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천이야기 6- 결혼 비용
결혼을 하면서 그래도 살림을 장만해야 했다.
우리 집에서 130만 원, 시댁에서 70만 원 , 합해서 200 만원이 우리의 결혼 비용이다. 1985년 당시 결혼비용은 신부 측의 경우 1000만 원이 기본이었다.
그 돈으로 남편을 위해 시계도 사고 책장과 책상을 샀다. 난 명동길가에서 파는 작은 가죽핸드백과 금광 구두를 샀고,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두 사람의 신혼 여행복도 마련했다.
또 중고가구점에서 썬퍼니처 아동장을 3만 원에 사고 작은 냉장고도 샀다. 이게 살림살이 전부다.
웨딩드레스는 빌려 입는데도 아주 비쌌다. 그래서 종로에서 흰색 실크 한복 옷감을 사서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께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분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한국화 대가이시다. 흰 치마에 붉은 모란을 치시고 저고리에도 모란을 치셨다. 그래서 흰 한복은 나의 웨딩드레스이며 폐백 때 입을 한복이 되었다.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데 남편은 그림 부분만 잘라서 표구해서 걸면 어떨까 하며 농을 한다.
선생님은 참으로 나를 아끼셨다. 수업이 끝나면 늘 미술실로 가서 사군자를 치곤 했는데 그때마다 오셔서 내 이름을 불러주시며 싱글싱글 웃으셨다.
"김수진, 어떻게 그리 공부를 잘해?
또 1등이야."
난 선생님의 그 칭찬이 참 좋았다.
아버진 단 한 번도 나를 칭찬하신 적이 없었다. 늘 잘못이나 실수를 찾아내어 꾸짖으셨다. 아버진 결혼 후에도 지적해야 할 부분을 찾아서,
넌 인사를 왜 그렇게 하느냐?
얼굴이 그게 뭐냐?
선생이리는 사람이 옷이 그게 뭐냐?
하며 만나자마자 잔소리하셨다.
중년이 된 나는 드디어 아버지께 왜 늘 꾸짖기만 하느냐고 따졌다.
부모라는 사람은 당연히 자식을 가르쳐야지. 누가 가르치겠냐?
그랬다. 아버지의 부모 역할은 자식의 잘못을 찾아 꾸짖고 바로잡아 인간이 되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셨다.
아버지는 평생 부모역할에 최선을 다하신 것이구나!
결혼비용에서 식장과 음식도 부담해야 한다.
식장은 남편이 다니는 대학 교회에서 거의 무료로 할 수 있었고, 대학식당에 갈비탕 재료 값을 주고 음식을 부탁했다. 우리 집은 당시 떡방앗간을 하고 있었는데 혼주와 축하객을 싣고로 온 버스에는 여러 가지 떡이 가득했고 반찬도 해왔다. 시댁에서도 홍어회가 빠지면 안 된다며 잔뜩 해 오셨다. 덕분에 풍성한 잔치를 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갈비탕에 고기가 많았고 음식들이 너무 맛있다고 해 주셨다.
아, 청첩장은 남편과 함께 자취한 절친이 손수 붓펜으로 써주었고 복사를 해서 나눠주었다.
폐백 의상은 남편의 학창 시절 친구가 자신의 대학교에서 빌려왔다. 덕분에 병풍도 없는 대학의 위층 한편에서 폐백을 무사히 치렀다.
남편은 이들의 도움을 지금도 부끄러워한다.
사진은 나의 대학 동기와 선배가 찍어 주었고, 꽃집을 하던 고등학교 친구가 들꽃으로 화관과 모든 꽃장식을 맡았다. 모두 가난한 대학생 부부를 위한 무료 봉사요, 선물이었다.
주례를 맡으신 목사님은 부주까지 하고 가셨다. 또 나의 대학 동기생들은 그릇 세트를 마련했고, 나의 대학 지도교수도 유리그릇세트로 선물을 보탰다.
모두 참 고마운 일이다.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여기에 자세히 기록한다.
잊지 말자, 잊지 말자!
선하고. 고마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