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교실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나요?

by 파도타기

엄마는 늘 '내가 너희를 학교에 보내는 이유는 너희가 편지를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흘려들었다. 편지 쓰려고 중고등학교를 가고 대학을 가나?


문해교실 어르신 이야기는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군대 간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편지라도 쓰고 싶었는데 쓸 수 없는 것이 그렇게 한이 되더란다. 그래서 많이 울었다면서 70대 중반 나이에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엄마는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을까? 강원도 묵호에서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살면서 친정에 소식을 전하고 싶었을까?


문해교육이라고 하니 문예교육 오자 아니냐고 하는 분도 있다.

문해교육이란 저학력·비문해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의 한 분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읽기·쓰기 능력(문자해득)과 함께 사회·문화적으로 요구되는 기초생활능력을 갖추게 해주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일반적으로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는데, 교육청에서는 초등과정을 3년으로 압축하여 운영하도록 했다. 입학식도 하고 운동회, 소풍, 시험 등 성장기 소외된 교육 경험을 통해 정서적 치유를 하고, 보통의 사회인으로 생활하도록 하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교장의 명을 받아, 교무부장 시절 내가 이 프로그램을 신청하여 운영했고 교사로 활동한 것이다.


교무부장인 나는 그래서 입학식과 졸업식을 일 년에 두 번씩 진행했다. 이런 식에는 교육청과 지역인사,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단체 등 내빈들이 함께 했고, 초등학교 학생들이 환영의 인사와 노래도 부르고 색종이로 만든 왕관을 드렸다. 입학식에는 학용품을 한 상자씩 나눠드렸다. 그들은 그렇게 격식 있는 행사의 주인공이 되어 입학식과 졸업식에 대한 상처를 눈물로 지웠다.


선생님,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거예요. 여긴 천국이에요. 시원하지, 공부를 가르쳐주지, 너무 고마워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하는 게 아니고요, 나라에서 해주는 거예요.


나라가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는데요?


나라는 모든 국민한테 교육을 시켜줄 의무가 있거든요. 그래서 하는 것이고 저는 심부름하는 거예요.


그래도 저는 선생님이 너무 좋아요. 너무 고마워요.


84세 제일 나이 많은 어르신이 매일 같은 말을 하며 허리가 굽어지도록 인사한다.


이 어르신은 독거노인이다. 집이 있었는데 아들이 다 팔아서 미국으로 가버렸단다. 그래서 딸네 근처 반지하 방을 얻어서 혼자 사신다. 나라에서 주는 기초연금, 독거노인에게 지원되는 것들로 사신다. 아들은 소식 한번 없다고 친구분이 혀를 끌끌 차면서 들려준 이야기다.


심심하니 복지관도 다니면서 한글교육도 받았다. 그래서 제법 잘 쓰신다. 교회도 다니는데 거기서 문해교실 소식을 들었고 그렇게 입학한 것이다.

자식은 엄마를 버렸는데, 학교에서는 림도 그리고, 편지도 쓰고, 받아쓰기도 하고,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다. 어릴 때 부러웠던 일들을 모두 경험하니 너무 감사한 것이리라.

문해교실 어르신들은 저마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사연이 애잔하다.


나는 이분들의 호칭을 김영희 님이라고 부른다. 이분들의 이름은 언제 불렸을까, 누구의 애미로, 김양으로, 어르신으로, 할머니로 불리면서 이름을 잊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꼭 이름에 '님'자를 붙여 불러드렸다. 여기 다른 학생들처럼 그냥 학생이라고, 존중받아야 할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계속 말하고 싶었다.


내가 교사로 수업을 하면서 어르신 학생들은 일반 초등학교 우리 반 아이들처럼 매일 일기를 썼다. 단 몇 줄이라도 써야 한다. 내가 교실에 도착하기 전에 교탁엔 어르신 학생들의 일기장이 펼쳐서 놓여있다. 선생님이 자신의 일기를 먼저 읽도록 내가 도착하기 직전 제출하는 분도 있다. 나는 속독으로 읽고 그중 잘 쓴 일기를 읽어준다.


4월 16일

제목 편지

오늘은 학교에서 어머니에 대해서 편지를 쓰라고 했다.

할 말은 많았는데, 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머니, 나는 공부합니다.

어머니, 딸 공부합니다.

라고하고 싶다.


