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상황이 확산되면서 사람이 사람을 멀리 바라볼 수밖에 없던 시절. 오죽하면 공공 표어가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였겠는가.
작은 헛기침만 해도 눈총을 받았고, '비대면'이라는 말이 고유명사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첩첩산중 절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스님 중에 한 사람이라도 코로나에 걸렸다 하면 일주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을 막아버린 통에 시주쌀이 부족해서 마트에서 사다 먹어야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하필 우리는 이 시국에 새벽기도회를 결성하여용맹정진하고자 신심이 한껏 충만해있을 무렵이다.
그러나, 불어닥친 코로나 광풍은 예외 없이 새벽기도까지 막아버리고말았다. 기도하고 싶어 죽겠는데 기도처를 막아버리다니..., 하지 말라면 오기로 더 하고픈 게 사람들의성정 아니던가. 고작 세명뿐이지만 갑자기 기도할 곳이 없어진 우리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심정으로 더 깊숙이 숨어 있는 절, 전쟁이 나더라도 비껴갈만한 절을 찾아 지도를 폈다.
천하의 코로나 따위가 몰려와도 우리는 '佛法을 믿는 자' 들이므로 이따위 역병에 물러서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오기가 발동했다. 해서 물러남이 없는 정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세 사람 모두 직장이 있다 보니 큰 무리 없이고르고 고른 절이 바로 경천 화암사이다.사람 발길이 뜸한 외진곳이면서 풍수지리꾼들이 최고로 꼽는 명당터가 아니던가. 세명 모두 초행길이지만 기도의 희망을 안고서 출발했다.
새벽 3시 30분 출발 - 4시 10분 체육센터 주차장집결, 차량 한 대에 탑승 - 5시 20분 화암사 도착 - 금강경독송, 108배, 좌선- 7시 화암사 출발 - 8시 10분 체육센터주차장 - 직장 8시 50분 도착.
첫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절 입구에 도착했을 때, 아뿔싸 이곳도 절 문을 굳게 잠가둔 게 아닌가?
첫 시작의 모양새가 어그러졌지만 꼭두새벽부터 달려와서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개울 건너 나무 의자에 앉아 금강경을 독송하고, '석가모니불' 정근을 했다.
법당 안이 아닌 바깥에서의 기도가 낯설었지만 끝내고 나니 마음이 흡족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주어진 여건대로 하자는 것으로 의견일치를 보았고,그다음 날에도 새벽밤을 달려 닫힌 절문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렸다. 삼일째 되던 날에는 비가 내렸다. 하는 수 없이 누각아래 돌기둥에 걸터앉아 경을 읽었다. 그다음 날엔 목욕탕 의자를 가져오고, 고장 난 전기매트를 챙기고, 방석까지 갖추고 나니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첫 마음을 내기가 어렵지, 막상 시작하면 모든 게 척척 기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다.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지각하면 곧바로 차질이 생기는일이라 일분일초를 다투게 되었고, 기도의 약속을 지키려고 뜬눈으로 날을 새다시피 했다.
"아니, 보살님이 어떻게 여길..."
낯익은 처사님이 나를 보더니 아는 척을 했다. 그곳에서 사찰 지킴이로 근무하고 계셨다.
살다 살다 이렇게 문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처음 본다면서 깍듯이 대해주셨다. 모르는 사람들도 아니고 큰 절 보살들이 흙바닥에서 기도를 한다 하니 법당문을 열어주고픈 눈치였으나 주지스님이 허락하지 않았다.주지스님은 문밖의 기도소리를 분명 들었을 텐데 끝까지 모른척했다. 문전박대를 당한 마음에 우리는 일부러 불명산이 울리도록 쩌렁쩌렁 경을 읽으며 산천을 일깨웠다.
우리는 그렇게 십오일 동안 매일같이 새벽을 달려 용맹정진 했다. 화암사는 숨어 있는 절답게 가파르게 휘어진 산길을 곡예하듯 운전을 해야 한다. 산 정상까지는 엑셀을 힘껏 밟으며 올라섰다가, 다시 브레이크를 계속 밟으며 천천히 내려가야한다.승용차로는 오르기 힘들어 suv차량들이나 올라갈 수 있는위험한 산길이다.
우리는 서로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음주와 회식을 금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세시반에 출발하려면 적어도 세시까지는 일어나야 한다. 한숨 눈 붙일 시간도 없이 출근을 하고, 업무에 집중하느라 피곤한 것은 사실이었다. 내일 새벽에는 도저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지만 막상 알람이 울리면부산하게 다른 도반들의 간식거리까지 챙기는 나를 발견했다.
