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크고 작은 사건은 모두 내게 영향을 준다

by 파도타기

전ㅇㅇ은 물러가라 훌라 훌라
같이 죽고 같이 살자 훌라훌라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다오

전ㅇㅇ은 물러가라 훌라 훌라


어디선가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1980년 나는 시청 앞 삼성본관에서 종로 1가 영업소로 발령받아서 근무하고 있었다.

종로 코아빌딩에 우리 회사가 있었는데 거기는 종로영업국과 종로영업소들이 있었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영업사원들이 모두 나가고, 영업소 사무실은 조용했다. 디선가 슬픈 듯 엄숙하고 장엄한 노랫소리가 함성처럼 들렸다. 가사가 잘 들리지는 않았다.


직원들이 종로 1가로 나갔다. 뭔 일이 일어 것이다.

종로 전체가 대학생들로 가득 찼다. 대학생들은 군인의 날 행진하듯 10열 이상의 줄을 지어 훌라송을 합창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양방향 로를 가득 채웠고 이 보이지 않는 행렬이었다. 우리가 나갔을 때는 대학생들이 걸어가지는 않았다. 제자리에서 열중쉬어 자세로 다리를 벌리고 서서 몸을 좌우로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가끔 '계 엄 해 제, 전 두 환 은 퇴 진 하 라'고 팔을 흔들면서 함께 스타카토로 외친다.

훌라송의 가사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들렸다. 전 어쩌고 하는데 그는 누구일까, 왜 그 사람 이름을 부르는가, 노래하는 대학생들의 표정은 비장하다. 당시 나는 전두환도 5.18도 몰랐다. 정치를 몰랐다.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곧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아우성이 들렸다. 전쟁이 일어난 것 같았다.


1980년 5월 15일. 퇴근길은 잊지 못다.

퇴근을 하러 종로로 나가니 온 세상이 뿌연 최루탄 연기와 화약 냄새로 가득 찼다. 도로에는 차가 다니지 않았고, 벽돌 같은 것들이 나뒹굴었다. 또 타다 만 경찰차와 버스도 본 듯하다. 대학생들은 도망치기도 하고 몰려다니면서 화염병을 던지고, 골목으로 숨어들기도 했다.

한바탕 전쟁이 끝날 무렵 같았다. 그 많던 대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소수의 무리만이 전쟁의 끝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왜 이런 전쟁이 일어났는지 내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차가 다니지 않으니 걸어서 집으로 가야 한다. 나는 무섭기보다는 신기했다. 이런 장면을 보게 되다니 약간 재미있기도 했다. 나는 구경꾼이었다.


당시 나는 홍은동 작은 아파트 방한 칸에 세를 들어 살고 있었다. 퇴근을 하기 위해 종로 1가 지하도로 들어가는데, 잠깐 사이에 최루탄 가스로 눈물범벅이 되었다. 울면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대학생들이 소금을 준다. 이것으로 눈을 닦으라고 했다. 그대로 믿었고 소금으로 눈을 비볐다.

아뿔싸, 눈이 따갑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화장실로 들어가 눈을 씻었다.

그들은 왜 내게 소금으로 눈을 비비라고 했을까.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는데, 경복궁에서 서울역까지 종로와 같은 풍경이다. 불에 탄 버스와 경찰차가 나뒹굴고 바닥엔 화염병과, 벽돌 조각들이 가득했다. 최루탄 가스 냄새는 공기를 가득 채웠다. 젖은 손수건으로 눈을 닦고 입을 막고 전쟁의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길을 걸었다. 새문안교회 앞길로 걸어서 갔는데 차츰 도로가 조용했다. 그날도 눈물을 흘리며 퇴근한 날이다.


관련 자료를 Grok에서 찾으니 당일 행적이 나온다.

나의 경험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5월 15일, 서울역 광장 앞에서 대학생·시민 10만 명 이상 (일부 자료 20만 명 추정)이 모인 최대 규모 시위. 종로·광화문 등에서 출발해 서울역으로 집결한 경우가 많았고, "서울역 회군" 또는 "5·15 서울역 시위"로 불립니다. 이 날 시위대는 계엄 해제·민주화 촉진·전두환 퇴진 등을 외쳤으며, 밤늦게 학생 지도부(심재철 서울대 총학생회장 등)의 결정으로 자진 해산했습니다.


나중에야 5.18에 대해서 들었다.

이 일이 일어나기 한 달 전 휴가 나온 군인과 소개팅을 했었다. 곧 연락하겠다고 하고는 전혀 연락이 없다.

나는 그가 내게 마음이 없는데 소개를 해준 사람을 의식해서 호감을 보였나 보다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사귀게 되었다.

그런데 6월에 드디어 연락이 왔다. 논산훈련소에서 조교로 있던 그 군인은 신군부의 계엄과 5.18로 비상이 걸렸고 연락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나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고 생각했던 5.18이 내 운명을 바꿨는지도 모른다. 5.18이 없었다면, 나는 대학을 가지 않고 독일어선생의 부인으로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운동회나 경기장에서 훌라 훌라 하는 훌라송 응원가를 들으면 늘 이때의 기억이 난다.

종로 1가에서 5가까지 거리 전체를 메운 대학생들의 행렬과 비장한 노래가 귀를 울린다.


살다 보니 나와 관계없는 사건은 없다. 5.18이나 IMF 같은 우리나라 사건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미국의 금리, 미국 실업자 통계, 미국대통령의 작은 언행차 미국민뿐만 아니라, 학개미인 나의 삶에도 매우 가깝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감한다.


종로 1가의 작은 전쟁은 눈물을 흘리게 하고 인연을 바꾸게 했지만, 현재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 사회, 경제 전쟁들은 더 무섭게 우리를 간섭하고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정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 이유이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 관련 자료를 살펴야 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