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2

바르셀로나 구엘공원 산책로

by 파도타기

바르셀로나는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드물 만큼 온화한 편이다. 덕분에 일조량이 부족한 북유럽이나 비가 잦은 서유럽 사람들에게는 '태양을 만날 수 있는 안식처' 같은 휴양지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덕분에 우리도 1월에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카사밀라가 보이는 숙소에 짐을 풀고 보니 새삼 뭉클해진다.

사진: by 파도타기<스테인리스 파사드의 Suites Avenue 숙소>

아들은 우리가 돈이 있어도 못쓰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늘 가난했던 우리는 돈을 쓸 줄 모른다. 외식도 가장 저렴한 것만 먹어야 했고, 아이들이 먹고 싶은 음식들은 선택에서 제외되었다. 아이들 생일에야 겨우 피자집을 갔다. 물론 형편이 나아지자 기념일에는 종종 좋은 음식점도 갔다. 음식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의류도 70% 이상 할인하는 것만 샀고, 구두도 할인매장만 다녔다.

유행이 지난 옷을 사 입고서, 3년 전에 샀다고 생각하면 되지. 10년 전에 산 것도 입는데 3년이면 괜찮지 했다.


아들들은 그런 우리를 너무 잘 안다. 자기들은 늘 선택권이 없었음에 상처가 있었다. 아버지가 된 아들은 대부분의 선택권을 자녀에게 돌린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할 땐 자기들이 선택한다. 식점도 선물도...


두 아들은 좋은 것으로 선물한다. 아빠에게 명품 구두를 선물하면서 '아버지는 절대 사지 않을 물건이라 샀어요. '한다. 덕분에 우 나름의 명품들을 소유할 수 있었다. 내가 구매하는 가격의 열 배는 더 줬을 명품백을 받고 아까워서 모셔두었다.

신상을 선물했는데 엄마는 중고로 쓰려고 하느냐는 말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신상 명품백을 들고 다녔다.

남편은 자식들이 준 선물들을 암송하듯 외우며 사용한다. 이 티셔츠는 큰 아들이... 이 등산 스틱은 작은 아들이... 아들에게 받은 선물을 그렇게 좋아할 수 없다. "우리집에서 아버님이 제일 부자예요." 며느리가 말해도, 가성비에 묶여 본인은 절대 사지 못하는 까닭도 있을 것이다.


아들이 아니면 절대 올 수 없는 호텔에 들어서니 감개가 무량하다. 더구나 가우디 건축을 아침저녁으로 볼 수 있다니...


아침은 주로 우리 방에서 빵과 샐러드, 커피로 아들부부와 함께 먹었다. 집에서도 아침은 남편 담당이라 우린 편하게 럽식 아침을 즐겼다.

아침을 먹고 각자 쉬다가 10시경이 되면 다 같이 시내를 나간다. 우선 가우디 작품을 보기로 했다.


구엘공원의 첫인상은 예술적 감흥보다는 마치 테마파크에 온 듯한 가공의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볼수록 그 안에는 '명품 오리지널'의 품격이 서려 있었다.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벽과 지붕, 창문들은 부정할 수 없는 거장의 작품이었다. 특히 나뭇잎을 철로 빚어 이어 붙인 철문은 어느 한 귀퉁이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게 만들었다.


​문득 교대 시절 조각을 전공하셨던 지도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작품이란 재질의 특성을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 돌은 돌답게, 철은 철답게.' 당시엔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가우디의 작품 앞에 서니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흙과 돌, 철의 본성을 그대로 살려 자연과 조화를 이룬 이 걸작이야말로 교수님이 말씀하신 그 정답이 아닐까

축구장만 한 광장에 놓인 구불구불한 의자들. 사진으로만 보던 가우디 작품의 진면목을 확인하려던 순간이었다. 화려한 타일을 깨뜨려 붙인 트렌카디스 기법의 물결무늬 의자는 분명 구엘 공원의 상징다웠다. 드디어 실물을 마주했다는 희열이 차올랐지만, 솔직히 아주 짧은 실망감이 스친 것도 사실이다. 마치 경주에서 첨성대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너무 거대하게 부풀려진 기대가 실제의 소박함에 부딪힌 모양이다

그러나 그 운동장 같은 곳의 아래 동굴들이 진짜 장관이었다. 거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장소였다.

비스듬하게 돌로 만든 통로라니. 너무 재미있는 구조에 이끌려 사진 한 장, 찰칵.

지금 봐도 통쾌하다. 나의 삐딱한 성향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구조물이 우리를 한껏 들뜨게 했다. 아들부부도 아이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여기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나는 연신 감동의 탄성을 시끄럽게 내며 아이처럼 동굴 구석구석을 누볐다.

구엘 공원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 중 하나인 그 통로들은 가우디의 천재적인 설계가 돋보이는 산책로(Viaducts)라고 한다.

​가우디는 공원을 조성할 때 산의 경사를 깎아내는 대신, 지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돌을 쌓아 올린 통로를 만들었다. 마치 자연적으로 생성된 동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치밀하게 계산된 구조물이다.
​비스듬한 기둥들은 구조적인 안정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나무줄기를 형상화한 것이며, 주변 지형에서 가져온 거친 돌들을 그대로 사용하여 주변 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 한다.
​이 통로들은 단순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비가 올 때 물이 원활하게 빠져나가도록 설계되었으며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는 시원한 그늘막 역할도 한다.


​인공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땅에서 솟아난 듯한 유기적인 형태 덕분에 가우디 건축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여행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희열도 있지만, 이렇게 기대하지 않은 새로운 사실과 풍경, 조형물, 작품을 만났을 때 감동은 더 오래 남는다.


*사진은 모두 휴대폰으로 직접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