읽으면서 나는 울컥하고, 교실 여기저기서 훌쩍인다. 우린 그렇게 매일 울면서 수업을 시작했다. 모든 일기는 못 배운 한이 넘친다. 나 역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경험했기에 공감하고, 다들 똑같은 경험을 회상하면서 우는 것이다.


공장에 다니는 어르신은 영어 알파벳을 몰라 상표를 거꾸로 붙여서 반장한테 구박을 많이 받았단다. 그런데 이젠 T자의 위아래를 확실하게 배워서 혼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중 젊은 60대 어르신은 가난한 살림에도 늘 택시를 타고 다닌단다. 버스 번호를 읽지 못하는데 물어보려니 창피하단다. 이젠 버스를 타고 다닌다고 ' 선생님 고맙습니다. ' 하면서 90도로 인사한다.


또 한분은 아들이 선생님이라고 했다. 얼굴도 미인이었고 세련되어 부잣집 사모님 같다. 글자도 정확한 궁체로 서예가처럼 쓰고 글도 가장 잘 쓴다.

그분은 이대를 다녔단다. 가짜대학생으로, 두꺼운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대학생 흉내를 냈다고 한다.

20명이 모두 눈물 나는 사연으로 기득 찼다.


이분들도 친구가 소풍 가는 것이 부러웠고, 운동회 이야기, 받아쓰기 시험까지 마냥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차를 대절하여 들꽃마을도 가고, 용인 민속촌으로 소풍을 갔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나눠드리고, 학년말에는 포켓앨범에 모든 활동 사진들을 채워서 드렸다.

나는 교복 입은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체험한 사람으로, 이분들의 상처 치유에 중점을 두어 그들이 부러워했던 모든 행사를 했다.


된장 만드는 법, 김장 맛있게 담그는 법 등을 서로 이야기하고 집에서 담근 된장을 가져와 삼겹살 파티도 하고, 김치를 가져와 점심 도시락도 함께 먹었다. 이런 행복한 추억 만들기 행사는 자존감을 높였다.


나는 이분들의 일기를 모아 문집을 만들어 드렸다.

문집 발행을 축하하기 위해 교장, 교감선생님도 축사를 쓰셨고 학교운영위원장도 쓰셨는데, 특이하게 동아일보 기자의 진심 어린 축사도 있다.

글을 모르시는 할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부럽다 하였고, 즐겁게 공부하는 모습이 감동이라면서, 앞으로 만날 공부를 싫어하는 학생들에게는 꼭 여러분 이야기를 들려주겠노라 약속도 하였다


34년 여 교육 경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를 말하라고 하면 나는 이 분들을 꼽는다.

이 분들도 평생 유일한 스승인 내게 종종 '선생님~' 하면서 전화를 하고 자꾸 만나자고 한다.


80이 넘은 제자는 나한테 '친정어머니'같다고 했다. 소풍을 가서 '여기 보세요, 이렇게, 좋아요. 여기도 봐주세요' 하면서 사진을 찍어드렸는데, 부모나 자식들에게 한 번도 그렇게 대접받지 않았단다.


또 교육청과 평생교육원에서 문해교육생들을 대상으로 글짓기 대회가 있었는데, 우리 반 학생들이 상을 많이 탔다. 신문기자가 우리 어르신 글짓기 내용을 기사화해서 국무총리가 읽었고, 우리는 국무총리에게 초대되었다. 그래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갔는데, 거기서 나를 친정어머니 같다면서 고마워했다.


부모에게 받아야 할 돌봄을 80 나이에 받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상처를 그렇게 치유하는 것이리라. 나는 이분들에게 교육소외로 인한 설움과 눈물을 조금 닦아주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친정엄마한테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러한 경험 때문이다. 엄마도 돌봄, 따스한 보살핌을 평생 받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는 무한히 자식에게 무엇이라도 주는 사람이지,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의 충효교육은 효를 의무로 만들었다. 자식들은 친구들과 비교하며 자기 상처를 끌어안고, 의무에 대한 거부감과 반항심만 키우게 했다.


따스한 보살핌의 결핍은 자존감을 잃게 하고, 피해의식과 공격성으로 나타나 삶의 순간마다 허기지게 한다. 엄마에게도 어릴 적 누락된 보살핌, 따스한 돌봄을 채워드려야 한다.

엄마의 고달픈 삶의 순간을 들어주고 고생하셨다고, 감사하다고 토닥토닥 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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