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 하는 여행
나는 여행을 가면 숙소 주변 동네를 반나절 이상 걸어 다닌다. 그 땅의 지리적 환경과 문화를 찬찬히 살피고 나면, 단 며칠을 묵더라도 그 동네에 직접 살았다는 느낌이 들어 비로소 정이 가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서도 우리의 여행법은 여전했다. 숙소를 거점 삼아 주변을 며칠 동안 반나절 이상 걸었다. 지리적 환경을 익히고 그곳의 문화를 살피는 이 시간은, 단 7박 8일간의 머무름이었지만 내가 이 도시에 잠시 '살았다'는 실감을 선물해 주었다
이런 도시 탐구의 시간에는 주로 우리 부부만 산책을 나선다. 아들 내외는 숙소에 머물며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한다. 우리는 넷이 함께 여행하되, 유명 관광지는 같이 움직이고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는 산책은 별도로 즐긴다.
'따로 또 같이'. 서로의 속도와 취향을 존중하며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이 방식 덕분에, 우리는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은 채 각자의 바르셀로나를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다.
숙소를 나와 카사 밀라 반대편 방향으로 걷다 보니, 유독 인파가 몰린 건물이 있었다. 가우디의 걸작, 까사 바트요였다. 첫눈에 압도되는 독특한 외관은 과연 '뼈의 집'이나 '용의 등뼈 집'이라 불릴만했다. 해골 모양의 발코니와 용의 비늘처럼 꿈틀대는 모자이크 지붕은, 건축이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조각 작품 같았다. 가우디의 상상력이 빚어낸 이 경이로운 건축물은, 1900년대 초반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시대를 앞서 있었다.
이곳은 내부로 들어가는데 입장료를 내야 한다. 우린 그냥 발코니 난간과 건물 외부만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걷고 있는 이 길은 바르셀로나의 그라시아 거리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샤넬과 루이뷔통 같은 명품 매장들이 고풍스러운 건물 속에 자리 잡은 세계적인 쇼핑가가 펼쳐진다. 넓은 인도와 명품 매장은 강남의 어느 도로를 걷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길 건너편에 웅장하게 서 있던 대형 자라 매장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화려한 상가들 뒤편으로는 도시의 심장처럼 박동하는 보케리아 시장이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통로를 따라 치즈와 채소, 각양각색의 육류가 산을 이루고, 가게마다 흑돼지로 만든 하몽 이베리코와 흰 돼지의 하몽 세라노가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걸려 있었다.
그 곁으로는 파프리카의 붉은 기운을 머금은 주황빛 초리조와 후추 향 알싸한 분홍빛 살치촌이 주렁주렁 매달려 시장의 공기를 채웠다. 하지만 그 낯설고 강렬한 풍경들 앞에서도 선뜻 손은 가지 않았다. 다만 그 미로 같은 골목들을 걷고 또 걸으며 몸에 익혔다. 다음에 다시 이 도시를 찾는다면, 그때는 마치 예전에 살던 곳인 양 익숙하게 길을 찾아다닐 수 있을 것만 같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건 카탈루냐 광장이다. 우리 집에서는 귀하게 모시는 시클라멘이 광장 화단을 가득 채운 채 노지에서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곳은 따뜻한 날씨 덕분에 겨울에도 이런 식물이 정원을 뒤덮는구나 싶어 스페인의 기후와 시클라멘의 고귀한 빛깔이 새삼 강하게 기억되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오래되어서 당시의 일정을 기억하기는 힘들다. 다만 특히 기억나는 것만 기록해야겠다.
바르셀로나에 피카소미술관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피카소라니... 이런 행운이 없다.
유럽여행은 주로 캐슬과 미술관 중심이었다.
특히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우피치미술관 등의 이름이 기억난다. 고흐미술관은 시간이 늦어 입구에서 왔다 갔다는 인증 사진만 찍고 돌아서야 했다.
그런데 바르셀로나에도 미술관이 있다. 피카소와 미로 미술관이다.
결론적으로 피카소 미술관은 또 들어가지 못했다.
미술관 자체가 좁은 골목(몬카다 거리)에 있어서 입장 속도가 느리고, 하루 수용 인원이 제한적이었다. 오후에 갔는데 이미 "closed for today" 팻말이 걸렸다.
