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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Jul 16. 2024

청춘은 떠나고 노래는 남았다

청춘은 떠나노래는 남았다.

난 이 짧은 문장을 써놓고서 망연자실 멍하니 앉아있다. 얼마 전 강물처럼 가님이 쓰신 <세상의 모든 음악>이란 글에서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라소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구독자로서 그 글에 댓글을 달았다.


마크노플러의 OST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가 어디에서든 흘러나오면 온몸이 굳어지면서 어찌할 줄 몰라 공황장애를 일으키곤 합니다. 이 음악은 저를 막한 그 시절로 데려다 놓곤 합니다.

지금도 어찌할 줄 몰라 음악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답니다. 간신히 가라앉혀 놓은 심연의 슬픈 가루들이 다시 휘오리치며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이 음악을 들으면 다시 올 수 없는 그 순수의 시절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영화를 볼 때마다 울고 울었던, 그래서 다시 보기 싫어져서

잊고 싶었던 인생 영화... 강물처럼 작가님의 글로 인해 오늘 머리 허연 모습으로 음악을 또 만나게 되었네요. 음악을 다시 듣는 지금 그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네요.


청춘의 민낯

늘 연탄불이 꺼지던  청춘의 날들. 삼천 원짜리 싸구려옷을 입어도 이십 대의 젊음은 저절로 빛이 났다. 낡은 청바지와 길거리에서 파는 하얀 티 하나만 입었는데도 사람들은 감탄하며 말하곤 했다.

'이쁘다. 젊어서 이쁘다. 나이가 젊으니 뭐든 잘 어울린다.'

동화 속 마녀가 잔혹한 악행을 저지르면서까지 되찾으려 기를 쓰던 젊음이 내게 있었다. 인기절정의 세계적인 배우가 가장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게 다름 아닌 젊음이 사라져 가는 것인데,  난  대배우가 갈망하는 그 젊음을 가지고 있었다. 백번을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이. 젊음을 스쳐 간 늙은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바로 그 나이.  


하지만 난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싸구려옷으로도 가릴 수 없는 청춘과 눈부시게 빛나는 젊음이 있었건만,

 순수로 아름다워야 할 시기에 난 절망했다. 모든 게 막막했다. 보석처럼 빛나는 나이에 난 이미 시들어버렸다. 오히려 이십 대의 젊은 청춘이 빨리 사라져서 빨리 나이 먹고 빨리 늙어가기를 바랐다. 젊음이 보석인 줄 모르고 무겁고 쓸모없다고, 빛나기는커녕 비참하다고 생각하며 낡은 청바지에 넣어두고 다녔다. 일부러가 아니라 옷을 입어도 검은색이나 짙은 회색의 거무칙칙한 옷만 입고 다녔다. 너무나 누추하고 초라해서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숨어 다녔다. 자취방의 연탄불은 늘 꺼져있었다.


거리에 서있다

겨울비 내리는 차가운 거리에 서있다. 우산도 없이 그 비를 맞으며 서있다. 입술을 파르르 떨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있다. 근처 레코드 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때문이었다. 그 음악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서있었다.

그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따스해지기는커녕 오히려 허기가 더 심해졌다. 더더욱 춥고 시렸다. 외롭고 고독해서 가로수를 끌어안고서라도 울고 싶었다.  어디에서든 그 음악들이 흘러나오면 나는 일그러졌다.  밝게 웃다가도 웃음을 멈췄다.


 나를 울리던 젊은 날의 음악들,  춥고 시린 내 청춘의 표상. 거무칙칙한 절망에 침잠하던 그 노래가 여기 있다.

영화음악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박 비상구>, <엘비라마디간>, 배트 미들러의 <the rose>, 스모키의 <Living Next Door To Alice>, 토니 달라라 <Lanovia>,  굼베이댄스밴드, 김창완의 <회상>.조용필 <Q>  박미경<민들레 홀씨되어> 정태춘 박은옥의<봉숭아>...


오십이 훨씬 넘은 지금에도 이 음악들을 들으면 온몸이 굳어진다. 곡이 끝날 때까지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내 젊은 날을(80년대 중후 번~90년대 초) 통틀어 말하라고 한다면 꺼진 연탄불과  음악들이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인형을 들어 올리는 집게가 나를 집어 올려 느닷없는 그 시절로 데려간다. 그리고 툭 그 거리에 내려놓는다. 난 음악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다. 마치 빠삐용이  꿈속에서 시간을 낭비한 죄로 유죄를 선고받듯이,

젊음을 낭비한 죄,

청춘을 업신여긴 죄

순수를 잃어버린 죄를 묻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들었던 음악들은 나를  따스히 안아주던 존재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꼬드겨 미리 늙게 만들고 청춘을 허비하고 순수를 잃어버리게 만든 공범들이었다. 저승길 노잣돈 같은 것들이었다. 저승길 노잣돈 같은 음악이, 시든 내 청춘과 야합하여 더더욱 젊음을 시들게 하고 청춘을 날려버리고 순수를 잃어버리게 만든 일등 공신들이었다.


