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업무와 승진의 관련성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

by 파도타기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더니..

전전 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배교사가 막 새 학교로 전근 온 나를 맞이하는 환영 인사다.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다.


그때 우리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할 때, 선생님이 환경교육한다고 엄청 고생했잖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교사들은 내가 득도 없는 일을 바보처럼 열심히 다고 생각했구나. 너 왜 그렇게 바보야? 이젠 그렇게 손해 보는 일 하지 마. 그렇게 들렸다.

선배로서 후배를 아낀다고 한 말일 것이다.


서울의 초등학교 교사들은 보통의 경우 5년에 한 번씩 이동한다.
예전에는 3년, 4년 만에 옮기던 것이 바뀌었다. 그래서 교사들은 1년에서 5년간 한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기도 하고, 같은 학교로 함께 전근 갈 경우는 10년을 함께 근무하는 교사들도 아주 드물게 있다.
이러한 전보제도는 교사들 간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몇 년 후에 다시 만나 한다. 그래서 당시 함께 근무하는 동안의 비밀은 순식간에 새로운 학교에 공유되기도 하고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고 유지된다.

내가 재주 부린 곰이란 말이지?
그럼 누가 왕서방인가? 난 그것도 파악하지 못했다.
다시 무슨 소리인가 물었더니,

선생님이 환경교육 한 것으로 그때 김교감이 점수를 따서 교장 발령 났잖아.

처음 듣는 소리다.
내가 환경교육을 한 것은 업무가 환경교육이라고 부여되어서 충실하게 한 것이다.

훗날 보니 보통 환경교육 담당자는 연초에 학교환경교육 계획서를 기안해서 발표한다. 내용은 작년 것을 거의 그대로 두고 날짜만 바꾼 형식적인 계획서다. 교실 복도 환경구성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간섭하는 계획서이다.

환경교육 담당자가 학급별로 환경미화에 필요한 물품을 요청받아서 집계한다. 그리고 그 물품을 행정실에 부탁해서 구입한 후, 다시 학급별로 물품을 나눠주면 었다. 그렇게 업무는 끝난다.

요즘은 담임이 알아서 한다.

그런데 나는 단어 뜻대로 환경 교육을 했다. 환경 미화는 당연한 일이다. 복도 환경 구성의 경우 대형의 학년 협동작품을 제작하여 게시하기도 했다. 선생님들 재능은 다재다능하다. 수업 시간에 만든 아이들 작품을 모아 놀라운 작품을 제작하여 게시한다.


협동작품은 판크기의 화지나 마대천에 제작했다. 그래서 고학년의 경우, 그림을 잘 그리거나 좋아하는 아이들 20여명을 모아, 수업이 끝난 후에 다양한 주제로 협동해서 제작하록 지도하였고, 중앙 현관이나 복도에 게시하기도 했다.


다른 학교에서 환경교육 업무를 할 때는 광화문에 있는 문화재청에 직접 다녀왔다. 서울 문화재와 자연물 필름을 빌려와서 사진관에서 대형으로 인화하고 액자에 걸었다. 4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것들을 중심으로 4학년 교실 복도에 게시했다. 교사들이 복도환경을 구성하는 수고를 덜어주고, 교육자료를 상시 게시하여 교육에 도움이 되길 바랐다. 교장이 좋아했다.


이때의 경험은 내가 교장이 되어 학교환경을 조성할 때 도움이 되었다. 학교 계단 학습장 뒤 담벼락에 세계문화유산 사진들을 대형 현수막으로 출력하고 액자로 만들어 게시하였다. 아이들은 그 사진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꼭 그곳에 다녀온 사진 같았다. 아이들이 세계문화유산을 매일 보면서 잠재학습을 하기 바랐다.

나는 지식이 아닌 실천하는 환경교육을 하고 싶었다.
예쁘게 실내를 꾸미는 것만으로 환경교육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당시에는 환경교육 담당자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환경교육이라는 단어의 뜻대로 교육의 목표와 효율성을 따져서 실행한 것이다.

전교생이 마신 우유갑을 모아서 재생 화장지로 바꾸는 일을 했다. 교실마다 우유갑을 씻어서 말렸다.
우유갑 1kg당 두루마리 화장지 10 여개가 들어있는 한 박스로 바꿔 준다.

어떤 선생님은 우유갑을 씻는 것이 물 낭비이고, 물을 오염시킨다면서 왜 이런 무모한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협조했고 하교 후 창틀엔 우유갑이 널려있었다.

당시 화장지는 모두 학생들이 들고 왔다. 개인별로 가져오기도 했지만 저학년은 반장 엄마가 사 오기도 했다. 고학년은 반장 아이가 등교하면서 직접 낑낑거리며 들고 왔는데, 이 모습도 보기가 불편했다.


우리가 우유갑으로 화장지를 바꿔 쓰면, 나무와 숲을 지키고 지구를 보호할 수 있다는 교육도 같이 했다.


아무도 집에서 화장지를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 우리 손으로 화장지를 벌어서 쓰자.


아이들은 환호했다. 반장이 가져온 것을 쓰는 일이 꼭 고맙지만은 않았으리라.
순수한 학생들은 자신이 환경지킴이요, 지구수호자라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우유갑을 씻고 말렸다. 집에서도 실천하여 모아가지고 오기도 했다.

