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조음 Aug 02. 2024

 뼈째 발라지다

진숙이 엄니

"안녕하세요?"

출근길에 진돗개를 끌고 가던 진숙이 엄마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진숙이는 딸이름이 아니라 키우는 진돗개 이름입니다.

일 년 전 서울에서 귀촌한 새댁입니다. 총무가 글을 좀 쓴다 하니 부러워하는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아침에 빵에 버터 바르고 계란반숙에 커피 한잔 내려먹는 집이 바로 그 집입니다. 대문 안에 들어서면 마당에 클래식이 흐르고 처마에 타프치고 해먹이 있는 집. 우리가 텃밭에 상추 깻잎 쑥갓을 심을 때 그 집에서는 바질, 르꼴라, 아스파라거스를 가꾸며 생활합니다. 진숙이 아빠는 금융업계에 있다는 말만 들었네요.

쑥이 뭔지 몰라서 저한테 물어보러 다가 책들이 꽂혀 는 것을 보더니 무척 반가워하더군요. 가끔씩 직접 내린 커피와 쿠키를 사무실에 가져오는 순진한 새댁입니다.


진숙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새댁을  만나자 갑자기 마른하늘에 섬광이 번쩍 빛나면서 우루루쾅쾅! 날벼락과 번개가 퍼뜩 때립니다.

'그려~ 지둘려. 진숙 새댁! 내가 멕여진 만큼 자네를 멕여주지. 걱정 마. 난 노빠꾸, 왕궁뎅, 문댕이들 하고 전혀 다른 교양 있는 총무거덩. 너무 충격받지는 마셔. 이런거는 한 번쯤 건너야 할 산이니께 이걸 넘어야만 비로소 성숙해 가는것이거덩. '


빵야 빵야

총무는 불금을 눈 빠지게 기다립니다. 불금 저녁 6시 33분 47초, 딱 좋습니다. 식탁 차리느라 가장 바쁜 시간이지요.


슈퍼갑총무: 새댁 금욜인데 뭐 하셔? 오늘 외식 안 나갔네.


깨갱 진숙: 어? 안녕하세요? 총무님. 신랑이 수제비 먹고 싶다고 해서 수제비 뜨고 어요.

 

슈퍼갑 총무: 으잉~~ 그렇구나. 그럼 시방 끓는 육수에다가 수제비 뜨느라 바쁘겠네?


깨갱 진숙:  예~~ 조금요. 무슨 일 있으세요?


슈갑총: (야홋!!) 아니~ 내가 전에 브런치 이야기했등가? 먹는 브런치 말고 카카오에서 작가들만 모아놓은 곳 말이여.


깨갱숙: 아니요? 금시초문인데요?


슈갑총: 참 나~그 유명한 브런치를 몰라? 어허~~ 큰일일세. 젊은 사람들이 늙은이들보다 세상 변하는걸 더 잘 알고 있어야지. 브런치를 모르다니? 새댁이 서울 살다와서 나보다 아는 것이 많을 것이라 생각혔는디, 실망이 크고만.


깨갱숙: 히잉~제가 서울에 지쳐서요. 요즘 시골살이에 재미 붙여서 인터넷 안 본 지 오래되었어요. 근데 불금에 갑자기 브런치가 왜요?


슈갑총: 내가 전에 다른 건 몰라도 글깨나 쓴다고 말혔지. 요새 내 글이 막 떠가지고 6.25 때난리는 난리도 아니여. 자고 났더니 스타가 되었다더라,하는 말은 허풍인줄 알았더니  내가 바로 그 짝이여. 산골 아지매 총무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겄어?


깨갱숙: 어머머!!! 정말요?? 어쩌다 창문으로 바라보면 총무님 쓰시는 모습이 좋아 보이더라고요. 글 잘 쓰시는가 봐요?

 

슈갑총: 아니 뭐~~ 소싯적에 내가 문학소녀였긴 혔지. 내 자랑은 아니지만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어릴 적에 상을 무쟈게 많이 받긴 했지러. 시골학교에서 글짓기로 상 받는 건 나 한사람 뿐이었당게. 먹고살기 바빠서 내동 안 쓰다가 다시 글 쓰기로 혔어. 난 그냥 대충 끄적거리기만 는디 인기가 아주 송가인 저리 가라여. 글 한번 올렸다 하면 댓글이 줄줄이 사탕으로 끝도 없이 달려서리 일을 못할 지경이여. 브런치가 사탕 파는 가겐 줄 알겄어.


깨갱숙: 어머머~~~ 그 정도예요? 총무님 멋지시다! 참 잘했어요!


