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장례식 내내 폭우가 쏟아졌다.장례식은 마당에서 치러졌다. 아버지는천막에 웅덩이처럼 고여있는 빗물을 양동이를 들고 다니며 비워냈다. 亡者에 대한 당신의마지막 배려라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그 먼 이승의 산길.
산비탈 진흙길을 오르던 열 명의 상여꾼들은 계속 미끌렸다. 쏟아져 내려오는 빗물을 거슬러 오르느라 상여는 더디게 움직였다. 몇몇은 신발이 벗겨졌지만 맨발로 질척이는 흙을 밟으며 산에 올랐다.
만장을 든 사람들도 넘어질 듯 엎어지며 산길을 올랐다.
그 뒤를 따라 하얀 소복을 입은 가족들이 비를 철철 맞으며 상여의 뒤를 따랐다.
그녀들이 입고 있던 소복은 흙탕물에 쓸리다 못해 얼굴에 까지 튀었으나쏟아지는 빗줄기와 눈물로 씻겨 내렸다.
막내인 그녀는 서럽게 서럽게, 눈물로 눈물로, 비에 젖은 상여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치마를 밟아서 넘어지기 일쑤였지만 멀어져 가는 상여를 따라잡느라 신발이 벗겨진 채로 뛰어왔다.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는 상여를 뒤로 잡아당겼다.
"엄마~가지 마. 엄마~ 미안해.
나 어떻게 살라고 날 두고 가는 거야.
엄마~잘못했어. 가지 마."
아무리 그녀가 잡아당기며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상여는 느릿하게 산을 올랐고
상두꾼의 요령은 비에 젖어 둔탁한 소리를 냈다.
상여를 따르던 사람들은 폭우 속에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꽃상여는 흙탕물 한 점 튀지 않았다.
꺽꺽 울고 있는 그녀들을 향해 요령잡이만덕 영감님이 한마디를 던졌다.
"상여 나가는 날, 이렇게 비가 오는 것은 자식 놈들이 불효했기 때문이여. 자식 놈들 울라고 내리는 게 아니라 망자가 원통해서 우는 것이여..."
그 소리에 우리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쳤다.
- 서른넷, 어머니의 장례식 일기장 내용中에서 -
하찮은 변명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불가항력의 고통이 찾아왔을 때 그녀는 온몸으로 파도를 맞았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았다. 인생의 격랑을 겪으면서 아무리 저항하고 반항해도 어찌해 볼 수 없는 불가항력인 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촘촘한 가시들은 심장을 겨누어 왔다. 반항하고 거부하고 도망치려 하면 할수록 온몸을 칭칭 감은 철사 울타리는 더더욱 옭아맸다. 숨이라도 쉬려면, 더 많이 찔리지 않으려면 그저 가만히 있는 수밖에 없었다. 철사 울타리가 조이고 조이다 스스로 녹이 슬어 바스러질 때까지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온몸에 피를 흘린 채 말이다.
중학생 시절의 사회 선생님처럼,
들라크루아 의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처럼,
리포트를 내 던지던 국문과 P교수님처럼,
오랫동안 색이 바래진 채로 붙어 있었던 <펜은 칼보다 강하다> 글씨처럼...
글로써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것이라고
믿었던 그녀는 이제 조금은 안다.
펜보다 총이 더 강할 수 있으며,총은 또한 돈에 더없이 약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세상은 펜의 힘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라
더 많이 가진 자들에 의해
최첨단의 과학기술과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 의해 굴러간다는 것을.
더 이상 깃발을 들고 앞장서는 사람도 없거니와 비에 젖은 만장처럼 펄럭이지도 않는다는 것을.
카메라에 찍힌 실제 현장을 보여줘야만 겨우 믿어주는 세상이 되었으며
우리가 굳게 믿었던 그 사실조차 거짓일 수 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새보는 아이가 있다.
감나무 언덕에서 강물을 바라보는 소녀가 있다.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청둥오리 떼들의 울음소리가 있고
뜨거운 돌솥을 나르며 종종거리던 날이 있다.
네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수신호를 보내며 소리를 지르고
새벽 응급실에서 오빠를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그녀가 있다.
비에 젖은 상여를 뒤로 잡아당기는 맨발의 그녀가 있고
진흙에 물들지 않은 꽃상여가 있다.
手話로 부르는 장례식장의 소리 없는 찬송이 있고
허름한 자취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듣던 음악이 있다.
귀의처에서쫓겨나 어둑한 산사를 내려올 때
구부러진 경사길을 흐린 승용차의 불빛으로 내려오면서
자꾸 낭떠러지길로 핸들을 돌리려는 그녀가 있다.