습한 냉기와 비바람이 들이치는 흙바닥에서 얇은 이불위에 방석을 깔고 앉아, 돌벽 넘어 불단을 향해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굽이치는낭떠러지길을 곡예운전으로 데려다주는 도반님이 안 계셨더라면, 따뜻한 차와 든든한 주먹밥을 지어오는 도반이 없었더라면 이 기도는 성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강경, 백팔배, 정근, 명상...
시간이 지날수록 기도는 탄력을 받아서 독송에 힘이 넘쳤다. 분명 세 사람의 목소리이지만 한 목소리로, 리듬을 타며 누구 한 사람 틀리지 않고 물 흐르듯 경을 읽고 절을 했다. 소낙비가 들이치는 천년고찰, 그것도 흙바닥에서 올리는 십오 일간의 새벽 기도는 우리를 한층 성숙하게 했다.
가만히 좌선 자세로 호흡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처음엔 계곡에서 흐르는 큰 물소리가 들려오지만 더더욱 집중하면 낮은 소리가 들려온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온갖 풀벌레와 새소리, 옆사람의 부스럭 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상수리 떨어지는 소리, 심연의 소리, 소리 없는 소리까지...,
香 또한 그러하다. 성장의 고점을 찍고 서서히 말라가는 식물들에게서 나오는 熟香. 확실히 봄 새싹들의 향기와 가을날의 향기는 확연히 다르다. 우전 녹차를 우려낸 엷은 연두색이 봄의 색깔이라면, 가을로 접어드는 이 무렵에는 보이차와 같은 녹갈색으로 변한다.잎이 숙성하고 발효하며 품어내는색과 향과 맛이 이렇게 다르다. 조용히 좌선을 하고 있어야만 알 수 있고 볼 수 있었던 虛空기도.
안. 이. 비. 설. 신. 의. 색. 성. 향. 미. 촉. 법.
부족하니까 중생이고, 모르니까 중생이다.
삼라만상이 펼쳐지는 이 우주에서 티끌만 한 존재인 내가, 먼지만큼이라도 알까 싶어서 매일 새벽을 달려왔다. 기도하는 내내, 죄를 짓지 않으려 매번 마음을 빗자루로 쓸고 또 쓸었던 날들이다. 법당 안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 무엇들이 문밖에서는 요동치며 흔들리며 시시각각 일어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향을 사르고 촛불을 밝히며, 목탁소리에 맞춰 예배를 올리는 법당에서보다 담장 너머에서 붓다의 연기가 생멸을 거듭하고 있었고, 십오일 동안 똑같은 날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신라 문무왕 때 지어진 절간.
꽂이 비처럼 내린다는 우화루 누각 아래에서의 기도.
용맹정진한 기도발이 뭔지는 잘 모른다.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되기를 소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거창한 깨달음을 원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願은 나 같은 중생이 세운다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풀뿌리로 연명하며 토굴 속에서 면벽수행을 한다 해도, 죽었다 깨어나기를 일억 팔천만번을 한다손 치더라도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이다.
다만 달 밝은 초하루 새벽마다, 어머니가 장독대위에 정화수를 담아놓고 정갈한 마음으로 두 손을 비비던 마음으로, 가족의 건강과 풍년과 평안을 기원하며 간절히 빌었던 마음으로, 붓다의 법을 조금이나마 배우고, 그 배운 법을 실천하면서 붓다의 세상을 조금이나마 닮아보려고 시작한 기도였다.
절문을 막아버린 '오기'에 대항하려 시작한 기도였지만 끝날 무렵에는 모든 것에 '감사'의 마음으로 활짝 열려있는 나를 발견했다. 들어와서 차 한잔 하시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은 주지스님에게도 마음의 삼배로 합장 공경의 예를 올렸다. 일주문 안이든 바깥이든,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다는좋은 선례를 남겨주셨다. 불명산에 있는 짐승들과 새들, 땅을 기는 미물들까지, 우리의 우렁찬 기도소리를 듣고 또 들었으리라.
때마침, 회향하는 날이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 그곳에 계신 분들에게 조그만 선물로 보답했다. 절간에서 오래 묵어 지내다 보니 어느 산자락에서나 인연들을 만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인연은 조심하고 또 조심히 지어야 한다는 걸 몸소 알게 해 주었으며, 한번 사람이 마음을 세우면 세상에 못 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 큰 기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