'나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젊게 살고 싶었고 청춘의 낭만을 만끽하고 싶었고, 예쁜 원피스를 입고 싶었다. 한데  저 음악들이, 저 노래들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절망에 빠지게 했다. 내가 젊음을 빨리 포기한 것은 모두 다 저 음악들 때문이다.

이렇게  싸잡아 음악들에게 죄를 묻고 싶었다. 


아니다, 이런 궤변이 어디 있을까? 나는 내 죄를 함께 뒤집어쓸 공범자, 내부자로  음악들을 엮으려는 비열한 술책이다.  저 노래들을 방패 삼아 변명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맞는 말이다.  난 염치없게 저 음악들에게 핑계를 대는 것이다.

음악은 아무 죄가 없다. 


다시 청춘을 만나다

그래서 지금 나이에 그 음악들을 들으면 사시나무 떨듯 떠는 것이다. 은밀한 완전범죄를 들킨 기분이다. 

소중한 것은 늘 잃어버린 뒤에서야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는 법이다. 젊음이 소중한 것이니 귀하게 잘 간직하라고 백번 천 번을 말해도 느끼지 못하는 게 젊음이다.

젊은이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젊음의 위대함을 모르는 것이다.


그토록 원하던 늙음의 오십이 지나서야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 들이다.

그래도 그 시절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노라고. 정말 눈부시게 빛나던 시절이었노라고...

억만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인생의 단 한번 이십 대였음을,

삼천 원짜리 싸구려옷을 입어도 눈부시게 빛나던 나이였음을,

 늙음이 두려워 목숨을 걸고서라도 성형을 하고 또 하며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젊음이었음을...

 오십이 넘어서야 절절히 깨닫는 것 들이다.


이십 대 청춘의 시절에 들었던 나의 음악들!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청바지와 하얀 티만 입어도 눈부신 이십 대의 그 시절로 나를 데려다준다면,

기꺼이 어두운 골목을 뛰쳐나와 밝은 햇빛아래에서 고운 이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을 것이다.

 연탄불이 꺼지던 방안을 늘 따스하게 데워놓고

두려움과 막막함대신  희망과 도전을 겁내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 젊은 청춘의 시간으로 날 데려다준다면

정말 열심히 젊음의 꽃을 찬란히 피워낼 것이다.


 내가 절망한 이유는 수많은 갈래길에서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몰라서 막막하게 서 있었던 것뿐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 자리에 함께한  저 노래들은 내  젊음의 청춘이 녹아든 보석들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보석인 줄 모르고 살아서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그나마 청춘의 강을 잘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저 음악들이 친구처럼  옆에 있어주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싶다.


연탄불이 꺼져있는 얼음장 같은 자취방.  외투를 껴입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지 못하도록 카세트 라디오를 품속에 안고서 음악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로 녹음된 노래들이 소리 죽여 흘러나오면 눈물이 났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내가 너무 불쌍해서가 아니라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간신히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 듣고 또 들으며 날을 샜다. 음악은 내게 있어 반려자나 다름없었다. 어디에서든 들을 수 있는 반려음악이 있어서 나는 죽지 않고 청춘의 강을 힘겹게 건너온 것이다.


이십 대에게 전하는 말

이제 난 음악으로나마 청춘의 거리로 날아간다.

연탄불이 꺼지던 날의 춥고 시린 날,  카세트 라디오를 껴안고, 가로수를 끌어안고 울고 싶었던 내 청춘을 만나면 언제나 건네는 말이 있다.

 너무 힘주지 말라고

너무 진지하지 말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무한한 세상 자유롭게  날아다니라고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백천번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 젊음이고 청춘이니

그 무기를 스스로 내려놓지 말고 맞들고 싸우라고

보석을 주머니에 넣어두지 말고 당당히 꺼내 놓으라고

그리고 어둔 음악대신 경쾌한 음악을 들으라고...


나는 늙어가는데 그때 들었던 음악은 늘 청춘의 음색으로 남아있다. 난 갈수록 시들대로 시들고, 근육이 굳어가고,  머리카락이 허옇게 변해가는데,  그때의 노래들은 늙지 않는다. 음악을 머금은 보석들은 찬란한 목소리와 은은한 바이올린 선율로 더더욱 반짝거린다.


마녀가 그러하듯

대배우가 갈망하듯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젊음을 되찾으려 하듯,

나도 음악 속에서나마 내 젊음을 되찾는다.


그렇게 나는 불현듯 들려오는 음악으로 이십 대의 나를 만난다. 어서 빨리 늙기를  바라며  젊음에서 달아나려고 안달하던 내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다시 만난다. 시간을 되돌려 이십 대에게 말을 건넨다. 

살아 있어서 고맙다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존재라고.

꿋꿋이 잘 살아와줘서 다행이라고.

살아있음에 고개 숙여 존경을 표한다고.


이미 늙어버린 내가 청춘의 나를 따스히 안아준다.

그렇게 꼭 끌어안고 있다.


 음악이 끝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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