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큰아들 왔어요.
경기도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할 때이다.
한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쉬는 시간마다 내 곁으로 왔다. 그리고 집에서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이야기한다. 화장실을 가면 거기까지 졸졸 따라오면서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 아이 이름은 범모였다.
범모는 초등학교 선생님 아들이다. 동화책을 아주 실감 나게 읽는다.
나는 수업 시작 전에 동화책 읽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집에서 제일 재미있는 책을 가져오게 하였고, 그중에서 하나를 뽑아 10분간 읽어 준다. 아이들이 한참 이야기에 빠져들 무렵 시간은 끝나고 뒷 이야기가 궁금하면 그 책을 빌려 읽으라고 했다.
책이 선정된 아이는 하루 종일 인싸가 된다. 서로 빌려서 읽으려고 하고 같이 모여서 읽기도 한다. 그때 범모가 답답한지 대신 읽어주고 친구들은 범모 곁으로 모여들었다. 범모는 드디어 선생님 꼬리 잡기에서 벗어나 친구들 속에 묻혔다.
범모를 볼 때마다 우리 첫째가 생각났다. 첫째도 내가 집에 오면 범모처럼 꼬리 잡기를 한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이야기했다. 어떤 발표를 했는데 선생님이 어떻게 칭찬했는지, 준비물을 가져가지 않아 울었던 이야기, 친구가 자꾸 뒤에서 괴롭혀서 울었다는 이야기...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교사가 아니면 학교에 뛰어가서 우리 아이를 괴롭히는 녀석을 아주 혼내주고 싶었다.
첫째는 커서도 힘들고 속상한 이야기를 참기도 하지만 결국 다 이야기하는 편이다.
우는 아이 젖 준다고 그래서 둘째보다 큰 아이에게 더 시간이나 관심을 많이 준 것 같다.
둘째는 형을 보면서 배우고 형을 반면교사로 삼으면서 컸다. 그래서 꾸중들을 일이 적었다.
둘째는 자신의 어렵고 힘든 이야기나, 부정적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학교방문을 통해 소식을 들어야 한다. 학교 선생님들은 칭찬 일색이다. 친구 관계도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아주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믿었다.
성인이 된 아들은 학창 시절에 자기가 많이 싸웠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나는 둘째가 성격이 좋아서 싸움 한번 안 했다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둘째는 늘 당당하고 긍정 마인드를 지녔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논리적인 설명으로 엄마나 아빠 편을 들았고, 때로는 엄마를 가르치는 아들이라 의지가 되었다. 그래서 혼자 감내하는 속사정을 알지 못했다.
엄마 큰아들 왔어요.
형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는데 빈정거리는 말투로 툭 던지고 나간다. 자신은 아들 대접을 못 받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재수 시절에도 많이 힘들었는지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학원에서 아이가 규칙을 어겼다는 전화를 받았다. 학원은 규칙을 두세 번 어기면 퇴출이다.
학원에 등원하면 저녁 하원까지 외출금지인데, 점심시간에 당구장에서 학원 강사와 맞닥뜨린 것이다. 그렇게 규칙을 어긴 아들은 수능 한 달을 앞두고 학원을 나왔다. 독서실에서 마지막 정리를 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나는 자신의 의지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아들은 규칙을 어겼을 때 한참 변명을 한다. 퇴출되었을 때도 당당했다.
그래, 엄마는 아들 믿어. 우리 아들이 그럴 리가 없지.
지금은 혼자 정리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을 거야.
나는 항상 믿어주었고 속아주었다.
그러면서도 불안해서 자꾸 챙기게 되었고, 아들은 그것이 불편했나 보다.
엄마가 언제부터 나한테 관심을 가졌다고, 갑자기 왜 그래?
종알종알 모두 공개하는 첫째와 달리 어쩌다 내뱉는 둘째의 말들은 내 폐부 깊숙이 박힌다. 그때마다 미안했다. 내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았다.
둘째가 군에서 휴가를 나오면 나는 두 팔을 벌려 환영하며 안아주었다. 아들은 피식 웃었다.
오, 우리 일등 사수, 가문의 영광, 어서 오너라!
둘째는 JSA대원으로 판문점을 지켰다. 거기서 군인들이 무슨 대회를 하는가 보다. 태권도도 하고 격투도 하고 권총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쏘는 사격을 하는 등 다양한 훈련을 하는데 거기서 1등을 했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표창장을 보여주었다.
나는 한껏 텐션을 높여서 아들의 존재감을 높여주었다.
나는 둘째가 늘 믿음직했다. 사막에 데려다 놓아도 잘 살 것이라면서 아들의 적응력과 문제해결력에 감탄했다.
둘째는 생후 9개월부터 탁아놀이방에서 6개월을 자랐고 그 후도 교회놀이방과, 태권도학원을 겸하는 유치원, 학교병설유치원을 다녀야 했다.
그리고 잦은 이사로 초등학교를 세 군데 다녔다.
우리 부부는 이런 둘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지니고 산다. 그리고 아들이 조금만 흔들려도 모두 어린 시절 우리가 돌보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아들과 며느리는 우리를 위로한다.
잘 컸잖아요, 덕분에 이렇게 건강한 어른이 되었잖아요.
아들은 대학시절에도 잠깐 방황했다. 친구들과 다니며 새벽에야 들어왔다.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몰랐다. 사실은 지금도 모른다. 내가 알면 아들이 자존심이 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몰랐고 지금도 그때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냥 믿었다.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다독였다.
나를 닮은 아이다. 내가 방황을 잘 이겨냈듯이 아들도 지금의 방황을 잘 이겨낼 것이다. 방황하지 않는 청춘이 어디 있으랴, 그 방황을 일생의 재산으로, 에너지로 만들 것이다.
바닥을 친 사람만이 높이 오르는 법이다.
두 아들은 우리보다 더 멋있는 삶을 꾸리고 있다.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자를 만났고, 자신의 결핍을 스스로 치유하는 모습을 본다. 내가 그랬듯이.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눈치채고 눈물겹다.
며칠 전 남편의 친구 아들이 결혼했다.
친구인 혼주는 덕담으로 효도를 하라고 했다. 순간 나는 무슨 꼰대소리야 했다.
효는 다름이 아니고 너희 둘이 알콩달콩 사는 것이다.
그게 효다.
나는 역시 하면서 남편의 친구가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효의 개념에 동의했다.
우리 두 아들과 며느리는 효자다.
알콩달콩 그렇게 잘 산다.
모든 생명은 생존하려는 강한 본능을 가지고 태어나고, 저마다 맞는 성장의 길을 찾아간다.
우리가 그랬고, 우리 자녀도 그랬으며, 우리 손주들 역시 그렇게 아름답게 자라날 것이다.
방황하는 아이 앞에서는 믿어주고, 한 번쯤 속아주고,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기다림이야말로 생명을 살리는 가장 깊은 영양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