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떡집 딸이다.
교대를 졸업하고 첫 발령 후에 맞은 스승의 날이다, 퇴근 전 종례시간에 떡잔치를 했던 기억이 있다. 편육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작은 잔치를 한 것 같다. 그 잔치를 누가 어떻게 계획했는지는 모른다. 그때 이후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나는 학교의 나이 많은 신규 교사다. 그런 내 위치를 자각하고 있었다.
회의실로도 쓰고 있는 교무실에 전 직원이 모였다. 절차대로 시상도 하고 교장선생님 말씀도 끝났다.
교감선생님 책상 위에 방앗간에서 사용하는 네모난 함석 시루에 백설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역시 방앗간에서 쓰는 네모 떡칼도 있다.
나에겐 그것들이 늘 보던 것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2년 동안 방앗간 일을 도왔다.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떡시루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비닐이 깔린 책상 위에 떡시루를 들어서 엎었다. 떡을 덮고 있는 시루를 벗겨내고, 떡칼로 떡을 쓱쓱 가로 한 번, 세로 두 번 썰어서 6 등분했다. 그리고 한 번씩 더 썰라는 교무부장 말대로 한 번 더 잘게 썰었다.
떡을 썰어 놓으니 교무보조와 선생님들이 나와서 선생님들 책상으로 떡을 나눠 준 것 같다.
나는 이 일을 당연히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 학교의 신규 교사니까.
더구나 떡집 딸이다. 그리고 봉사와 헌신을 습관처럼 하는 기독교인이다.
선생님들이 모두 놀라는 눈치다. 떠들썩하면서 박수를 쳤던 것 같다.
이 일은 두고두고 선배들한테 회자되었다. 그리고 연세 드신 선배들은 딸한테 하듯 어깨를 토닥거리며 대단하다고 한 마디씩 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일을 잘하느냐 하면서 기특해했고, 나는 제가 떡집 딸이거든요 했다.
나는 이 일이 별로 이상하지 않았는데, 신규교사 모습이 아니었나 보다. 시집 온 신부처럼 조용히 존재감 없이 있어야 했다는 것을 나중에 후배들을 보면서 알았다.
서점에서 점원일을 하면서 손님은 왕이라는 것을 배웠고, 대기업에서는 험한 일이나 심부름 등은 늘 막내가 하는 것이라고 체득했다.
회사에서는 종종 사다리타기를 했고, 누군가 돈을 주면 나는 간식을 사러 다녔다. 그 간식을 높으신 국장님께도 상냥하게 인사드리며 책상 위에 놓아드렸다.
회사 언니들은 어쩜 부끄러움도 없이 잘하느냐고 칭찬했다. 국장님은 맨 앞 내 책상에서 가장 멀리 혼자 계셨는데, 언니들은 국장님과 말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남자 계장, 과장님이 보고하는 일을 하였고, 국장님은 우리에게 하늘 같은 분이었다.
사회생활은 나에게 노예근성이 예절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알고 한 일이었다.
나의 이런 모습은 종종 동료 교사들이나 또래들에게는 '나서는' 행동이나 '설치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들은 나에게 '용기 있다, 자신감이 넘친다'고 표현했지만, '눈치 없이 나서는 선생님'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을 훗날 알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을, 나는 잘 모르는 것이 참 많았다.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는 방에서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가면 자기도 모르게 요양사들이나 환자들이 하는 일에 자꾸 참견하고 나서게 된다고 한다. 안 보면 그런 일이 없으니 방에만 계신단다.
나는 늘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내가 엄마를 닮은 모습을 찾게 된다.
나도 외출을 잘 안 한다. 시끄러운 세상에 또 나서고, 설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