 슈퍼총: 그니까 가수는 노랠 잘 허야 허고, 배우는 연기를  잘 허면되야. 글쟁이들은 글만 잘 쓰면 되는겨. 내가 또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디, 어릴 적부터 효녀라고 소문이 난 사람이여. 우리 집은 도배지를 따로 안 사도 되었다니께. 왜냐믄 말이여, 내가 받은 상장들로다 주루루 방마다 도배를 해도 남아돌아서 옆집 나눠줄라고 까지 혔당게. 그 상장 때문에 우리 엄니 아부지가 부부싸움을 직쌀나게 했디야. 한분은 옆집 나눠주자커니, 또, 한분은 왜, 보기도 아까운 효녀딸 상장을 남의 집 주냐고 말이여.


깨갱숙: 깔깔깔~정말요? 총무님 참 유쾌하시다.


슈퍼총:그래서 요새 다시 글을 쓰고있는디, 댓글 알바 요즘 얼마씩 하는 감? 시급이 싸면 쓸까 생각 중이여.


깨갱숙: 글쎄요? 선거할 때 댓글 알바부대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브런치 댓글 알바는 제가 잘 모르겠네요?


슈갑총: 서울 살면 이런데 빠삭한 줄 알았는데 진숙이네는 인 서울이 아니라 변두리 살았는갑소. 그래서 하는 인디 진숙이만 데리고 다닐게 아니라 내 댓글 알바 어띠여? 시골에서 마늘 알밤 까는 것보다는 낫잖여. 고상하게 보이고... 진숙이 개껌값 정도면 되겠어? 세상에 공짜는 없잖혀. 일한 만큼은 주어야 공정한 세상이지. 어뗘??? (빵야! 빵야!)


깨갱숙:(윽~윽) 옛??? 저보고 댓글 아르바이트 하라구욧!! 저는 글자만 봐도 울렁증 생겨서 시골로 내려왔는데!! 나보고 다시 글을 쓰라구욧!!


슈갑총: 에구에구 ~진숙이네, 왜 화를 내고 그랬싸~~ 자고로 여편네들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가면 사람들이 흉봐 승질 드럽다고 말이여. 시골에서 찍히면 큰일이니까 목소리 높이는 거 삼가 좀 . 난 또 노느니 알바해주면 개껌이나 사 주려고 했지. 내가 경우 없는 짓은 안 하는 사람이여.


깨갱숙: 깔깔깔~ 우리 총무님 참 재밌으시다. 진짜로 저보고 댓글 알바 하라고요? 깔깔깔.


슈갑총:?? 어쩔 수 없지. 내가 날을 새서라도 성의껏 댓글 달아야 쓰겠네. 브런치는 어떻들어가는지는 아남?? 내가 지금 갈켜줄게. b r u n c h, 영어 어려우면 한글로 치고 들어가서... 화면이 나오면 거기다가 내 이름을.. 아 참, 필명은 로 있는데... 해자 조자 'ㅎ' 에다가 'ㅏ, '   'ㅣ, '로 쳐야 혀."


깨갱숙: 저기요!! 지금 저한테 뭐 하시거에욧!! 지금 수제비 뜨고 있는데, 이러시면!!!


슈갑총: 아차차~~ 내가 깜박했네. 육수가 다 쫄아서 냄비 안 태워먹었남? 내가 원래 말수가 없는 과묵한 사람인디, 댓글 알바 물어보느라고 말이 길었는가벼. 이만 끊네. 나는 인삼에다 엄나무, 가시오가피 푹푹 넣고 백숙이나 한 마리 고아야겠고만.  뼈다귀는 모아 놓을테니 언제 들렸다가소. 잉~들어 가소~~(빵야! 빵야!)"

갱숙: (으으윽!!).............


힘을 숨긴 자

한 달 후, 서울 새댁이 사는 집으로 kbs, mbc, 방송차량과 유튜브, 개인방송 채널들, 외지인들과 구경군들이 총 출동했습니다. 군민의 날 도 아닌데 동네가 요란 시끌벅적합니다. 무슨 큰 구경거리가 생긴 모양입니다. 시장님과 군수님까지 뜬 걸 보니 아주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총무가 무슨 일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길가에서 촉새이장을  만납니다.


촉새이장: 어이~~ 총무님. 소식 못 들었남? 저기 로 이사 온 서울 새댁이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작가라고 하던데 알고 있었는감?  우리 자식들이 난리가 아니여. 000 작가 사인 좀 받아 달라고 해서 책 들고 가는 길이여. 저 서울 새댁이 알고 보니...??? 알고 보니....???"


