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대기업을 다니다 대학을 나와
강남사모님이 된 예쁜 동창생 A는
여고동창 모임을 피했다.
시댁에 여상 출신이 드러날까 부끄러워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키다리 아저씨가 준 장학금 1만 원을 부친상을 당한 친구 B에게 주었다.
B는 그 돈으로 남자친구들과 노는 데 썼다고 했다.
용돈이 제대로 없던 B가 쓴 그 돈이
나는 참 아까웠다.
한 달 식비였는데...
B는 내가 밤새워 공부해서 얼굴이 누렇게 떴다며 험담을 즐기던 친구다.
나는 국수를 삶아 먹을까
멀건 장국에 밥을 말아먹을까
더 경제적인 소비를 계산하던 때였다.
가난한 대학생부부가 첫아이를 낳는데
출산준비물을 챙겨준 이가 없었다.
내가 장학금을 건네주었던 친구 B가 자신의 아이를 감싼 출산준비물을 넘겨주었다.
출산준비물을 얻기 위해 흑석동 꼭대기에서
버스를 타고 잠실 석촌호수 근처 작은 아파트에 갔다.
아기 이불과 속싸개, 신생아 용품을 한 보따리 얻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철없는 남편은 거저 얻은 행복에 신났고
나는 속으로 울었다.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지만
사실은 고맙지가 않았다.
그냥 서러웠다.
결혼하고 나도 여고동창생들을 만나지 않았다.
나의 가난이
부끄러웠다.
친구 A는 과거가 부끄럽고
나는 현재가 부끄러웠다.
햇살이 환한 봄날
서러운 기억이 떠오르고
나는 또 슬프다.
우울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