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하는 생각이지만 프랑스 영화는 참으로 나와 맞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기 마련이니 그 확률을 꿰뚫고 나를 홀리는 작품도 분명 있다. 허나 대개의 경우 나는 그들의 지나친 자유분방함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유교의 나라에서 오래 자란 탓인지 도덕적 관념이 높은 건지.
정비율로 시작되는 화면은 이렇다 할 낌새도 없이 본론으로 넘어가 버려, 스크린을 보던 난 잠시 당황한다. 이 영화는 1987년도에 만들어졌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이 오래된 영화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세련된 색채를 뽐낸다. 주인공들의 패션마저도 그렇다. 결국 오랜 시간 승리하는 건 클래식이구나 싶은 마음에 어쩐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영화는 두 여자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블랑쉬와 레아는 우연한 만남으로 좋은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은 다채로운 대화와 감정을 나누며 우정의 깊이를 넓힌다. 서로를 자신에게 있어 좋은 사람이라고 망설임없이 확신한다.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레아는 남자 친구인 파비앙을 두고 여행을 떠난다. 그러면서 블랑쉬에게 테니스 티켓을 주는데, 여기서 참으로 형언하기 힘든 신기한 대화가 오고 간다. 레아는 아직 파비앙과 헤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블랑쉬와 파비앙을 엮어주려는 느낌이다. 허나 블랑쉬는 파비앙의 친구인 알렉상드르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
좋아하는 이 앞에만 서면 바보같이 굳어버리는 블랑쉬는 알렉상드르와의 거리는 좁히지 못하지만, 파비앙과는 편안하게 대화하며 시간을 나눈다.
파비앙과 블랑쉬는 공통점이 많고 죽이 잘 맞는다. 그들은 좋아하는 물을 마음껏 느끼고 푸른 녹음 속에서 함께 걷는다. 초록의 잎이 가득히 흔들리던 어느 날, 블랑쉬는 파비앙에게 흐르는 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이 도화선이라도 되는 양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고 있다는 걸 고백한다.
알렉상드르에 대한 마음이 실체 없는 모호한 것이었다면 파비앙은 지금 여기 블랑쉬의 눈앞에 존재하면 직접적인 행복을 안겨준다. 블랑쉬는 다른 사람과는 그 행복을 느낄 수 없을까 두려워한다.
짧지만 강렬했던 교류는 레아가 다시 돌아옴으로 끝이 난다.
허나 이야기는 또 한 번 예기치 못한 흐름으로 튄다. 레아와 파비앙은 결국 서로를 덤덤히 정리하고, 알렉상드르는 레아에 대한 호감을 표한다.
이토록 얽히고설키는 관계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기막힌 웃음이 나는 것이다. 블랑쉬와 레아가 인지하고 있듯 그들이 나누는 감정은 배신도 포함되어 있기에 그전까지 난 무감한 얼굴로 그들의 청춘을 지켜봤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레아와 블랑쉬는 결국 부딪힌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말을 오해하고는 정말로 그럴싸하게 들어맞는 대화를 주고받는다. 레아는 노기에 인상을 찡그리고 블랑쉬는 괴롭게 눈물을 흘린다. 분명 격정적인 감정들이 오가는데 이상하게 내 입가에는 미소가 걸쳐있다. 그러다 두 사람의 오해가 깨어지는 어떠한 순간, 그녀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을 때 결국 나 역시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리는 거다.
그리곤 어딘가 허탈해져 남은 잔웃음을 힘없이 흘린다. 짓궂은 장난이라도 거는 양 내 마음을 간지럽혀 속절없이 웃게 만든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건지 싶다가 본인들이 행복하다는데 내가 뭘 어쩌겠어 하고 힘을 뺀다. 도통 미워할 수가 없다.
네 사람이 모인 순간 참으로 우습게도 두 가지의 색이 어긋나게 교차한다. 그들은 모두 '진정한 나'의 색을 찾은 것이다. 이토록 어이없게 사랑스러울 수 있다니. 설익었던 열매가 제 색을 찾아 환하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내가 어떻게 그걸 미워할 수가 있겠나.
이런 새콤한 희극을 만들어내는 것이 에릭 로메르의 힘일까 생각해 보며 나는 다시금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 그리곤 그들처럼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