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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Jan 22. 2024

죽어도 보낼 수가 없어요

내 밥 자리를 지키려 보냈다.

"어머, 길 냥이를 거두시네요. 녀석들이 참 행복하겠어요. 

냥이들아, 니들은 주인 잘 만나서 복 받은 줄 알아라."

아니다. 크게 잘못 생각하고 계시다. 냥이들을 만나서 내가  행복했다. 아니 지금도 행복하다. 내 옆에 고양이들이 있으므로.


글쓰기를 멈춘 십 년 동안 그 자리를 채워준 게 고양이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전에서나 기도 속에서 얻지 못한 평안을 고양이를 통해 얻었다.

고양이가 내 품에 들어 오면서 나는 더 깊은 사유를 했다. 특히 암컷 고양이에게서는 여자로서의 운명, 출산의 고통과 모성애의 위대성을 배윘고, 사냥 훈련,   밥 주는 사람에 대한 그들만의 몸짓, 질병,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ᆢ 지켜보면서 아주 깊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나보다 낫구나. 나보다 잘 키우는구나. 너는 이렇게 자식들에게 헌신하는구나.'

한낱 이름도 없는 고양이에게서 엄마 노릇, 부모 노릇, 자식 교육을 관조하게 되었다 말한다면 크나 큰 과장일까?


엄마라는 이름은 그 무엇을 막론하고 위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잘 난 거 하나 없는 허세 덩어리인 내가 한 주먹도 되지 않은 길냥이들을 통해 고단한 가장의 무게와 삶을 배우고 인생을 배웠다. 사람에게는 밥벌이가 필수 조건이듯이 그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밥(사료)'이었다.

꼬질꼬질 오물로 범벅인데다 앙상한 뼈가 드러난 고양이에게 사료를 계속 내주었더니, 열흘도 지나지 않아 아주 말끔해지고 털들이 윤기가 나기 시작했다.

"히햐~인물이 훤하구나. 네가 이렇게 예쁜 애였니?"

반면 새끼 고양이가 사랑받으며 잘 자라다가 시름시름 앓으며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퇴근 길에 로드킬 당하는 냥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절 주변에 삼색이나 고등어, 턱시도 같은 검은 고양이들이 우굴거리다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사라지고 몇 년후에는 노랑둥이들, 흰색과 노랑이 섞인 고양이들로 채워졌다.

 자연의 순리대로  연기하듯 소멸하고 생성하는 찰나 찰나의 순간들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나를 깨우치게 하고 어른스럽게 만들어준 고양이들.

"어머, 고양이가 너무 순해요. 이름이 방울이라고 했나요? 우리 집 마당에서 키울게요. "

아무한테나 배를 내밀고 손길 닿는 것을 좋아하는 방울이. 배가 빵빵한걸 보니 또 아기를 밴 모양이다.

지인의 말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간 수없이 많은 고양이들이 왔다가 사라져 갔다. 모두 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거두어서 어디서든 살아만 있다면, 금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정이 든 고양이들이다.  호시탐탐 밥자리를 탐내는 고양이들과  사나운 개들이 공격을 해오면 내가 뛰쳐나가  꽥꽥 소리를 질렀고 돌멩이들을  주워 던지며  쫓아주었다.

어떤 날은 고양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서 신발도 신지 않고 급하게 나가 보면, 저 멀리 침략자들의 그림자가 설핏 보일뿐 공격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자리는 내꺼야. 여긴 내 밥 자리라구. 썩 꺼져! 덤비면  우리 싸나운 집사한테 혼날 거야!'

촐라, 야물이, 코점이, 오식이.... 아련한 이름들.

그들을 보내고 얼마나 참회를 하고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너무나  그리워서  예불 드릴 때마다 그들을 위한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다. 살아만 있다면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데려오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다 거둘 수 있었는데. 나는 냉동 찬밥을 데워 먹어도 너희들 밥은 그득그득 채워줄 수 있었는데..' 

절간, 특히 제 주변에 고양이들이 우글거리는 모습이 눈치가 보여 친정 엄마처럼  바리바리 사료랑 함께 실어 보냈다.

 그들에는 사료가 밥 줄이듯, 내게는 절간이 내 밥 줄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도 내 밥 줄을 지키려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보내줬다. 


지인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처음으로 용기를 내었다.

"도저히 정이 들어서 보낼 수가 없네요.

제가 그냥  거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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