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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Jan 30. 2024

고양이 축원을 하면 생기는 일

나도 축원장 있다냥

앙고 사방삼세 제망중중 원아금차 지극지 정성 헌공 발원제자

000도 00군 00면 00번지 신라 보체..

이차인연공덕 ..각기 재수대통 신수대길 복덕구족 관제구설 삼제 팔난.. 여의원만 성취지 대원..헌공 발원제자 000도 00군 00면 00번지 거주

성불심 사업성취 재수대통

보현행 복덕구족 즉득쾌차

고양이 신라 건강기원 수명장수 가내화합...


초하루 법회가 열리는 날이다. 달마다 열리는 법회가 서너 개 있지만 그중 초하루 법회는 대웅전이 꽉 찰 정도로 신도들이 모여든다. 법회 시간에 핸드폰이 울렸다가는 등짝을 얻어맞기 좋을 정도로 엄숙하다. 파리가 이마에 붙어있어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 특히나 주지 스님께서 축원문을 낭독할 때면 신도들은  바짝 귀를 가져다 대며 초 집중을 한다. 본인 가족들의 축원장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염불을 외우고 있는데 갑자기 사단이 났다.


주지스님께서 평소 때처럼 축원문을 막힘없이 죽죽 읽어 내려가다가 난데없는 '이.. ' 에서 갑자기 말씀을 뚝 끊으셨다. 똑 또그르~  도감스님의 목탁도 함께 멈췄다. 이십여 초간의 침묵이 대웅전에 흘렀다. 황금 미소(순금 어금니)를 보신 분이 없을 정도로 근엄하기로 소문난 주지스님 이시다. 뒤 늦게 빵 터지셨는지 '크크' 하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어리둥절 하기는 다른 스님들과 신도들 모두 마찬가지이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서로 눈짓을 교환하는데 주지스님이 흠흠 헛기침을  하시더니 다시 큰 소리로 "고양이 신라 건강기원 수명장수 가내화합".. 축원을 이어 나갔다. 황금 미소 주지스님께서 적잖이 당황했는귓불이 빨개지셨다.

"무신 소리여? 고양이가 새끼 다고? 한 마리 얻어야 쓰겄는디..."

"라 캐야지, 몇 마리나 낳았을까이?"

귀가 잘  들리지않는 노보살님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건의 장본인인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합장을 한 채로 의뭉스럽게  염불을 계속 읊조린다. 눈치 빠른 대덕화 보살님이 내 허벅지를 쿡쿡 찌른다.

'네집 고양이지?' 하는 표정이다. 이럴 땐 모르쇠가 상책이다. 아닌 척 염불을 되뇌인다.


말씀없점심 공양을 드시는 스님들  주변이 화기애애 하다.

"살다 살다 고양이 축원문이 다 올라오고, 시대가 많이 다르고만 허허." 하는  주지스님 목소리에

"아, 요새는 반려동물이 대세입니다. 신생아 사업보다 훨씬 더 잘된답니다. 동물 대형 병원부터 장례식장도 생기고, 개보험, 고양이 보험까지 생겼다고 하던데요. "

"아~그것은 약과시. 내 아는 도반스님 절에 신도분이 계시는데 진돗개 알콩이 달콩이 생일 불공 떡을 다 올리고,  

키우갱아지 죽었다고 49재까지  올리더라니까요. 사람들이 허 해서 그런가 원..., "

공양 시간 내내 여기저기서 '고양 고양~ 멍멍'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마을 가게 앞에서 멸치 꽁다리를 얻어 먹던 고양이가 절문 앞을 기웃거렸다.

고개만 삐꼼히 내밀면서 '저 인간이 내 밥을 챙겨 줄라나? 안 주면 인연 없는 걸로!' 당돌한 표정에 낚여서 십 년 넘게 모시고를 넘어, 뫠시고 있다.

" 우리 손자가 뒤집기를 했어. 아주 야물다니께."

"아, 우리 외 손주는 지 에미 닮아서 영어를 아주 잘혀. 말도 못 허는 것이 '에그 플리스'를 허더랑께. 우리 메느리가 영어 선생이여, 선생."

손주들 깨자랑질에 지고 못 사는 나도 한마디 끼어든다.

"아, 우리 신라는 엄청 똑띡혀. 지가 더우면 톡 하고 선풍기를 켠당께."

"손주 이름이 외자여? 이름 참 잘 지었고만."

그러자 대덕화 보살님이 손사래를 친다.

"어이구, 손주가 아니라 고양이 시끼여. 사람 자랑하기도 바뻐 죽겄는디 인자 고양이시끼 자랑까지 들어야 허네 그려."


만약  고양이 자랑 대회가 열린다면 꼭 출전하려 한다.

우리 신라는요. 믿거나 말거나 제가 늦게 들어오면 라면을 끓여서 가져와요. 계란도 풀어서요. 분명히 못 믿으실 분 계실까 봐 동영상을  올리고 싶은데 납치당할까 봐 못 올리겠어요. 믿거나 말거나 양해해 주세용.

납치당할까봐 얼굴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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