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또라이 교감?
교감시절 이야기다.
교육청에서 교감연수가 있어서 우리 교육청 산하 교감들이 모두 모였다. 같은 지부 교감들이 서로 손을 흔들고 이리로 앉아라 하며 반갑게 맞이하고 자리를 내준다. 오랜만에 만나는 발령동기 교감들이 서로 인사하기 바쁘다.
거기서 사람들은 모든 소문을 공유한다.
나를 잘 아는 같은 지부 교감이 내게 속삭인다.
우리 교육청에 전교 학생의 NEIS를 다 보는 또라이 교감이 있다네요.
그거 저 같은데요?
내가 또라이 교감으로 소문이 돌고 있나 보다.
그래도 교양 있는 분들이라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소문만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이스(NEIS)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적과 행동발달 등을 기록하는 전자시스템으로 교육부가 운영하는 것이다. 학기가 끝나면 선생님들이 성적과 행동발달 등을 기록하는데, 교감을 거쳐 최종 학교장 결재 후 학부모에게 모두 공개된다.
모든 교감이 당연히 학생생활기록을 확인한다. 그건 본연의 의무이다. 그러나 인쇄된 생활통지표 교감란에, 다른 직원에게 자신의 도장을 맡겨서 대신 찍게 하는 교감도 있다. 천 명이상 되는 학생들의 기록을 다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교사들을 믿고 결재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사에 대한 믿음은 일제강점기 보통교육 시대부터 계속되어 왔을 것이다. 담임교사가 학생을 가르치고 평가하고 통지까지 하며 책임지는 구조다.
가까운 지인이 생년월일이 잘못되었다고 수정한다고 했다. 그래서 국민학교 생활기록부를 제출해야 한다고 근처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발부받았다.
수 십 년 동안 잊고 지냈던 기록이다. 특히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고, 일반인들에겐 대체로 어떤 지장을 주지 않는다.
연예인들이나 가끔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가 공개된다. 역시 어릴 때부터 남달랐네, 개그본능이 그때도 있었던 거야? 선생님들 평가가 가장 신뢰할 만하지, 공부를 그때부터 그렇게 잘했군, 떡잎부터 달랐던 게야.
그러나 어떤 이유로 수십 년 만에 맞이하는 자신의 기록은 당사자를 퍽 당황스럽게 할 때가 많다. 더구나 요즘은 누구나 바로 자녀의 생활기록을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전반적으로 우수한 성적, 긍정적 평가라도 어느 한 부분에서 걸려 넘어진다. 그 기록은 상처이고, 분노가 되고, 교사들에 대한 신뢰를 한꺼번에 무너뜨린다. 끝내 일반화하여 모든 공교육의 신뢰까지 위협한다.
그 위험성을 아는 까닭에 나는 크지 않은 학교, 전교생의 학생기록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확인하고, 상처가 남을 기록을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교생 기록을 다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또 통지표가 인쇄된 다음에 수정해서 다시 인쇄하게 하는 교감은 교사들의 안주거리가 되기 쉽다.
결재 전에 동료교사들이 상호 점검을 2차례 이상 반드시 한다. 주로 오자 탈자, 출석일수 등을 본다.
교정은 아무리 많이 해도 수정할 부분이 꼭 나온다. 책 출판의 경우 10회까지 교정을 보기도 한다. 또한 동료교사 간 상호 점검은 문장표현까지 수정할 수 없는 분위기다. 선배의 기록을 감히 수정하는 일은 없다.
내가 부장교사의 글을 수정했다가 선배한테 엄청 깨졌다. 감히 네가 뭔데... 그랬다.
나는 교감 발령 전에 교육행정시스템 NEIS 관리 담당업무를 했던 사람이다. 그건 아무도 맡지 않으려고 하는 아주 불편한 업무다. 선생님들은 기록을 하다 조금만 잘 안 돼도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한다.
이것 안 된다 저것 봐달라, 수정해야 하는데...
담당자는 제발 수업시간에는 연락하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통지표 기록 시간에 쫓기는 교사들은 교과전담 시간, 잠깐 쉬는 동안에도 나이스 입력을 하는 것이다.
이런 바쁜 교사들에게 오자, 탈자, 출석상황. 교과활동, 재량활동, 행동발달 등의 기록에 대하여 하나하나 지적하고 수정하라고 할 수가 없다.
지적받는 교사도 불편하다. 고맙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나중에 다 수정할 건데 꼭 불러서 말해야 해? 부끄러움과 저항의 감정이 생겨 관계가 소원해진다.
내가 생각한 해법은 조용히, 부끄럽지 않게, 교사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스 기록을 직접 수정했다. 수업일수가 191인데 190으로 해놓은 것은 조용히 바꿨다. 당시 수업일수는 전교생이 같았다. 지금은 학년에 따라 다르다. 입학, 졸업 날짜로 인해 하루 이틀 차이가 나는 수가 있다. 오자와 탈자가 분명한 것들도 바꿨다. 교사들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시스템에는 누가, 무엇을, 언제, 수정했는지 기록되고 남는다. 그것을 확인하는 교사는 담당교사뿐이다. 나중에 문제가 될 일이 생긴다면 교육청 감사에서 모두 드러날 것이다.
