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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도 보호자가 필요해

신라의 군밤 까는 이야기(2)

by 해조음

피도 눈물도 없는 야수 조상님들의 피를 이어받아서 좀처럼 누구 자랑 안 하는데, 오늘은 설 명절도 돌아오고 하니 덕담 겸 우리 큰 집사 작은 집사 자랑 좀 할까 싶어.

내 나이 12살, 인간 나이로 80살 넘은 묘르신이야. 한 달 전부터는 밥맛이 뚝 떨어지고 응가도 시원찮고 깃털 놀이도 재미없더라구.

깨작깨작 먹고 나면 바로 토하기를 반복했어.

큰 집사가 작은 집사더러 큰 병원 예약 하라고 시키더라구.

병원 가기 전 날, 아무리 냐옹거려도 밥을 주지 않았어. 금식하라고 했나 봐. 두 집사가 나를 껴안으면서

"신라야, 아프지 마. 우리랑 오래오래 살자. 내일 병원 가서 치료해 줄게. 조금만 참아" 하면서 우는데 내가 아무리 야수의 심장을 가졌기로서니 뭉클한 거야. 혹시나 내가 의사 할퀼까 봐 무서웠는지 진정제 약을 줬더라고. 약기운 때문인지 이동장 안에서 비몽사몽 누워있는데, 노부부가 먼치킨 두 마리를 중성화시키려 데려왔어.

어쩜 눈도크고 얼굴도 동글동글 하니 귀족의 고고한 자태가 흘러서 냥이계의 김태희 언니를 본 것 같았어. 내가 봐도 진짜 예쁘더라. 내가 인간이라면 이왕이면 품종 고양이 키우지 나 같은 길냥이는 키울것같았어.

"이 집 고양이는 품종이 뭐예요?"

노부부가 큰 집사한테 묻더군.

그러자 작은 집사가 당당하게

"우리 고양이는 삼색이에요."대답하는데 너무 멋지면서 무안했어. 솔까, 나 같은 고양이는 그냥 길에서 태어나 죽어도 슬퍼하지도 않잖아. 토하고 밥 안 먹는다고 대형 병원 예약까지 잡아 주다니... 감동 그 잡채였어. 작은 집사, 흑흑 넌 내 임영웅이야.

작은 집사가 메모한 것들을 의사쌤에게 똘똘하게 물어보더라구.

"우리 신라 입술이랑 등에 아주 작은 점이 있는데, 세세히 좀 살펴주세요."


가람 보람 칭구들

그 말까지 듣고는 정말 기절한 것 같아.

혈액검사, 엑스레이, 초음파ᆢ이리 굴렸다 저리 굴렸다 검사를 길게 한 것 같더라구. 뭔가 배가 허전하고 추운 것 같아서 고개를 숙였더니 이런 이런 ~ 내 소중한 뱃털을 밀어버린 거야. 핑크뱃살 뽀록나서 진짜 창피했어.

"나이에 비해 아주 건강하고 별다른 이상 없습니다. 치아 관리도 잘 되었구요. 면역 수치도 정상입니다."

두 집사가"정말요?" 하면서 기뻐하는 거야. 나도 안심했어. 우리 집사들이 좋아하니 나도 기운이 절로 나더라고. 총 진료비가 56만 원 나왔어. 살림살이 뻔히 아는데 굉장히 미안했어. 토하지 않고 밥 잘 먹었으면 이렇게 큰돈 깨물어 먹을 일 없는데 말이야.

" 아픈데 없다니 천만다행이다. 크게 아파서 수술이라도 했으면 우리 신라가 얼마나 고생했을까?"

난 돈 걱정을 하는데 두 집사는 내 걱정하는 게 맴찢 했어. 싸나이 가슴을 막 울리더라고. 나를 병원 데려갈 때는 집사들이 우울했는데 이상 없다는 결과를 듣고 나서는 엄청 기뻐하는 거야. 그 모습 보면서 브런치에서 구독 구걸이라도 해서 우리 집사들에게 효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아주 하찮은 똥고양이를 금이야 옥이아 뫠시고 있는 집사를 위해 밥도 잘 먹고 응가도 잘 싸고, 똥꼬 발랄하게 살아갈 끄야.

일주일 정도 됐는데 난 지금도 병원에서의 기억이 선명해. 전광판 내 이름 옆에 작은 집사 이름도 적혀있었거든. 절하기 직전 마지막 들었던 소리가 뭔 줄 아니?

간호사 쌤이

"신라 보호자님, 2번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얘들아~~ 나도 보호자 있다냥. 병원에 진료 카드도 있다냥. 칭구들도 아프지 말고 밥 잘 먹고 응가 잘 싸고 그래. 집사들 소원은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있어 주기만을 바라는 것 같아. 설날 응급실 가지말구. 잘 지내, 알았찡.


근데 어이, 두 집사들~ 내가 뱃털 밀리고 생사의 고비에서 진료받고 있을 때 맥도널드 간 것 같더라. 빵이 목에 넘어 가드나? 너무 아냐? 구독 구걸 취소할까부다.

핑크뱃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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