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열전

나도 시어머니다

by 파도타기

설연휴네요^^ 집에서 놀고 지내니 휴일인지 아닌지 구별도 잘 안됩니다.
그래도 설연휴라고 명절스트레스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오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치유되지 않는 질병입니다.
다들 이 병에 저처럼 갇히지 마시고 즐거운 시간이시길, 저도 함께 바랍니다.

단톡방 설 명절 인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나도 답글을 쓰다가 글쟁이가 된다. 그냥 즐거운 설명절 보내세요 하면 될 것을 주절주절 썼다.

몇 년 전만 해도 명절에 시댁 가족들이 우리 집으로 모두 모였다. 그럼 우리 식구까지 20명이 넘는다. 나는 명절 일주일 전부터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집안 대청소를 해야 하고, 시어머니와 시동생네 5 식구 잠자리를 준비해야 한다. 명절은 전날 점심때부터 시작이다. 음식 솜씨도 없는데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물론 둘째 며느리인 동서가 많이 해온다. 그래도 국과 밥, 세 가지나물, 전, 물김치, 돼지갈비 등 격식을 갖춰야 한다. 돈도 많이 들지만 돈보다 어머니가 산더미로 사 오신 나물재료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 우리 시어머니는 손이 크시다. 시금치 4단, 콩나물 1kg, 숙주나물 1kg, 고사리 1kg, 도라지 2kg, 고등어 두 손, 즉 4마리...
명절 음식은 그냥 남는다. 동서가 사 온 해물찜이 주메뉴가 된다. 나물을 싸주려 하지만 고기만 싸 달란다. 우리는 매일 남은 음식을 해치다 끝내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다.

나는 이 잔치를 나의 두 아들이 결혼하고 나서 폐했다.
조카들도 모두 성장해서 47평 아파트 4개의 방에 가득 찬다. 그리고 거실에서 어머니와 그 자식들만 모여서 고향이야기를 반복한다. 사위들은 보이지도 않고 조카들은 핸드폰에 빠져있다.
우리 며느리가 생겼으니 동서도 몸이 아프단다. 이 집 며느리 시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며느리들이
나처럼 되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그 며느리들이 일하려고 하면 아들들이 말린다.

일할 사람이 없다. 결국 내가 다해야 하는 일이고, 남편이 설거지를 맡는다.
더 이상 이런 명절잔치를 계속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동서는 내가 뭐 한 게 있느냐고 한다. 자기가 다 했단다. 아무 소리도 안 했다.

아침에 둘째 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큰아들네는 해외에서 살고 있어, 둘째네와 우리 부부, 어머니 이렇게 여섯 식구만 모인다.

어머니, 이번 설에 제가 갈비찜 해갈게요.

할 줄 알아?

며칠 전 배웠어요.

그럼 나는 떡국하고 만두나 만들어야겠다. 불고기 하고...
대구포 샀어. 우리 손녀딸이 대구 잘 먹어서...

아침인데 떡만둣국 하고 간단히 먹으면 안 될까요? 김치 하고...

그럴까? 그래, 떡만둣국 하고 갈비찜 있으면 되지. 대구포전 만 만들게.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갈비찜을 해온다는 것도 고맙고, 시어머니 고생하는 것 배려해 주는 것도 고맙고...
그래 나도 시어머니다.
며느리 덕 좀 보자.

내일 만두소 넣을 것과 고기는 내일 사도 된다.
브런치 보면서 좋아하고 있는데, 이번엔 시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직 시장 안 봤으면 당신이 돈을 줄 테니 고기를 넉넉히 사라는 것이다.
두 딸과 사위들이 올 텐데 아무것도 해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있는 것 먹겠다고 했단다. 그런데 있는 것이 없으니 내가 불고기든 갈비찜이든 많이 해서 가져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늘 그렇게 해왔다. 작년 추석에도 LA갈비 4.6Kg을 했다. 그래서 남은 고기를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위해 보냈다. 물론 식혜도 했고, 물김치, 전, 도라지나물 등... 각종 명절 음식을 보냈다. 둘째 며느리도 많이 가져왔다고 했다. 그래서 음식이 남았고 갈비는 막내딸한테 들려 보내셨단다. 잘하셨다고 했다.


처음에는 우리 집에서 잔치를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미안해서 음식을 싸 보냈다. 어머니도 늘 사위들이 온다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줄 게 없는데 왜 온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하시면서 나의 도움을 요청하셨다.

사실 난 한 번도 친정에서 명절 음식을 얻어먹은 적이 없다. 늘 내가 가지고 가서 나눠 먹었다. 남동생도 자기네 식구 먹을 것을 가져와서 먹고 남은 음식은 엄마 드시라고 두거나 되가져간다.


남편도 이걸 잘 아는지라 왜 평생 엄마의 사위를 우리가 챙기느냐고 미안해한다.


사실 큰 시누이는 나처럼 장녀라 그런지 어머님을 많이 챙긴다. 요리도 잘해서 큰오빠인 남편이 먹고 싶다 하면 라자냐, 파스타 등을 많이 해온다. 온 가족이 먹고 남을 만큼,

바리스타 자격증도 있어서 아침에 먹는 커피는 최고의 향미를 자랑하는 큰 시누이표다. 그러나 고기요리는 하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그걸 아는 시어머니가 사위를 위해 내게 고기요리를 부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글을 쓰다 보니 아무것도 못했다. 거기다 며느리가 음식을 해오겠다는 것이고 그냥 간단히 하자는 것이다.

어머니께 처음으로 반기를 들었다.

저도 시어머니예요, 어머니. 우리 며느리가 갈비찜 해온다고 했는데 거기다 또 어떻게 고기요리를 하겠어요?
그리고 70이 다 된 며느리가 60 된 시누이 음식을 해야겠어요?
저 못해요.

어머니는 깔깔 웃으셨다.

그래, 안 그래도 너희 둘(우리 부부)이 고생하는 것이 안 좋았는데 손주며느리가 갈비찜을 해온다니 참 좋다. 사서 먹든 시켜 먹든 하겠지 뭐.

통화내용을 옆에서 듣던 남편이 화를 낸다.

by 파도타기 <창가>

어머니는 대사가 언제나 똑같다.
돈을 주면 우리가 받겠냐? 그냥 정육점 가서 불고기감을 사시면 되지 않나? 양념도 다 해주던데... 그걸 꼭 우리한테 시켜야 하나? 매년 그러신다고...

나도 볼멘소리를 했다.
어머니한테는 여전히 내가 하녀지 뭐.
우리 엄마한테도 여전히 내가 하녀고.

사실 두 어머니 모두 내가 가장 편하고 만만하신 듯했다. 큰아들. 맏며느리가 최고라고 늘 칭찬하시면서 당신의 체면치레를 우리에게 맡긴다.

우린 장남, 장녀 콤플렉스에 갇혀
네, 네, 어머니. 효자. 효부가 된다.
어머님 동생들도 합세한다.
조카가 고생이 많다. 그렇게 잘한다면서? 엄마가 늘 칭찬하셔.

그 칭찬이 고맙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는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나는 정육점으로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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