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천이야기 15 - 개천에서 울고 있는 용
너 그때 집안이 아주 안 좋지 않았어?
남편이 고등학교 때 친구를 삼십여 년 만에 만났는데 그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고,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만 기억한다고 투덜 댔다.
몇 년 전 남편이 학창 시절 다니던 목사님을 대학 채플에 강사로 모셨는데,
저기 김교수네 집안이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 아느냐, 다 예수 믿고 출세한 거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했단다.
그날도 남편은 성이 나서 투덜댔다.
교목실장으로 강사를 선정할 책임이 있던 남편이 자신을 키워준 목사님께 감사하는 마음에 강사로 모셨는데, 기껏 자신을 개천의 용으로 설명하고 그 개천을 전 직원과 대학생들에게 알린 것이다. 하나님을 팔아서...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은 결코 고맙지 않다. 개천의 수치스러움에 휩싸여 오히려 상대를 비난하게 된다.
어쩜 그 목사님도 아니꼬왔는지도 모른다.
그 시커멓던 가난뱅이 고등학생이 대학교수라고 채플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내가 키웠으나 너무 컸다.
사람들에게 자기 자랑과 동시에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이다.
별거 아니야, 그지였어....
그렇게 시기심을 들키고 만다.
우리가 동양빌라 지층 1호에 살고 있을 땐,
지층에 살고 있냐?
목사님 사모님이 한 말에 '겨우 그런데 사는 거야?'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또 남편은 속상해했다.
개천이 건드려지는 순간, 민감한 촉수에 걸리고, 그때마다 움추러들고, 분노하면서 방어를 한다.
내가 개천을 청소하려는 이유도 그렇다. 꼬인 뇌를 풀어내자.
적극적 사고방식
나를 위한 방향으로 해석하기
남편도 무단히 이렇게 설교하고 글을 쓰며 노력했다.
그러나 설교를 듣는 타인은 감동받는데, 정작 본인의 무의식은 감동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다.
목사님들은 예수를 믿으면
가정이 변하고, 운명이 변하고, 인생이 변한다고 설교했다.
난 그 말을 믿었고, 아니 믿고 싶었다.
나의 개천을 바꾸고 용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용이 되어도
개천을 떠날 수가 없다.
무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는 개천은 병마골 화장실처럼 차고 넘쳐 영혼을 공격한다.
그래서 나아가던 길을 잃는다.
돌이켜보면 늘 울었다.
서점에서 점원을 할 때는 이불속에서 울었고,
대기업 다닐 땐 화장실에서 울었다.
부장교사가 되어서는 다리 밑에 차를 세워두고 울었고
교감 때는 후배 부장을 안고 울었다.
교장이 되어서 비로소 소리 내지 않는 울음을 삼켰다.
울면서 울면서 허덕 허덕
징징거렸다.
이제는 개천을 청소하겠다면서
개천을 햇볕아래 널었다.
세상에 공개하는 자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선배는 말한다.
그때는 다들 가난했어.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욕하려고 했다.
어쩜 그리 재능이 많은 거야?
욕하는 선배가 참 고맙다. 개천이 아닌 재능을 보고 응원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위 그림을 '남편의 정원'이라 제목 달았다. 작년 11월부터 8절 켄트지에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삽화로 쓰일지는 몰랐다.
그림과 사진은 모두 내 손이 낳았다. Ai로 그린 작품이 좋지 않다고 큰아들이 이야기한다. 솜씨가 부족한 까닭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