깨갱 총무: 허거걱!!! 알고 보니.... 알고 보니??? 뭐예요??


촉새이장: 재작년에 넷플렉스 하고 합작해서 만든 16부작 k드라마 있잖혀? 제목이 갑자기 생각 안나네. 그 뭐드라? 하여간 그 드라마 땜시 외국에서 엄청 관광객들이 몰려왔잖아. 아! 글씨, 저 서울 새댁이 쓴 거라네. 드라마 쓰는 거마다 족족 히트를 쳐서 돈도 억수로 벌었다더구만. 탑 배우들이 새댁 드라마에는 무료로 출연한다고 줄을 섰다고 허던데. 시나리오가 탄탄해서 떡상이라구 말이여.

드라마 쓰고 책 내고 강연 다니고 혀서 돈 억수로 벌었디야. 빌딩 하나를 서울 중심에 사놓았디야. 어마어마하게 값이 올랐다더만. 신랑이 관리하느라 주말부부로 지낸다고 하더라구.


깨깨갱총무: 허걱!! 뭐라고요? 댁이 K 한류열풍, 넷플릭스 0000 드라마를 썼다구요? 진짜요? 그런 새댁이 이런 산골에 왜??


촉새이장:  젊은 나이에 글 쓴다고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번아웃이 왔다더니만. 쉬워야  병 있잖혀. 그래서  우리 동네로 이사왔디야. 글자만 봐도 어질 해서 진숙이나 키우면서 휴양하고 있다고 하더구먼. 시장이랑 군수가 우리 동네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라고 해서 지금 다시 집필 중에 있다고 하대. 우리 지역을 무대로 혀서 관광산업 좀 부탁하려고 국회의원까지 몰려왔디야. 나중에 작가 이름으로 홍보관도 만들고 문학관도 지어준다고 약속했대. 오늘 그 약정 체결하는 날이여. 근데 엊그저께 혹시 소문 들었남?


거품 부얼부얼총무: 무슨 소문요??


촉새독수리 매의 눈 이장: 새댁이 원래  이 동네에서 글도 좀 쓰고 고양이 키우면서 사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쓰려고 했다네. 그래서 커피랑 쿠키랑 갖다 주면서  친해졌나 보더라고.  근데 그 푼수 떼기가 새댁이 유명작가인 줄 모르고 댓글 알바를 하라는 둥 하면서 아주 엿을 멕였는갑더라구. 하필 불금 수제비 뜨는 날, 저녁에 그랬다네.  너무 존심이 상해서 그 여편네를 주인공으로 안 하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서 쓰기로 했대.이 드라마 잘되면  크게 문학관 실장으로 특채까지 하려고 던 모양이드만. 어떤 푼수 떼기인지 아주 사람하나 잘못 멕여서 신세 왕창 조졌다니께. 누군지 라도 사람 잘못 건드리겨. 내가 어느 푼수 떼기가 엿을 몍였는지 찾아내고야 말 것이고만. 그리고 글은 저만 잘 쓰는감. 내가 딸들에게 꽃사진 올리면서 뭐라 한 줄 쓰면 우리 딸들이 나보고 작가보다 더 잘 쓴다고 난리여. 총무님? 아까부터 말이 없고 얼굴이 왜 노리끼리 변했는감??


촉새 독수리 매의 눈 이장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총무는 참 지지리도 운이 없네요. 하필 난생처음 멕여 버린 사람이 대 작가 000이라니..... 총무는 새댁 집 마당으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합니다. 한번 멕이려다가 오히려 발라당 뼈까지 발라졌네요. 한바탕 잔치가 끝난 집을 살펴보니 어디서 많이 본 사람들과 새댁이 희희낙락 악수를 나눕니다. 허걱! 노빠구, 왕궁뎅, 문댕이 입니다. 안채로 함께 들어가는 것을 보니 새댁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바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합니다. 로또 꿈은 안 맞아도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기 마련이지요. 총무는 망연자실, 그 자리에 라당 항복한 채 뒹굴어 버립니다.

아~~ 멕이려다가 폭망부럿따!!


이제 총무는 어떻게 할까요?

새댁 작가님께 토종닭에다 인삼, 엄나무 ,가시오가피, 황기, 대추 왕창 넣고 푹푹 고아서 솥단지째 가져다주고 싹싹 빌어볼까요?

아니면 오밤중에 새댁 집 앞에 있는 전봇대에 올라가 주인공이 변경된 드라마를 쓰지 못하도록 전선을 싹둑 자를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