문제는 학생평가 부분이다. 교사들은 쫑알 쫑알이라고 부르는 서술평가이다. 예전엔 교과활동은 '수 우 미 양 가 '로 평가하고, 행동발달은 '가 나 다'로 평가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 아이는 '양가'집 아이야, 우리 집에는 '양'이 너무 많아 그만 잡아와. 하면서 충청도 화법으로 놀리기도 했다.
내가 아는 지인은 자신은 늘 '나'만 받았다고, 그럴 수가 있느냐면서 분노했다. 중학교에 가니 모두 '가'만 받았단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자신이 가난하니까 무시하고 전부 '나'를 준 것이란다.
학생을 이렇게 성적이나 행동발달을 5단계 3단계로 평가하는 일은 많은 부작용을 유발했고, 학생의 성장을 촉진하는 평가방법으로 나온 것이 지금의 서술평가이다.
한 교사가 행동발달 상황에 '얄미울 정도'라는 표현을 썼다. 국어를 전공한 유능한 교사다. 참 당혹스럽다.
부모입장으로 읽었다. 뒷말을 아무리 긍정적으로 썼다 해도 부모는 '교사가 우리 아이를 얄미워했구나' 그 문장에 붙잡혀 상처를 받고, 그 상처는 교사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날 것이다.
교사를 불렀다. 내 의견을 이야기하고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보자고 했다. 스스로도 유능한 교사라는 자각하고 있는 교사다. 더구나 국어를 전공한 자신을 무시하는 일이고, 교감이면 뭐 다 알아? 하는 반발심이 생겼을 것이다. 교사는 강하게 방어를 하며 고칠 수 없다고 전혀 문제없는 표현이라고 했다. 교실에서 종종 써온 단어이고 학생들이 그 단어에 거부감이 없었단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설득했다.
그럴 수도 있다. 다만 30년 후에도 그렇게 생각할까? 교실 문화를 모르는 부모도 그렇게 생각할까?
며칠 후 수정했다면서 통지표를 가져왔다.
나는 고맙다고 진심으로 말했다. 어쩌면 그 교사는 지금도 그게 서운 할 수도 있다. 억지로 고친 것 일수도 있으니까.
정말 모든 학생들 기록을 모두 보고 수정한 것은 아니다.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주로 보는 것은 전학생들 기록이다. 전학을 하는 과정에서 출결사항 오기가 제일 많다. 그래서 각 반의 전학생 생활기록부를 먼저 본다. 그러다 보면 학부모가 보거나 나중에 학생이 발견했을 때 상처가 될 만한 문장들, '게으르다'거나, ' 예민해서 잘 참지 않고' 하는 단어나 문장이 보이면 그 반 기록을 다 본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혹시 신중하지 못한 거친 표현이 있을 확률이 많다. 전학생 이외에 각반 5번 10번 등 무작위로 선택하여 한 반에 서너 명 것을 확인한다.
그래서 교사에게 교내 메신저로 수정을 요구하고, 내게 찾아오는 교사와 대화로 설득하기도 한다. 교사 입장에선 내가 전교생 생활기록부를 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더 긴장했고, 표현에 최대한 신경을 썼다. 차츰 수정할 부분이 없어졌다.
교사들은 학부모가 자녀의 행동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수정하도록 하여 바르게 자라도록 돕는 것이라고 한다. 거짓을 쓴 것도 아니고, 학부모도 자기 자식의 행동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항변한다. 교사의 평가에 대한 지적은 간섭이며, 교권에 대한 침해라고 한다.
다 맞는 주장이다. 동의한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학부모 상담에서 다루어야 한다. 내가 유일하게 염려하는 것은, 먼 훗날 상처받을 한 개인이다.
쓰다고 모두 약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원히 박제되는 기록은 신중해야 한다. 그러니 가능하면 상처받지 않을 표현을 써보자 하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너는? 나도 같은 실수를 했을 것이다. 누군가 나의 실수를 사전에 수정하도록 도와주었다면 나의 실수가 박제되는 일이 적었을 것이다. 그것이 관리자의 업무 아닌가.
이러한 나의 나이스 점검과 수정이 소문이 났나 보다. 그래서 나를 또라이교감으로 만들었으리라.
사실 반드시 내가 소문의 당사자가 아닐 수도 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교장이 되자 시스템이 바뀌었다. 담임교사 이외에 누구도 수정할 수 없다. 교감이라도 직접 수정은 위험할 수 있다. 생활기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담임교사가 아닌 자의 생활기록부 수정은 범죄로 치부된다.
당시에는 나이스 시스템이 도입된 지 얼마 안 되어 서툰 교사가 있었다. 그래서 담당자나 관리자에게 읽기, 쓰기 권한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스템이 바뀐 이후부터 읽기 권한만 허락된다. 쓰기 권한은 오직 담임교사와 교과전담교사의 지도과목에 한정된다.
오기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분명해야 한다. 그건 전적으로 담임교사 책임이다.
교감, 교장은 사건이 발생하면 관리부족의 책임만 진다.
관리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관리 책임을 져야 하는 관리자도 억울하다.
글을 쓰다 보면 자기변명이 되기도 한다.
이런 까칠한 교감에게 서운했던 교사들에게 이제야 여기서 사과드린다.
남들은 하지 않는 일을,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강하게 추진한 나는 또라이 교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늘 학생 편만 든다고, 학부모 편이라고 수군거렸을 나의 동지, 나의 선생님들 미안합니다. 그래도 교사들이 상처받을 일을 사전에 예방한다고 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