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키우기는 다 힘들다.
엄마가 언니 업고 다니며 장사하던 얘기를 나도 몇 년 전에 들었어..
그때 논두렁에서 밥 먹는 사람들을 보고 등뒤에서 애기가 밥냄새 맡고 밥 달라고 막 울었대.. 엄마가 애기한테 울지 마라 해도 계속 울어서 멀리 가서 때렸대.. 그게 언니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하더라
난 이 얘기 듣고 언니 상처받을까 봐 말 안 하는 게 낫겠다 생각했어
근데 상처는 어릴수록 더 깊이 가라앉아서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아도 응어리로 남게 된대..
(그래서 태교가 중요하다 하잖아) 언니 글에 이유 없이 아기꿈을 꾸고 몸이 아파진다 해서...
아기 때 상처가 아직도 낫지 않고 있나 생각했어...
아기는 아무 죄도 없이 벌을 받았어.. 그저 밥 달라고 했다가 얻어맞는 일이 여러 번 있었겠지..
아들이 딸을 귀하게 낳아 이쁘게 키우는 게 언니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야 (언니가 부모에게 받은 것을 그대로 자식한테 주지 않고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바꾸었어)
언제 다시 아기꿈을 꾸게 되면 아들이 아니라 언니 자신인 거를 알아보고 잘해줘.. 맛있는 거 실컷 먹이고 예쁜 옷 입히고 안아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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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이 내가 쓴 글을 읽고 글을 보내왔다.
동생은 내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며 이야기하지 않았단다.
나도 그랬다.
동생이 상처받을까 봐, 아들이 상처받을까 봐 숨긴 이야기가 많다.
우린 자신의 상처를 잘 모르면서 악몽을 꾸거나, 기억의 편린에 잡혀 확대하고 공포를 느끼면서, 분노하고 상처를 확대하기도 한다.
청소년기 큰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는 어릴 때 외갓집에 떨어져 살아서 늘 엄마를 좋아하나 봐요.
그 말을 듣고 폭소를 터뜨렸다.
아들이 외갓집에서 지낸 것은, 첫돌이 지나서 젖을 떼야한다고 외갓집에 보냈고 아들의 큰이모가 보름동안 보살폈다. 그건 아들이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아들은 보름 후에 우리집에 왔는데 이모한테 꼭 안겨서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다가오지 않았다. 엄마? 엄마...만 중얼거렸다. 10 여분이 지나서야 내게 안겼고 좋아하지 않았다.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왜 나를 보냈냐고...
그다음엔 아들이 4살 때 내가 수술을 해야 해서 열흘정도 외갓집에 보냈다.
그리고 아들이 10살 때 우리가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외갓집 아닌 이모네 집에 동생과 함께 한 달간 맡겼다.
그게 전부다. 외갓집에 자랐다는 기억은 엄마와 헤어진 공포가 만들어낸 오류이며 기억의 편린이다.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유아기 엄마와의 헤어짐은 자신이 버려졌다는 공포를 심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것이 애착으로 나타났고 자신이 늘 마마보이라고 스스로 책망하고 엄마의 울타리를 벗어나려 애썼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둘째 아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외갓집에서 길을 잃어서 너무 무서웠다고 그래서 꿈도 꾼다고 했다.
아들이 5살 때 제천집은 아파트였다. 기존의 2층 양옥집이 도로건설로 헐렸고 제천에 막 지어진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아들은 아파트를 처음 경험했다. 주택가에 있던 우리집에서 3살 때부터 혼자 집근처 골목길을 많이 다녀서 두려움이 없었다. 혼자 나가서 1층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다가 우리 집 5층이 아닌 3층에 내렸고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3층은 넓은 정원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데 거길 5층으로 알았고 계단을 보니 어두컴컴해서 무섭고 놀랐다는 것이다.
우린 금방 아이를 찾았다. 3층에 내렸을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호기심이 많았고 용감했다.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모르고 도전하는 아이였다. 3살부터 세발자전거를 탔고 5살에는 거의 선수였다. 그래서 동네 형들을 따라 언덕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 발을 벌리고 썰매 타듯 내려왔다. 그러다 교통사고 위험도 겪었다.
그런 둘째가 악몽을 꿀 정도로 공포를 느낀 것이다.
나는 아이를 치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외갓집에 갔을 때, 아들과 함께 3층으로 데려가서 다시 계단을 보여주며 올라왔다.
계단은 약간 어두웠지만 빛이 있었고 그다지 무서운 곳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는 그땐 정말 무서웠다면서 어리둥절했다.
그 후로 아들은 더 이상 악몽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치료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그렇게 잠깐씩이지만 아이를 잃고, 부모도 공포를 느낀다. 끝내 못 찾을 것 같은...
심장이 뛰고 손발이 떨리며 이성을 잃는다.
나 역시 잠깐씩, 그게 몇 분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아이를 잃었던 몇 번의 공포가 악몽으로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자식 키우기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힘들다.
부자든 가난하든, 배웠든 배우지 못했든.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저당 잡히고 헌신을 담보로 하는 숭고한 일이다.
난 아이들이 좋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아기는 더 예쁘다. 남의 아기도 칭찬하고 지나간다.
넌 참 귀엽구나!
참 사랑스럽네요. 이렇게 예쁘게 키우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모르는 할머니의 칭찬에 초보 엄마들은 고마움을 표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알아줘도 그 고생이 위로가 되나 보다.
할머니? 손주가 셋이니 할머니 맞다. 그래도 나는 아직은 아니라고 우긴다. 나이든 아줌마 정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