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하루 법회가 열리는 날이다. 달마다 열리는 법회가 서너 개 있지만 그중 초하루 법회는 대웅전이 꽉 찰 정도로 신도들이 모여든다. 법회 시간에 핸드폰이 울렸다가는 등짝을 얻어맞기 좋을 정도로 엄숙하다. 파리가 이마에 붙어있어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 특히나 주지 스님께서 축원문을 낭독할 때면 신도들은 바짝 귀를 가져다 대며 초 집중을 한다. 본인 가족들의 축원장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염불을 외우고 있는데 갑자기 사단이 났다.
주지스님께서 평소 때처럼 축원문을 막힘없이 죽죽 읽어 내려가다가 난데없는 '고양이.. ' 에서 갑자기 말씀을 뚝 끊으셨다. 똑 또그르~ 도감스님의 목탁도 함께 멈췄다. 이십여 초간의 침묵이 대웅전에 흘렀다. 황금 미소(순금 어금니)를 보신 분이 없을 정도로 근엄하기로 소문난 주지스님 이시다. 뒤 늦게 빵 터지셨는지 '크크' 하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어리둥절 하기는 다른 스님들과 신도들 모두 마찬가지이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서로 눈짓을 교환하는데 주지스님이 흠흠 헛기침을 하시더니 다시 큰 소리로 "고양이 신라 건강기원 수명장수 가내화합".. 축원을 이어 나갔다. 황금 미소 주지스님께서 적잖이 당황했는지 귓불이 다 빨개지셨다.
"무신 소리여? 고양이가 새끼 낳다고? 한 마리 얻어야 쓰겄는디...ㆍ"
"내도 돌라 캐야지, 몇 마리나 낳았을까이?"
귀가 잘 들리지않는 노보살님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건의 장본인인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합장을 한 채로 의뭉스럽게 염불을 계속읊조린다. 눈치 빠른 대덕화 보살님이 내 허벅지를 쿡쿡 찌른다.
'네집 고양이지?' 하는 표정이다. 이럴 땐 모르쇠가 상책이다. 아닌 척 염불을 되뇌인다.
말씀없이 점심 공양을 드시는 스님들 주변이 화기애애 하다.
"살다 살다 고양이 축원문이 다 올라오고, 시대가 많이 다르고만 허허." 하는 주지스님 목소리에
"아, 요새는 반려동물이 대세입니다. 신생아 사업보다 훨씬 더 잘된답니다. 동물 대형 병원부터 장례식장도 생기고, 개보험, 고양이 보험까지 생겼다고하던데요. "
"아~그것은 약과시. 내 아는 도반스님 절에 신도분이 계시는데 진돗개 알콩이 달콩이 생일 불공떡을 다 올리고,
키우던 갱아지 죽었다고 49재까지 올리더라니까요. 사람들이 허 해서 그런가 원..., "
공양 시간 내내 여기저기서 '고양 고양~ 멍멍'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마을 가게 앞에서 멸치 꽁다리를 얻어 먹던 고양이가 절문 앞을 기웃거렸다.
고개만 삐꼼히 내밀면서 '저 인간이 내 밥을 챙겨 줄라나? 안 주면 인연 없는 걸로!' 당돌한 표정에 낚여서 십 년 넘게 모시고를 넘어, 뫠시고 있다.
" 우리 손자가 뒤집기를 했어. 아주 야물다니께."
"아, 우리 외 손주는 지 에미 닮아서 영어를 아주 잘혀. 말도 못 허는 것이 '에그 플리스'를 허더랑께. 우리 메느리가 영어 선생이여, 선생."
손주들 깨자랑질에 지고 못 사는 나도 한마디 끼어든다.
"아, 우리 신라는 엄청 똑띡혀. 지가 더우면 톡 하고 선풍기를 켠당께."
"손주 이름이 외자여? 이름 참 잘 지었고만."
그러자 대덕화 보살님이 손사래를 친다.
"어이구, 손주가 아니라 고양이 시끼여. 사람 자랑하기도 바뻐 죽겄는디 인자 고양이시끼 자랑까지 들어야 허네 그려."
만약 고양이 자랑 대회가 열린다면 꼭 출전하려 한다.
우리 신라는요. 믿거나 말거나 제가 늦게 들어오면 라면을 끓여서 가져와요. 계란도 풀어서요. 분명히 못 믿으실 분 계실까 봐 동영상을 올리고 싶은데 납치당할까 봐 못 올리겠어요. 믿거나 말거나 양해해 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