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 좀 빌려주세요
S대기업 본사에 근무할 때다.
당시 우리 회사 남자 직원들은 저녁을 회사 근처에서 먹고 야근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저녁을 먹을 땐 여직원 3명도 종종 함께 데려갔다. 그날은 저녁을 먹고 각자 흩어졌고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방향이 다른 직원들이 각자 떠난 뒤였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각에 버스를 타려고 지갑을 찾으니 없다. 회사를 다시 들어갈 수도 없다. 같은 과 직원들이 다 퇴근했고 혹시 야근하는 직원이 몇몇 있을지라도 나는 입사한 지 겨우 한 달 남짓이다. 누구를 붙잡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토큰 하나 빌리지 뭐.
당시 토큰은 지금의 10원 동전보다 작은 주화로 50원이었다. 라면 한 봉지 가격이었다. 쉽게 생각했다. 버스 토큰 정도는 누구라도 빌려줄 줄 알았다. 더구나 20살 여성에게 누구나 그런 친절 정도는 베풀지 않을까?
토큰 하나만 빌려 주실 수 있나요?
토큰 파는 곳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나만 빌려주면 내일 갚겠다. 나는 근처 삼성본관에서 근무하는 회사원이라며 상냥한 목소리로 최대한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신문, 잡지, 잡화를 함께 팔던, 작은 토큰 판매 박스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다.
부끄럽고 기분이 상했다.
걷지 뭐.
광화문 쪽으로 걸어갔다. 지금의 교보빌딩 앞까지 갔는데 벌써 힘들다. 삼선교 집까지 걸어가면 3시간도 넘게 걸릴지도 모른다. 이 밤에 걸을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생겼다. 버스정류장이 있다. 한번 더 도전해 보자고 마음을 다졌다.
이번엔 신분증을 맡기면 빌려주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나처럼 빌려달라고 하고 떼어먹는다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어찌 되겠는가,
핸드백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서 내밀었다.
내일 반드시 찾으러 올게요. 토큰 하나만 빌려주실 수 없을까요?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비켜요. 뒷사람 ~
단칼에 거절당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줄을 서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다. 걸어갈 생각을 하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갑을 두고 와서 그런데 토큰 하나만 얻을 수 있을까요?
아저씨, 아주머니. 아가씨, 총각도 싸늘했다.
버스 기사에게도 부탁했지만 싸늘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거지가 된 것 같았다.
눈물이 났다.
걷자, 걸어간다.
오기가 생겼다. 걸어가면 되지.
당시 우리 집은 지금의 한성대역이 있는 삼선교 근처였다. 고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1978년 당시 고모집에는 전화기가 없었다. 연락 방법은 편지와 전보뿐인 시절이었다. 하긴 전화가 있다 한들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택시를 타고 데리러 올 수는 없으니.... 아, 택시... 그걸 타고 집에 가서 돈을 주면 되는데, 택시는 서민과 관계없는 대중 아닌 귀족교통수단이다.
서울 상경 1개월 차,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고등학생 회사원은 서울의 찬란한 밤에 미아가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방인이며 온전한 타인이다. 아무도 나의 부주의에 관심이 없었으며, 도와주어야 할 불쌍한 대상조차 아니었다.
광화문에서 경복궁으로 다시 궁벽을 따라 안국역 방향으로 걸었다. 늦은 저녁 경복궁은 두려운 성이었다. 무서운 성주가 살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성벽을 따라 걸었다.
출퇴근 때 버스가 가던 길이다. 차가 다니는 곳엔 달리는 불빛이 줄을 서서 서로 비춰주고 길을 안내하지만, 인도는 어둡고 불빛이 거의 없었다. 물론 가로등이 거리를 두고 비추고 있었고, 차들이 한 자락씩 던져주는 빛에 의존하면 걷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하필 그 길들은 성균관대 근처를 지나야 했고, 창경궁(당시는 창경원이었다) 벽을 따라가는 길이다. 무엇보다 위험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는 것이 가장 공포스러웠다.
서울의 대로는 길 양쪽에 상가가 이어지기 마련이지만 이 길은 길 양쪽으로 높고 긴, 어두운 벽들이 이어져 위압감을 주었다. 가끔 만나는 상가 불빛이 , 산속을 헤매다 만난 주막처럼 반가웠다. 그래도 날씨가 덥거나 춥지 않은 9월이라 다행이었다.
늦은 시각이라 도로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사람이 없어도 두렵고 무섭지만, 한 두 사람을 만나면 더 큰 공포다.
창경궁과 종묘 사이를 지날 때였나 보다. 거긴 특히 어둡고 습기가 찼다. 뒤에서 키 큰 아저씨 한분이 뒤따라 오는 것 같았다. 사람이다. 나를 해칠 수 있는 유일한 동물.
심장이 두근거렸고,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뛰듯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며칠 전 친구가 심부름을 가다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했다. 늦은 저녁에 골목길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키 큰 아저씨가 맞은편에서 걸어왔다고 한다.
골목이 좁고 어두컴컴해서 무서웠다. 그래서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갑자기 친구의 가슴을 확 움켜쥐었고, 친구는 쓰러졌다. 비명을 지르니 골목의 양옆 집들이 불을 켰고, 아저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서서 갔다고 하면서 공포에 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뒤에 따라오는 아저씨가 꼭 그 나쁜 아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달리다시피 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불빛들이 보이는 상가도 나온다. 그리고 그 아저씨는 다른 길로 갔는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그러나 또 캄캄한 높은 벽이 나타났다. 지금의 서울대병원 벽이었을까? 창경원 정문 쪽으로 걸어야 한다. 역시 암흑 같은 길이다. 희미한 가로등이 가끔씩 있었고, 거기도 사람이 없다. 벽은 높았고 고요했다.
이번엔 맞은편에서 한 남자가 내게 다가온다. 산에서 산 짐승을 만나면 이렇게 무섭고 떨릴까? 이미 온몸은 식은땀으로 범벅이다.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울음우는 소리로 음정 상관없이 울다 노래 부르며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기도를 큰소리로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너무 무서워요. 중얼중얼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보면 약간 실성한 여자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지나쳐갔다.
달리고 싶은데, 길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발이 잘 안 떨어졌다. 그렇게 울면서 찬송했고, 기도하면서 뛰고 걷다를 반복하는 사이 드디어 밝은 상가들이 보였다.
크게 호흡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걸었다.
호랑이가 나타나는 큰 고개를 넘은 기분이었다.
삼선교 근처로 오면서 눈물을 닦았다. 고모가 보면 놀랄까 봐 여기저기 몸을 살피고 표정을 밝게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무사히 집까지 도착했다. 밤 10시가 다 되었다. 3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았다.
고모는 왜 그렇게 늦었냐면서 걱정했다. 나는 회사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이야기했다. 토큰이 없어서 걸었는데 다리가 조금 아팠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난 이 일 이후 남자가 쫓아오는 꿈을 오래도록 꾸어야 했다.
토큰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누군가 버스비를 도와달라고 하면 좀 도와주세요.
유튜버 실험에서 보면 사람들은 참 친절해서 그럴 경우 다 도와주던데. 그땐 토큰 하나의 인심도 아까운 시절이었을까?
부주의한 나는 그 후로도 물건을 잘 잃고는 했다.
늘 시답잖은 생각에 빠져서 일상을 다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