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중요성

유년의 기록부재

by 파도타기


나는 빛의 직진을 몰랐다. 그래서 사진을 찍으면 내 눈으로 보는 것이 그대로 나오는 줄 알았다.

나의 첫 사진은 초등학교 1학년쯤 일 것이다.
괴산에 5촌 당숙들이 왔고, 당숙 아저씨가 사진기를 가져왔다.
산골짜기에 가서 고모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는 거기 골짜기에서 가재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가재가 사진에 나오기를 바랐다. 그래서 손바닥에 가재를 올려놓고 그 가재를 바라봤다.
사진에 나올 거라고 확신했다.

손바닥 보다 작은 크기의 흑백사진이 나왔다.
고모들과 당숙아저씨도 찍혔고, 나는 맨 앞에 일제강점기 교복 같은 검은 옷에 흰 카라 옷을 입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손바닥 위의 가재는 보이지 않았다. 나의 솜바지 교복은 무릎이 해어져 하얀 솜이 보였는데, 해어진 바지에 대한 부끄러움보다 가재가 나오지 않아서 속상했다.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1학년 때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
그래도 이 사진이 내 최초의 기록이다.

그다음 성장을 기록한 사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찍은 증명사진이 있다. 아마 생활기록부에 붙이기 위해 학교에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졸업앨범 사진이 청소년기 이전 기록의 전부이다.

큰아들이 금년 달력이라면서 보내왔다. 매년 사진으로 가족달력을 만들었다. 큰손자가 11살이니 벌써 11년째 하고 있나 보다. 자식이든 손자든 유년의 기록을 보는 것은, 기록이 거의 없는 나에게 큰 위로를 준다.

중학교 때도 기록이 거의 없다. 수학여행 사진과 졸업사진이 전부이다.


나의 유년기 문서나 사진 기록이 거의 부재하다. 공식문서인 생활기록부가 있지만 나는 확인하지 않았다. 생활기록부 이전의 기록이 궁금했다.

아직 기억이 살아있는 아흔 노모의 기억에 의존해 구술자료를 수집하였다. 그렇게 수집된 나의 유년은 참으로 서글프지만, 내 유년보다 안타까운 것은 20대 젊은 엄마의 고달픈 생존이다. 그 숭고한 헌신으로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뒤늦게 감사한다.


내가 마음에 드는 성장기 사진이 있다.
서점에서 9개월 일하고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구두를 맞추고 나서 찍은 사진이다. 교복이 아닌 사복입은 나를 남기고 싶었다. 사진관에서 찍었는데, 긴 곱슬머리가 어깨 아래까지 치렁치렁하게 덮었다.
곱슬곱슬한 머리가 명화 속 공주 같았다. 마음에 들어서 자꾸 보는데, 내가 미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갸름한 얼굴, 쌍꺼풀은 없지만 반듯한 이목구비가 제법 마음에 든다. 이 사진 이후로 나는 내 얼굴에 자신감이 생겼다.

중학교 때는 단발이었다. 귀밑 1cm가 규정이었고, 같은 곱슬머리 남자 음악선생님이 교문 앞에서 단속을 했다. 내 머리를 잡아당기고 1cm 넘는다고 더 자르라고 했고, 난 귀 위로 1cm로 하고 다녀야 했다. 같은 곱슬머리인 음악선생이 더 미웠다.
그런데 어깨까지 치렁치렁 흘러내리는 내 머리는 지금 보아도 참 예쁘다. 사진이라서 그렇다.
실제 이때 생각이 나서 사회생활을 할 때도 해보았지만 까만 곱슬머리는 지저분하기만 했고 나는 하나로 묶고 다녔다. 미용실 원장은 인도여인 같다고 염색을 권했다.

얼굴에 자신감이 생긴 이후 고등학생 때부터 사진을 많이 찍었다. 긴 머리를 양갈래로 땋아 끝에 고데기로 말은 것처럼 부드럽게 말린 머리가 다른 친구들보다 예뻤다. 특히 잡지 '여학생'의 장학생이 된 후에 친구들이 이 잡지의 표지모델에 도전해 보라고 추켜세웠다. 난 설렜고, '전국 여학생 다락방 캠프'에 초대되어 혹시 눈에 띌까 하여 많은 기자들 앞에 섰다. 그러나 캠프에 온 친구들을 보면서 바로 포기했다. 장미희같이 예쁜 친구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은 다음 호 의상모델로 잡지에 나왔다.

유년의 기록부재는 내가 선생님이 된 후에, 학생들의 기록에 집착하게 했다. 부모가 못하면 교사라도 기록하자고 생각했다. 그것도 내 상처의 치유일 것이다.

교육활동을 사진으로 찍어 앨범으로 만들어 보내기도 하고, 2000년 학급 홈페이지가 시작될 때부터는 학급 홈페이지를 만들어 매년 1000장 이상의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 1992학년 졸업생부터 아이들 일기를 모아 학급 문집을 만들어 주었다. 그들의 성장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싶었다. 지금도 30권 이상의 문집이 우리 집에 보관되어 있다. 몇 번 어떤 사유로 중지한 적도 있고, 한 해에 9회 월간지로 발행하기도 했다.

나의 결핍들은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치유하는 모습을 스스로 확인한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언제나 나를 모델로 세운다. 그래서 성인이 된 나의 사진은 넘친다.

훗날 잊힐 나의 삶, 자녀들조차 관심을 두지 않을 나의 기록을 나는 쓰고 있다.
잊히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을까?

그림: 파도타기 <호야가 있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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