. 우는 애기는 우선 달래야 하죠. 화면에 보니 mrs moon, 이라고 쓰여있네요. 덜컥 전화를 받고 말았습니다.


문댕이

"불금인데 마침 전화를 받으셨네.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기를 돌리니께 다들 부재중이여. 지영이 엄마는 또 튀르키예로 날랐더구먼. 며칠 안 보인다 하면 죄다 해외여행 가고 없으니, 총무는 참 애국자여, 애국자. 집에만 있고..."


ㅡ 예~잘 계셨어요? 중국 여행은 잘 다녀오셨나요?


"이잉~ 엊그저께 우리 둔황 12박 13일 다녀왔잖아. 우루무치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가는데 지질병 나서 죽는 줄 알았어. 가도 가도 모래 사막만 보이는데 나중에 무섭더라고. 총무는 안 가길 잘했어. 다녀와서 어찌나 부대꼈는지 침 맞고 물리치료받았다니까. 두 번 갔다가는 송장 치겠더라고."


ㅡ예~ 다녀오신 분들이 힘들긴 했다 하더라고요. 가는 날에 지진까지 났다면서요.


"아니~무슨 소리야. 총무는 그런데 가보기나 했어? 키질석굴이랑 맥적산 석굴이 얼마나 잘 지어졌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야. 막고굴이라고 알아? 안 가봤으면 말을 말어. 그곳이 중국 불교예술의 결정체인데 힘들긴 뭐가 힘들어. 지진이 나더라도 가봐야하는겨. 죽어라 쌀밥만 먹는다고 해서 되는 거 아녀. 넓은 세상을 볼 줄 알아야지."


ㅡ예, 저도 나중에 은퇴하면 사방팔방 다 다니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히히.


"아니~ 총무는 괜히 돈 버려가면서 그런데 갈 필요 읎~어. 내가 해외 나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여. 자식들이 생일 때마다 보내주고, 결혼기념일마다 남편이 가자니께 어쩔 수 없이 끼대 가본 것인디, 아휴~ 자리는 비좁고 짐짝처럼 다니느라 한번 다녀오면 살이 쭉쭉 빠지잖아. 총무는 유럽 가는 비행기 안 타봤지? 안 타길 참 다행인 줄 알어. 비행기는 탈것이 아니여. 그냥 하늘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고 사람 미쳐 죽는다니께."


ㅡ 그래도 인도랑 중국, 가까운 동남아랑 미국은 다녀와 봐야죠.


"아니 아니~ 내가 해외에다 수억을 쏟아부어서 하는 말인데, 다 쓰잘데 읎어. 그 돈 다 모았으면 지금쯤 강남 아파트 서너 채에다 시골땅 만평은 사고도 남았을 거시여. 지금도 땅을 치고 후회한당게. 요상하게 내가 북유럽으로, 남미지역으로 한 바퀴 돌아올 때마다 신도시 노른자 청약이 다 끝나버렸잖혀. 해외로 끼대 안나가고 착실히 부동산에 투자했으면 지금쯤 준 재벌은 되었을 것이고 만. 긍께 총무는 남들 해외여행 간다고 거치없이 따라나서지 말어."


ㅡ예, 저는 돈도 없고 허리가 안 좋아서 멀리는 못 나가요. 그래도 스위스, 모스크바랑 가보고 싶어요.


어이~총무님. 차~암 답답허네. 내 말 좀 들어봐. 세상밖이 얼매나 무섭고 위험한 줄 알아? 그걸 모르니께 망둥이도 뛰고 꼴뚜기도 뛰는겨. 해외에서는 저녁 8시만 넘으면 위험에서 못 돌아다녀. 여그 저그서 총소리 빵빵 나는디 참말 무섭더라. 나가보니께 한국만큼 좋은 데가 없어. 우리나라가 젤이여.정 가고 싶으면 유튜브 검색해 봐. 세상 구경을 공짜로 시켜준다니께.

 

ㅡ예, 그래서 유튜브 많이 시청하고 있어요. 유튜브만 봐도 내가 가본 것처럼 생생하더라고요. 히히


"아니~ 유튜브만 보면 뭘햐~직접 가서 발을 디뎌봐야지. 천날 백날 남의 여행한 거 뭐 하러 쳐다봐. 눈 나빠지게.  타클라마칸 모래사막을 지나가면 투루판에 명사산 월아천이라는 있어. 모래가 운다는 아주 유명한 곳인디, 아는감? 모르지? 총무가그런델 가봐야 나랑 이야기가 되는데 안 가본 사람한테 설명하려니 내 입만 아프네. 사람이 한번 태어났으면 집을 팔아서라도 꼭 한 번은 가봐야겠더라. 내가 모래사막에서 하얀 원피스 드레스 입고 선글라스차림으로 찍은 사진 밴드에 올렸는데 혹시 봤남? 내가 봐도 영화배우여. 인생사진 하나 건졌다니께."


 예,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저, 저녁 먹으려는 참이에요.


"아~~ 미안. 근데 불금에 뭐 하고 밥 먹남?"


