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우주라는 소재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인 감상을 갖고 있지 않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으려 했다. 호평이 가득하다는 이유로 기대를 잔뜩 하고 가면 대게 그보다 못 미치곤 하니까. 이건 기대작을 대할 때 일부러 갖는 습관인 거다.
영화는 총 3부로 나뉘어있고 1부부터 꽤 거세게 몰아붙인다. 물음표를 가득 안겨 주다가 사이사이 우스꽝스러운 느낌표를 던져 준다. 흐름에 몸을 맡기고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으면 꼭 내가 양자경과 함께 멀티버스 여행이라도 하는 것만 같다. 셀 수도 없이 무수히 많은 우주를 신나게 휘젓고 돌아다닌다. 꽤 많은 영화를 봤다고 생각하는데도 신선하게 느껴지는 연출이 많았다.
이 영화는 난잡하게 우스꽝스럽고 기이한 에너지로 정신을 쏙 빼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지 않다. 유머러스 속에 삶에 대한 애환과 사랑을 적당히 녹여 넣었다. 아닌 척 인류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는 영화다.
무수한 우주 속 우리는 티끌도 되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좋지 않은 갈림길만 선택하여 최악의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자꾸만 묻고 흩트린다. 너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야? 인생에 답 같은 게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오답노트를 작성해야 하는 건가.
생명체가 아닌 돌멩이가 되어 대화하는 엄마와 딸을 바라보는데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자꾸 내 가슴에 잔잔히 돌을 던졌다. 우리는 모두 멍청해. 형편없어. 그래, 맞다. 나는 자주 형편없는 사람이고 멍청한 짓도 종종 한다. 우당탕탕 넘어지고 발을 헛디딘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그게 나인데. 발을 디디고 서있는 지금 현재인데. 결국 다시 일어나 또 다시 봄을 맞이할 텐데.
그 무수히 많은 우주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악의 너를 선택할 것이다. 평범한 너이기에 더욱 안아줄 것이다.
너는 그대로도 충분한 사람이니까.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영화이고, 다정에 대한 영화이다. 엄마가 딸에게 건네는 무한한 사랑을 품고 있다. 규칙 따위 신경 쓰지 말자고 말한다.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이 콧잔등을 시리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