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조음 Mar 10. 2024

고양이 아들이 되고 싶다는 사나이

산에서 북 치던 고양이(2)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주었다던 제비처럼, 강원도 첩첩산중 농가 주택에서 독수리가 떨어뜨린 고양이 산북이는 언니 집사의 젖병 수발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중성화 수술까지 마치고 나니 더 이상 산에서 북 치던 고양이가 아니었다.

' < 미스 강원 고양이 선발 대회>에서 영예의 골든상을 받고도 남겠다'(?)는 의미로 '골드'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이름대로 찬란한 묘생을 살고 계시다.

 하지만 언니 집사는  산북이가 입에 붙어서인지 '골드' 라고 부르지 않고 산북이를 고집하는 편이다.


어느 날 언니 집사의 푸념 섞인 전화가 걸려왔다.


"에고고~우리는 산북이 때문에 해외여행도 맘대로  못 나간다니까... 같이 데리고 갈 수도 없고..."


" 아들내미가 집에 있잖아? 뭐가 문제야?" 


"얘는~~ 우리가 산북이 보고 싶어서 못 간다니까. 딴소리하고 자빠졌네."


아하~그렇다. 산북이가 눈에 밟혀서 멀리 떠나지 못하는 마음, 같은 집사로써 충분히 공감이 간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집을 나서면, 출발 한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오로지 산북이 이야기뿐이다.

노년 부부의 여행은 신혼부부들처럼 들떠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데데해서 별 할 말이 없다. 서로 어색할 땐 고양이로 수다 떠는 게 최고다.


"우리 산북이는 잘 있을까? 밥은 잘 먹었을까? 자기 두고 갔다고 전기렌지 눌러서 집 홀라당 태워먹는 거 아니겠지?"


"경치 좋다. 우리 산북이는 이런 구경도 못하고 아쉽네. 다음엔 산북이 데리고 가족사진 촬영 한번 해봐야겠어."


그러면서 아깽이 시절의 산북이 사진을 보고 또 바라본다. 급기야 갱년기 후유증으로 인해 성질이 급해진 언니는 출발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전화를 건다.


"아들, 우리 산북이는?"


"어무이~쫌. 아들은 안 궁금 혀요? 어딜 가실 거면  반찬거리나 만들어 놓고 가셔야지, 먹을게 신 김치밖에 없네. 냉장고에 죄다 고양 연유, 칼슘제, 습식, 이유식에다 수입 간식ᆢ야채칸에는 캣그라스까지... 히햐~ 나, 어무이 아들 맞어? 고양이가 부럽긴 처음이네. 나도 고양이 아들로 태어날까부다."


수염 듬성듬성한 아들이 신세를 한탄하기 무섭게


"얌마! 니는 사람이고 우리 산북이는 고양이잖혀. 니는 라면이라도 끼리먹지만 불쌍한 산북이는 캔도 못 따잖아! 니가 산북이처럼 귀엽기를 허냐? 반갑다고 발라당을 하냐? 잔 말 말고 산북이 X이나 잘 치우고, 사냥놀이 동영상이나 찍어서 보내!"


아이고 아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갱년기 아지매, 자기 어무이 라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린 모양이다.

그 이후로도 차라리 '고양이 아들'이 되고 싶다는 '사람 아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밥은 잘 먹었나? 물은 얼마큼 먹었나? 간식 너무 많이 먹이면 토한다. 엄마 안보고 싶어하드나 ?엄마없다고 우울해보이지는 않하나?'


시시콜콜 전화를 해댄다. 만약 옆에서 통화 내용을 엿듣는다면  손수건 없이는 볼수없는 애절한 자식 사랑  영화의 한 장면이다.


 진짜 아들은 '그냥 아들'이고, 산북이는 '우리 산북이'라고 거북살스럽게 불러대는 엄마의 잔소리에 진짜 사람 아들은 차라리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은 괜한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이틀간 집을 비워도 난리가 나니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못꿀일이다.


23일의 여행을 마치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승용차가 들어온다. 주차선을 맞추려고 정차하며 핸들을 돌리려는데


"나부터 먼저 올라갈게. 주차 잘하고 와."


"아니, 이 사람아, 트렁크에 갈치랑 멸치상자를 같이 들고 올라가야지? "


"빽!!!당신이 들고 와!! 우리 산북이부텀 봐야 해."


후~~ 고양이 아들에 이어서 남편도 고양이가 되고 싶은 표정이다.

그래도 아프다고, 우울하다고, 종일 무기력하게 누워있거나 병원 다니는 것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는지 혼자서 짐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산북아!!! 엄마 왔다!!! 엄마 보고싶 었쪄? 안보고 싶었쪄?"


조용한 집안이 다시 갱년기 아지매의 코맹맹 목청소리에 화들짝 깨어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에서 북 치던 고양이(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