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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Jul 23. 2024

펜은 칼보다 강하다(1)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중학생

박정희 독재에서 전두환 5 공화국으로 전개되는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시골 중학교 사회선생님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교과서 속의 사회가 아니라 현재의 암울한 시대에 대해 진실을 가르쳐주고픈 모습이 역력했다.

'너희들은 아직 어리다. 나중 너희들이 헤쳐나가야 할 미래는 지금보다 분명 나아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 힘을 키워라. 그 힘은 배우는 데 있다. 책에 있다. 만화책이어도 상관없다. 부모님 세대처럼 살고 싶지 않으면 배워라. 너를 변화시키는 것은 배움에 있고 그 배움은 독서에서 나온다. 그리고 명심해라!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총칼로도 진압되지 않는 게 펜이다.

칼대신 펜을 들어라. 세계역사를 보아도 인문학이 최고의 가치가 된다. 그 흐름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태초의 인류 조상들은 동굴에 문자를 새겨 이야기를 전했다. 그  상형문자가 오늘날 문명이 되었다. 글은 인류의 본능인 것이다. 소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 선서, 처어칠수상, 맥아더 장군, 아브라함 링컨의 짧은 명연설이 바로 역사를 바꾸는 큰 힘이다. 펜의 힘을 키워라! 우선 책부터 읽어라!'  


그날따라 힘주어 말씀하시는 사회선생님의 격앙된 목소리에 아이들은 허리를 꼿꼿이 세울 수밖에 없었다. 오후 수업이 끝난 후 도서관에서 무심코 빌려온 미술책에서  명화 한 점이 유독 소녀의 눈길을 끌었다.

외젠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었다. 강렬한 그림에 소녀는 압도되었다. 세포가 쭈삣 일어섰다. 명화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결심했다. 짧은 문구를 사인펜으로 굵게 덧칠하여 책상벽에 정성껏 붙여 두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흉내 내지 마라

국문과 P교수님은 리포트르 낼 때마다 지적하고 또 지적했다. 밤을 새워 책을 읽고 형광펜을 그어가며 만들어 놓은 문장에 불쾌한 기색을 내보였다. 가차 없이 리포트를 책상에 내던지며 질책했다.


왜, 남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가? 왜 남의 글만 가져다가 베끼는데만 몰두하는가?

너의 목소리를 찾아라. 늦더라도 네 언어로 글을 써라!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 다른데 왜 똑같은 글 만 쓰려하는가?

 세상을 둥글게만 바라보지 말고 네모. 육각형, 삼각형으로도 보아라!

 그게 바로  창의성이다! 지금은 남 흉내를 낸다지만  너의 진짜 목소리를 찾아라!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너만의 독창성을 말이다! 사람이 되었다가 동물로 되었다가 악마와 천사로 변신하라! 금붕어로도 변신해라. 펜을 가진 자는 그 어디에서든 그 상황에 맞는 글을 써야 한다. 그게 펜을 가진 사람들의 능력이다. 손에서 펜을 놓지 마라!


P교수는 마치 중학교 시절의 사회선생님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희곡, 수필, 논설, 여행기, 수필, 동화... 등에 대해 백일장 시험을 보듯 불쑥불쑥 과제를 내주었다.

학기말이 되었을 때  P교수는 그녀가 제출한 리포트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대학은 장학금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이대로 쓰면 될 것 같았다.


돌솥밥 아르바이트

용돈과 책값을 충당하기 위해 학교 앞 돌솥밥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치지직, 뜨겁게 달아오른 돌솥을 나르다 보면 가장자리에 손가락을 데기 일쑤였다. 물과 반찬 몇 가지, 돌솥밥을 가져다주는 간단한 일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손님들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잔 심부름을 시켰다. 차가운 물이 나가면 뜨거운 물로 바꿔달라, 김치는 줄기 쪽 말고 앞부분으로 가져와라, 밥이 설익었으니 뜸을 더 들여와라... 한 번에 시키는 게 아니라 한 번에 한 가지씩 시켰다. 

그렇게 십오 평 내부를 종종걸음으로 돌다 보니 나중에 심한 어지럼증이 생겼다. 이러다 뜨거운 돌솥을 손님 머리에 쏟는 건 아닐까 싶어 늘 긴장을 해야 했다. 온몸이 긴장을 하다 보니 빨리 녹초가 되었다. 무거운 돌솥에 신경 쓰느라 힘은 준 탓에 볼펜 든 손이 덜덜 떨려왔다. 글 한 줄 쓰지 못하고 쓰러져 자는 일이 많아졌다.


