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는 야수 조상님들의 피를 이어받아서좀처럼 누구 자랑 안 하는데, 오늘은설 명절도 돌아오고 하니 덕담 겸 우리 큰 집사 작은 집사 자랑 좀 할까 싶어.
내 나이 12살, 인간 나이로 80살 넘은 묘르신이야. 한 달 전부터는 밥맛이 뚝 떨어지고 응가도 시원찮고 깃털 놀이도 재미없더라구.
깨작깨작 먹고 나면 바로 토하기를 반복했어.
큰 집사가 작은 집사더러 큰 병원 예약 하라고 시키더라구.
병원 가기 전날,아무리 냐옹거려도 밥을 주지 않았어. 금식하라고 했나 봐. 두 집사가 나를 껴안으면서
"신라야, 아프지 마. 우리랑 오래오래 살자. 내일 병원 가서 치료해 줄게. 조금만 참아" 하면서 우는데 내가 아무리 야수의 심장을 가졌기로서니 뭉클한 거야. 혹시나 내가 의사 쌤 할퀼까 봐 무서웠는지 진정제 약을 줬더라고. 약기운 때문인지 이동장 안에서 비몽사몽 누워있는데, 노부부가 먼치킨 두 마리를 중성화시키려 데려왔어.
어쩜 눈도크고 얼굴도 동글동글 하니 귀족의 고고한 자태가 흘러서 냥이계의 김태희언니를 본 것 같았어. 내가 봐도 진짜 예쁘더라. 내가 인간이라면 이왕이면 품종 고양이 키우지 나 같은 길냥이는 안 키울것같았어.
"이 집 고양이는 품종이 뭐예요?"
노부부가 큰 집사한테 묻더군.
그러자 작은 집사가 당당하게
"우리 고양이는 삼색이에요."대답하는데 너무 멋지면서 무안했어. 솔까, 나 같은 고양이는 그냥 길에서 태어나 죽어도 슬퍼하지도 않잖아. 토하고 밥 안 먹는다고 대형 병원 예약까지 잡아 주다니...감동 그 잡채였어. 작은 집사, 흑흑 넌 내 임영웅이야.
작은 집사가 메모한 것들을 의사쌤에게 똘똘하게 물어보더라구.
"우리 신라 입술이랑 등에 아주 작은 점이있는데, 세세히 좀 살펴주세요."
가람 보람 칭구들
그 말까지 듣고는 정말기절한 것 같아.
혈액검사, 엑스레이, 초음파ᆢ이리 굴렸다 저리 굴렸다 검사를 길게 한 것 같더라구. 뭔가 배가 허전하고 추운 것 같아서 고개를 숙였더니 이런 이런 ~ 내 소중한 뱃털을 밀어버린 거야.핑크뱃살 뽀록나서 진짜 창피했어.
"나이에 비해 아주 건강하고 별다른 이상 없습니다. 치아 관리도 잘 되었구요. 면역 수치도 정상입니다."
두 집사가"정말요?" 하면서 기뻐하는 거야. 나도 안심했어. 우리 집사들이 좋아하니 나도 기운이 절로 나더라고. 총 진료비가 56만 원 나왔어. 살림살이 뻔히 아는데 굉장히 미안했어. 토하지 않고 밥 잘 먹었으면 이렇게 큰돈 깨물어 먹을 일 없는데 말이야.
" 아픈데 없다니 천만다행이다. 크게 아파서 수술이라도 했으면 우리 신라가 얼마나 고생했을까?"
난 돈걱정을 하는데 두 집사는 내걱정하는 게 또 맴찢 했어.싸나이 가슴을 막 울리더라고. 나를 병원 데려갈 때는 집사들이 우울했는데 이상 없다는 결과를 듣고 나서는 엄청 기뻐하는 거야. 그모습 보면서 브런치에서 구독 구걸이라도 해서 우리 집사들에게 효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아주 하찮은 똥고양이를 금이야 옥이아 뫠시고 있는 집사를 위해 밥도 잘 먹고 응가도 잘 싸고, 똥꼬 발랄하게 살아갈 끄야.
일주일 정도 됐는데 난 지금도 병원에서의 기억이 선명해. 전광판 내 이름 옆에 작은 집사 이름도 적혀있었거든. 기절하기 직전 마지막 들었던 소리가 뭔 줄 아니?
간호사 쌤이
"신라 보호자님, 2번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얘들아~~ 나도 보호자 있다냥. 병원에 진료 카드도 있다냥. 칭구들도 아프지 말고 밥 잘 먹고 응가 잘 싸고 그래. 집사들 소원은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있어 주기만을 바라는 것 같아. 설날 응급실 가지말구. 잘 지내, 알았찡.
근데 어이, 두 집사들~ 내가 뱃털 밀리고 생사의 고비에서 진료받고 있을 때 맥도널드 간 것 같더라. 빵이 목에 넘어 가드나? 너무한거아냐? 구독 구걸 취소할까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