성남 A교회에서 작은 트럭으로 재생화장지를 싣고 와서 반별로 내놓는 우유갑의 무게를 재고 재생화장지로 바꿔주었다. 덕분에 등교하면서 화장지를 들고 오는 학생은 없었다.


성남 A교회 담임목사는 유신독재를 반대하는 일에 참여해서 정치적 핍박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는 생태환경 교육에 앞장선 목사였다. 나도 이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였다. 여름방학엔 두물머리 생태학교에 주일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다양한 생태교육을 하기도 했다. 교회는 친환경 먹거리 운동도 하였다. 아이들에게 우리밀가루와 프라이팬, 식용유만 제공하고, 들에 있는 쑥이나 돌미나리 등을 찾아 모둠별로 야채 전을 만들어 먹는 수업도 했다. 또 자연물로 악기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은 내가 환경교육을 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급식 후 남은 김치를 모아서, 6학년 수업이 끝난 후에 김치전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제비처럼 입을 벌려 서로 자기입에 넣어달라고 했다.

이 김치전을 먹기 위해 하교하지 않고 남아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졸업 후에 아이들은 김치전을 그때부터 좋아하게 되었다면서 행복한 추억에 감사하는 편지를 보냈다.

나는 아이들이 제비처럼 사랑스럽다고 생각을 했고, 이 장면을 떠올리면 행복해진다.


당시는 매년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라고 하는 아나바다 운동으로 학교마다 바자회를 했다. 전교생이 집에서 신발과 옷, 장난감, 가방 등 온갖 중고물품을 가져왔고 교실마다 물건이 쌓였다.


지금은 '당근'에서 하고 있는 일을 경제교육으로 학교에서 한 것이다. 담당자는 내가 아니고 다른 교사였다.

이때 동원되는 사람들이 학부모회이다. 학부모 단체 임원들은 반별로 또는 학년별로 들어온 물건을 분류하고 정리하여 다시 학생들과 학부모, 동네주민들에게 팔았다.

물건 값은 몇백 원에서 비싼 것은 5천 원까지 했다. 학용품은 대게 100 원, 200 원이었고, 티셔츠, 바지 등은 천 원, 이천 원에 팔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들도 인라인스케이트를 1000 원에 샀다. 나는 아들들의 옷도 제법 구입했다.

저녁이 되면 명품 청바지도 500 원이면 샀다.

싸게 팔았고, 원하는 사람에게 그냥 가져가라고 하고, 남은 물건은 트럭에 실어 재활용 센터로 보냈다.


이 바자회 한 구석에는 재생 학용품을 판다. 재생용지로 만든 공책이나 스케치북, 기타 학용품들을 싸게 팔았다. 이것 역시 성남 A교회가 물품을 제공했다.


바자회로 번 돈은 모두 학교 행정실에 학교발전기금으로 접수하, 학생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금액이 너무 적다고 모금을 하기도 했다. 각 반별로 적어도 얼마를 채우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이것은 문제가 되었다. 학교발전기금이 반드시 학생들을 위해 쓰이고 있느냐는 의심도 받았다. 또 이런 일에 동원되는 것을 불평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결국 오늘날 바자회는 학교에서 사라졌다.


나는 학교를 위해 무얼 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맡은 업무를 좀 더 열심히 했을 뿐이고, 무엇보다 실천을 통해 진짜 환경교육을 하고 싶었다.


학년 말이면 학교는 교육청에 우수교육 사례를 제출한다.
당시 누군가 이러한 활동을 엮고 정리해서 학교우수사례로 제출하였고, 우리 학교는 환경교육 우수사례 부문에서 교육감상을 수상했다.


선배교사는 이 일을 말하는 것 같다. 이듬해 교감이 교장으로 승진되었는데, 이 상이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사실 실제 일을 추진한 나는 아무런 득이 없지 않았느냐 하는 말이다.
당시는 그냥 웃었다. 그러냐고. 하면서.

그림: 파도타기 < 나무 젠탱글 색칠>


그때 나는 겨우 5~7년 차 교사였다. 승진을 상상하지도 않은 시기다.

그 일이 우수사례가 되는지도 몰랐고 교육청에 그런 것을 제출하는 것도 몰랐다. 교육감상을 받았다고 현수막이 교문에 걸렸지만 그것이 내 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훗날 교감이 되고 보니 그 선생님 말이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교장승진에서 가장 큰 점수는 경력점수다. 먼저 교감이 된 사람이 제일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래서 후배가 먼저 되기는 쉽지 않다. 또 교장자격연수 시험 점수도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애쓰다 병을 얻기도 한다. 가점수에 반영되는 것들은 아주 많다.

그중 선배가 이야기하는 것은 근무평정 점수다. 이것은 주로 교육장 등이 주는 것으로 학교에서 우수사례 등 상을 많이 타면 유리하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거나 민원이 많으면 감점이다. 특히 학교 감사에서 징계를 받거나 문제가 된 교감은 승진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선배교사가 말하는 나의 곰재주는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비슷한 점수의 경쟁자 사이에서는 교육감상이 약간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근무평정도 경력자를 우대하는 분위기다.

훗날 나도 누군가 재주 부릴 곰이 필요했다.

그리고 누군가 곰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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