또래의 청춘들이 대학의 낭만을 한껏 누리고 있을 때 그녀는 여전히 무거운 돌솥을 날랐다. 하지만 그네들이 부럽지 않았다. 돈은 없지만 펜을 가졌다는 자부심이 그 자리에서 일하게 했다. 부끄럽거나 초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  뜨거운 돌그릇을 나르지만 이 상황을 글로 쓴다면 다들 놀라워할 거야.

 손가락을 데고, 주문을 잘못 받아 꾸중을 들었지만 난 괜찮아.  물 가져와라, 콩나물 반찬  더 가져와라, 잔 심부름을 시키는 진상 아저씨는 글에 넣어서 꼭 되갚아줄 거야. 힐끔힐끔  바라보는 음흉한 주방아저씨도  내 이야기 속에 꼭 넣어두지. 너희들이 잔디밭 교정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기타를 치고 있을 때, 나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일부러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야. 나중에 내 책이 나오면 너희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두고 보자고!'


상상하면 할수록 통쾌했다.

 이러한 상상으로 돌솥밥 아르바이트를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게 손가락을 데어가며, 어지럼증을 이겨가며 한 권의 책을 살 때마다 생각했다. 언젠가는 내 책이 이 서점에 쫙 깔리는 날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박사 따고 번역책 몇 권 읽고 책상머리에서 다른 책들을 짜깁기하듯 만들어 낸 책이 아니라 젊은 대학생이 삶의 현장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만들어낸 생생한 원고를 출판사에서 서로 계약하자고 달려들 것만 같았다. 벌써 그녀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나 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대학생

펜은 그녀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감히 칼보다 강할 수는 없지만, 돈보다 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어디에서든 그녀를 방어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준 것은 사실이었다. 방학이 되어 시골집에 들어가면 붙여 두었던 메모 한 장이 그녀를 말없이 응원해 주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신춘문예나 문학공모전에서 번번이 낙방을 했다. 4학년으로 접어들자 동기들은 각자 밥벌이를 향해 흩어졌다. 계산 빠른 아이들은 공무원시험, 국공채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국문과를 졸업하면 관련 계통의 언론사나 출판계, 글을 필요로 하는 직업으로 갈아탈 줄 알았는데 큰 오산이었다. 오로지 그녀만이 문학을 하겠다고 버텼다. 졸업이 다가올수록 더더욱 막막해졌다. 그러면 그럴수록 원고지 한 장을 메꿀 수 없었다. 입학 당시, 학기 내에 등단하겠다는 포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대학교 학생증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자, 학생이란 이름으로 받았던 수많은 혜택들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 든든한 울타리를 벗어나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자퇴를 해서 졸업을 미뤄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사회인으로, 그것도 백수로 첫출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무겁게 짓눌렀다. 가족들에겐 곧 작가가 될 것처럼, 작가만 되면 돈과 명예가 한꺼번에 생기는 것처럼 허풍을 떨며 으스대던 말들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막막했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글은 더 이상 쓰이지 않았다. 그녀의 펜은 손가락이 아닌 서랍에서 숨죽인 채 가두어졌다. 소녀를 떨게 만들었던 중학생시절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점점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시골집에 붙여둔 글씨도 함께 바래져 갔다.


그리고 그녀는 알지 못했다. 격랑의 파도가 넘실거리며 다가오고 있음을. 


먼 훗날, 그녀는 글과는 전혀 무관한 직업으로 밥벌이를 해야만 했다. 펜을 들던 손으로 주방에서 칼을 들어 양파를 자르면서 크게 후회를 했다. 

일 미터만 더 파고 들어갔으면, 금맥이 보일 수 있었을 텐데 바로 코앞에서 뒤돌아 섰던 것은 아닐까? 좀 더 참고 기다렸다면 꿈을 이루었을까?


그녀는 막막했던 스무 살 시절을 회상하며 말한다. 


글은 그때 썼어야 했다. 스무 살 시절, 손가락을 볼펜에 꽁꽁 묶어 억지로라도 글을 썼어야 했다. 젊음이 펄펄 살아있는 그 시절에 의자에 포박된 상태로라도 글을 썼어야 했다. 죽 든 살 든 그때 승부를 냈어야 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2부 > 다음 주 화요일에 계속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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