ㅡ히히, 월남 쌈 먹으려고 준비했어요. 가끔 집에서 해 먹으면 맛있더라고요.


"헐~~~ 총무님, 그런 외쿡 음식은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이 아니여. 베트남 가서 먹어야 진짜 월남쌈이지. 카레, 아니 커리는 인도, 스시와 우동은 일본, 갈비는 LA, 그런 말 못 들었는감?  암만 우리나라에서 흉내 낸다 해도 원조 못 따라간당께.  월남쌈은 베트남 가서 먹어야 지대로지. 어디였드라? 삼 년 전에 다낭시에서 먹었나? 하~~ 그 특제  소스랑 야채, 과일들이 천상의 맛이여. 하나를 먹더라도 지대로 현지 것을 먹어야지. 안 그려? 언제 나랑 베트남 가서 월남 쌈도 먹고 일본 나가사키에 가서 짬뽕도 한 그릇 하자고. 사는 건 내가 살게."


ㅡ...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는 안 갈래요!


" 아이 참~ 우리 총무님도 욱하는 승질있네. 승질 내지말어. 승질내면 열 올라와서 덥잖혀. 내 정신 좀 봐. 수다 떠느라고 본론을 꺼내지도 못했네그려. 다다음주에 독거노인 봉사활동 하기로 했잖여? 불참할 것 같아서 미리 연락했어. 호주여행을 10박 11일 다녀오기로 했거덩. 추울 땐 동남아, 더울 때는 호주가 최고지. 여기는 쪄 죽어도 그곳은 선선하니까 피서 겸 해서 다녀오기로 했네."


ㅡ 2인 1조인데, 문여사님이 빠지시면 조를 다시 짜야겠네요. 그다음 달에는 참석하는 거죠?


"아니~또  미안해서 어쩔까? 우리 남편 회사에서 퇴직 기념으로 해외여행을 보내준다고 혀서 북유럽으로 한 달가량 다녀올 것 같어. 5년 전에 갔다 오긴 했어도 공짜로 보내준다는데 안 가면 나만 손해지. 가족들이 다 빠져나가서 집에 아무도 없어. 그래서 말인데 총무님이 하루에 한 번씩 우리 강아지 토미 밥만주고 똥이랑 치워주면 안 될까? 걸어서 십 분 거리잖아. 비 올 때 베란다 문도 좀 닫아주고. 택배 오는 것도 좀 들여놓고... 해줄 수 있남?"


ㅡ?? 저 보고 개밥 주고 똥 치우러  여사님 댁 다니라고요? 빈 집에 어떻게 들어가요? 싫어요.


"아니~~ 바로 옆에 사니까 내가 부탁하는 거잖아. 내가 총무를 믿으니까 맡기는거여. 강아지들 때문에 해외여행 못 갈 수는 없잖혀. 올 때 초콜릿 많이 사다 줄게. 알았지?"


ㅡ그래도 저는 안될 것 같아요. 다른  방법을 찾아보세요.


"아니~총무도 참 데데하네. 그까짓 운동삼아 걸어서 십 분 정도인데, 해외여행 가는 사람 맘을 몰라도 넘  몰라주는구먼. 총무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안 다녀왔으니 사람 맘을 모르지. 그려~그냥 유튜브로 실컷 구경이나 허소! 돈 한 푼 안 들고 얼매나 좋아. 곧 부자되겄고만. 주말에 딸이랑 월남쌈 먹으러 베트남이나 다녀와야겠고만. 월남 쌈 많이 드소.

ㅡ .......... .


노빠꾸부터 왕궁뎅, 문댕이 까지.

이쯤 되면 불금에 총무를 멕이려 셋이서 작정한 거죠 잉~ 식탁에 떠있던 무지개는 이미 사라지고 어둑어둑합니다. 푸릇 파릇 형형색색의 야채들도 시들어서 늘어져 있네요. 전화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냄비에 불을 끄는 걸 깜빡했네요. 끓는 물에 넣어둔 라이스페이퍼가 곤죽이 되야 부렀습니다요. 냄비가 검게 눌어붙어서 도저히 쓸 수가 없습니다. 장미꽃이고  와인이고 나발이고 총무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입니다. 또 이렇게 불금을 잡쳐 버립니다. 이제 잡채만 봐도 이가 득득 갈립니다.

노빠꾸, 왕궁뎅, 문댕이 세 사람들을 어떻게 멕일까 아무리 궁리해도 묘수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은 봉사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는 분 들 이어서 함부로 건들면 안 됩니다. 솔직히 이렇게 멕이는 것 뻬고는 총무를 예뻐해주기 때문에 이런 걸로 웃통 벗고 달려들면 자칫  조직이 무너지는 수가 있어서 건들 수가 없습니다. 불금에 멕임을 당하게 되자,총무는 누군가에게도 멕이고 싶어서 안달이 났습니다. 멕여도 아무 탈이 없는 사람, 무슨 말을 해도 웃어넘기는 순둥 한 사람, 누가 있을까 싶어 머리를 굴립니다. 총무는 그동안 당한 멕임을 되갚아주고 싶어서 뜬눈으로 날을 샙니다.

사진참조: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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