공황 장애를 피하기 위해 오분 거리를 사십여분 에돌아 운전을 하고
몽돌 세수하는 소리를 들으려
푸른 바다를 향해가는 그녀가 있다.
그리고 지금, 흰머리 히끗한 얼굴로 그녀가 앉아 있다.
연잎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어라
복수해 주겠다는 마음을 잊은 지 오래이다. 내려놓은 게 아니라 잊은 지 오래이다. 따지고 보면 복수라고 말할 것도 없다. 복수라니? 격랑의 변수들에 대해살기를 띠고 과민반응을 일으킨 거에 불과했다. 글로써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거창한 신념도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철썩 같이 믿고 있던 신념이 한낱 손톱이 잘리는 고통에 무너지고 마는 것을. 그 스스로의 민낯을 들킨 이후로 그녀는 그녀를 믿지 않는다. 내가 나마저 속이는데
무슨 세상을 바꾸고, 남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나를 속여가면서 까지 글을 써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아니한가?
하지만 이제 그녀는 안다.
나를 속이던 젊은 날 또한, 살아 있는 목숨하나가 꿋꿋이 살아내려 애를 쓰던 시간들이었다고 말이다.
살고 싶어서 기를 쓰고 살아온 날들이 아니라 인생의 깃발을 움켜쥐고바람에 나부끼며 뒤로 밀리며 흔들리며 전진하며출렁이며... 걸어온 자랑스러운 날들이었다고 말이다.
화가의 그림처럼 말이다.
벽에 붙여 놓은 글씨처럼 말이다.
결국 그녀는 살았고살아왔다.
강하게 살아남았다.
펄펄 살아서 희미한 흉터로 남아버린그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이제 그녀는 안다.
노을 지는 벤치에 앉아 조용히 연잎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내 밥 주는 내 자리에서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게 진정한 신념이라는 것을.
그녀는 이제야 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녀는 히끗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믿는다.
아직도 믿는다.
한번 세워진 신념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펜은 그때나 지금이나 강하다.
그 사실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비웃는다 할지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 신념을 굳게 믿을 것이다.
펜이 그녀의 살아가는 마지막 힘이다.
다시 격랑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한들 어쩌겠는가.
어머니의 상여가 폭우를 뚫고 산으로 올라가듯
쏟아지는 빗물을 맨발로 밟으며 거슬러 거슬러 안식의 땅에 묻히듯
비에 젖은 상여를 어깨에 메고 터벅터벅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히끗한 그녀는 산사의 귀퉁이에서 묵묵히 삶을 살아갈 것이다.
바람결에 연잎 수런거리듯 그녀는 수런수런 이야기할 것이다.
돌솥밥 주인의 안부를 물으며, 진상 아저씨를 추억하며, 네거리에서의 아찔한 순간도, 낭떠러지로 차머리를 돌리던 날들도 웃음의 무용담으로 바뀔 것이다. 등에 꽂혔던 상사의 잔혹한 말 한마디까지 이해가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칼에 손이 베이던 날, 습작 원고를 잘랐던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고 수런수런 속삭일 것이다.
젊을 때처럼 몰아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힘을 주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날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기억이 나면 나는 대로, 안 나면 안 나는 대로...
설산을 향해 느리게 걸어갈 것이다.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그 누군가는 바위에 새길 것이다.
나무에 새겨둘 것이다.
또 누군가는 동굴 깊숙이 그림을 그릴 것이다.
기록하여 남기는 것!
태초 인류의 본능이다!
그러니 살아라!
펄펄 살아라!
굴하지 말고 살아남으라!
펜을 들어라!
다시 생의 깃발을 높이들고 나부껴보자!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맺음말
2024년 1월 16일에 첫 발행한 <저 산은 나를 보고 표범처럼 살라하네> 1편을 시작으로, 30편 <세상은 망해도 글은 남는다>,으로 끝을 맺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에서 삼복더위의 여름까지, 나름 열심히 치열하게 걸어왔습니다. 처음 떠난 자리에 다시 돌아와 앉았습니다. 언제든 돌아갈 내 자리가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됩니다. 내 밥 주는 자리가 제 자리입니다.
저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새벽 세시에 일어나 예불을 드립니다.
종교를 떠나서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내가 관심 가지고 있는 작가님들, 브런치스토리 팀님들, 모든 브런치 작가님과 구독자님, 일일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평안과 행복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모두 행복하십시오.
저는 쉬었다가 가벼운 이야기로 다시 찿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체의 모든 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그림자 이슬 번개 같으니 이렇게 관찰할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