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런치 작가다

글쓰기는 내부고발이 문제야

by 파도타기


대학시절 문학동아리에 가입했는데, 당시는 시를 주로 썼다.
시는 이렇게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자세히 써서 스스로 무덤을 파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난 시를 잘 쓰지 못했다.
쓰기만 하면 선배들한테 깨졌다.
선배들 시는 수려하고
언어들도 향기롭다.
촌스런 나의 시는 투박하고 녹물만 쏟아내어 시의 위상을 흔들 뿐이었다.

그 후로 나는 나의 글에 자신이 없다.
주로 교단 일기나 수필만 썼다.

그 일기도 담임교사를 그만두고 부장교사가 되면서 끊었다. 쓸거리가 없었다. 그래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학부모들에게 희망을 주고 교육에 대한 신뢰를 주어야 하지 않는가?
승진벨트를 타면 그런 이야기는 사라진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바다로 추락하는, 브레이크 고장 난 열차를 탄 것 같다.

은퇴를 하고 5년이 지났고, 드디어 심심해진 나는 혼자 유튜브 선생님들에게 그림을 배우며 수채화를 그리고, 80세에 전시회를 할 거라고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이야기했다. 잔치에 오면 본인이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씩 가져가라고...
그러다 이번엔 글도 써보았는데, 아들이 브런치작가라는 게 있는데 해보라고 소개했다. 내가 뭐 되겠어? 신청한 지 이틀도 안되어 승인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다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읽는 사람이라는 것을 작가 된 지 17일 만에 깨닫는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독서광, 아니 문자 중독자였다. 식사 때가 되었는데 밥 할 준비도 안 하고 신문을 다 읽고 광고까지 꼼꼼히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내가 문자중독이구나' 했다. 어쩌면 밥 하기가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결혼 후부터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대학원 교재들과 수업연구를 위한 교육도서들, 그리고 남편의 책을 읽는 게 전부였다.

내 글에 ' 라이킷, 좋아요'를 해주신 분들이 고마워서 어떤 분인가 따라가면 참 좋은 글을 쓰는 진짜 작가들이다. 좋은 글에 빠져서 많은 글을 읽게 된다.
작가들의 글을 읽다가 울컥하기도 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만난다. 상담전문가, 소설가, 시인, 화가, 작곡가, 작사가, 교사, 동화작가, 방송작가...
따스한 커피 한잔으로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바리스타의 아름다운 이야기,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위로하는 젊은 교사... 해외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런 훌륭한 작가들과 한 울타리에 있다는 충족감은 영광스럽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서 부족한 내 글에 부끄러움도 느낀다.

지난해 말 처음 그림을 그렸는데, 내 생각보다 잘 그려졌다.
학창 시절 미술반에서 잠깐 수채화를 그렸고, 교대에서 미술교육을 부전공으로 했다. 그리고 한국화로 졸업전시회를 했다. 교대 미술교육과는 타대학 미술전공과 아주 다르다. 미술능력과 관계없이 희망에 따라 부전공이 정해진다. 초등교육에서 다루는 전 과목에 대하여 3학점씩 배운다. 창작무용 체조등은 1학점 2학점이다. 즉, 한 학기에 주당 1시간~3시간 배운다. 이렇게 쪼개진 과목들이 아주 많다.
미술교육도 그렇다. 조소, 소묘, 염색, 목공예, 수채화, 서예, 유화, 디자인, 한국화, 해부학.... 미술 관련 모든 것을 쪼개어 1~3시간씩 배운다.
그러니 무얼 잘하긴 힘들다.
그래도 동기들 중 도자기 공예가, 서예가, 서양화가, 한국화가 등 작가가 되어 전시도 하고 교수도 된다.

난 한국화로 졸업했지만 전시회에 낸 작품을 버리고 왔다. 졸업 자체가 목표였다. 남들은 틈틈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한 가지 분야를 깊이 팠고, 졸업 후에는 화실에 다니면서 작가로 성장하는데, 난 그저 부러워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꼭 다시 그림을 그릴 거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수채화다.

스스로 만족해서 주변에 자랑도 했는데, 매일 한 점씩 그리다 보니 처음 마음에 든 그림들의 허점이 보이고 촌스러웠다. 눈이 높아졌고 표현력이 좋아진 것이라 스스로 다독이며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이 좋은 수채화 화가들을 소개했다. 배울 게 많다고 좋아하면서 다시 그리고 또 그린다.

그러다 문득 내 그림이 그렇게 초라할 수 없다.
40년 그린 화가들 작품과 이제 두 달 된 내 그림을 비교하다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또 같은 느낌을 받는다.
브런치 작가들의 글은 문장이 수려하고, 삶을 통찰하고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또 움츠러든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어제 특별한 경험을 했다.
명절 1주일 전부터 스트레스를 늘 겪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배도 아프다. 몸살 기운도 있고 종종 방광염도 생긴다.
그런데 그 스트레스를 글로 풀어내고 나니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기분도 상쾌했고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마트에 갔는데 이것저것이 눈에 보인다.
잡채를 해야겠어. 만두도 밀가루로 만두피를 직접 만들어볼까? 문어숙회도 좋겠네. 식혜와, 물김치도 해야지, 멸치볶음을 좋아하던데 해서 보내야지...
그렇게 하루 종일 명절 음식을 했고,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머리는 아프지 않았다.

시어머니도 사위들을 위해 고기도 사고 오징어도 사고, 나를 위해 물김치도 담으셨단다.

결국 시어머니께 며느리가 해온 갈비와 흥얼거리며 만든 잡채, 문어숙회, 멸치볶음, 식혜 등과 과일, 그리고 손주며느리가 사 온 할머니 선물까지 가득 보냈다.
이번엔 남은 음식을 해치울 고민도 없다.
글쓰기의 효능, 브런치가 대나무 숲이 된 까닭이다.

둘째 아들이 농을 한다.
엄마한테 잘해야 해. 잘못하면 글로 다 써버리니까...
갑자기 미안했다. 시누이한테도 공연히 미안하다.
그러니까 글은 내부고발이 문제라니까..

시할머니, 시외할머니, 시부모 선물까지 꼼꼼하게 챙긴 며느리들... 친정도 또 챙겨야 할 것이다.
갑자기 결혼초 그러한 행사로 버거웠던 명절이 생각났다.
며느리들, 고마워! 미안해....
그렇게 안 해도 된다. 그냥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주면 그게 선물이지...
얼굴 한 번 보여주면 충분해!

by 파도타기<포인세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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