피카소 미술관을 포기하고, 우린 몬주익언덕에 있는 미로 미술관으로 향했다.
남편은 '몬'은 라틴어로 산이란 뜻이고 '주익'은 유대인이라는 말이라며 '유대인의 산'이라고 전공을 살려 설명했다. 중세 시대에 바르셀로나에 살던 유대인들이 이 언덕에 그들의 묘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당시 관습상 유대인들은 도시 성벽 안에 시신을 묻을 수 없어서 성 밖의 이 언덕을 묘역으로 사용했다. 실제로 지금도 언덕 곳곳에서 중세 유대인 묘지의 흔적이 발견되곤 한다.
올라가는 게 좀 힘들었는데 지도도 보고, 계단을 많이 오르기도 하면서 애써 찾아갔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호안 미로(Joan Miró)는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거장이자,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호와 색채로 ‘영혼의 정원’을 그려낸 예술가다.
미로의 캔버스 위에는 별, 달, 해, 새, 여성이 유영한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의 원색은 검은 선과 만나 선명한 생명력을 얻는다. 단순화된 둥근 모양과 가느다란 선들이 빚어내는 자유롭고 유희적인 형태는 어린이의 그림처럼 순수하고 해학적이다. 내가 미로를 사랑하는 이유다.
미로의 고향이 바로 바르셀로나이다, 그의 친구인 건축가 주세프 루이스 세르트(Josep Lluís Sert)가 설계한 미술관은 지중해 연안의 전통 가옥에서 영감을 받은 백색 건물로, 자연 채광이 전시장 내부로 풍부하게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미로의 작품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이곳은 미로가 직접 기증한 회화, 조각, 직물, 드로잉 등 수많은 걸작을 소장하고 있어, 그야말로 원 없이 그의 작품 세계에 빠져든 날이었다. 사실 미로 미술관은 이번 여행에서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어스름한 저녁, 미술관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시내 전경은 마치 미로의 그림처럼 환상적이고 몽환적이어서, 오래도록 잊지 못할 마법 같은 풍경으로 가슴에 남았다.
미술관을 나왔을 때는 제법 어두워졌다. 그런데 버스가 없다, 날씨가 쌀쌀했는데 차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오래 기다렸고, 결국 택시를 타고 내려왔다.
이날 저녁이었을까? 아들부부와 다시 만나 꿀대구를 먹었다. 며느리가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맛집을 검색했고 우린 즐기는 역할이었다.
달콤한 과일 향과 톡 쏘는 탄산이 섞인 상그리아는 꿀대구의 달고 짠맛과 잘 어우러졌다. 상그리아 피처 하나를 놓고 잔을 기울이니, 여행의 흥취도 함께 올랐다. 꿀대구는 한 접시에 12,000원쯤 했던 것 같은데, 양이 너무 적었다. 아쉬운 마음에 감바스와 여러 타파스를 추가로 시켰다. 밤늦게까지 아들 내외와 보낸 그날 밤의 추억은 아직도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다.
이날 먹은 꿀대구가 생각나서 한국에 돌아와서 강남 어느 식당에서 꿀대구를 판다는 며느리 말을 듣고 찾아갔으나 실망했다. 일단 대구가 아니다.
지난 설날, 문득 그날의 추억이 떠올라 대구포를 샀다. 노릇하게 구워낸 대구살은 아직 돌이 안된 손녀도 오물오물 잘 받아먹었다. 우리도 대구를 구워 꿀을 섞은 소스를 곁들여 보았다. 담백한 대구의 맛은 훌륭했지만, 이상하게도 바르셀로나에서 맛보았던 그 꿀대구의 맛은 나지 않았다.
여행에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그곳에서 느낀 행복한 순간들을 몸과 마음에 오롯이 새겨두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르셀로나에서 맛본 꿀대구는 그 저녁의 빛깔과 함께 우리 뇌리에 저장되었고, 행복했던 시간을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당시의 사진을 돌려보니 미로 미술관은 여행의 끝무렵에 갔다. 그런데 여행을 떠올렸을 때 먼저 기억난 것은 당일 먹은 꿀대구의 즐거운 추억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