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의 눈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는 교육

by 파도타기

첫돌 지난 손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날이다. 말은 못 해도 손녀는 할머니인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손녀는 아마 나를,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따라나서며,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허락해 주는 존재로 믿고 있을 것이다.


내가 물을 마시니 손녀도 달라고 한다. 물이 든 컵을 받아 든, 채 13개월도 되지 않은 손녀는 컵에 얼굴을 푹 묻었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손 하나를 컵 속으로 쑥 집어넣는다. 그러고는 이내 내 눈치를 살핀다. 아마도 스스로 '허락되지 않은 행동'일지도 모른다고 직감한 모양이다.
​나는 제지하는 대신 "시원하지?" 하며 빙그레 응원을 보냈다. 그제야 아이는 안심한 듯 두 손을 마저 물속에 담그고는 배시시 웃음을 터뜨린다.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금지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 나의 육아 방식이다. 아이에게 컵은 그저 물을 마시는 도구가 아니라, 찰랑이는 물의 감촉을 탐색하는 훌륭한 창의적 놀잇감이기 때문이다.

손녀는 이번엔 엄마 아빠의 옷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평소 부모가 그 방에 들어가 한참을 머무르는 이유가 내심 궁금했던 모양이다. 방 안 구석구석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피던 아이가 잠옷 바지 하나를 끌고 나온다.
​늘 애착 이불을 보물처럼 안고 다니던 손녀는, 이제 그 잠옷 바지를 근사한 스카프처럼 목에 두르고 집안을 활보한다. 그러더니 이내 이불인 양 옷에 얼굴을 깊숙이 묻고 잠드는 흉내까지 낸다. 엄마 아빠의 살냄새가 배어 있는 그 옷자락에서 아이는 가장 안온한 평화를 느끼는 듯했다.


나는 당연히 그 바지가 아빠의 것인 줄만 알았다. 아빠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자 손녀는 큰 소리로 연신 아빠를 부르며 찾아 헤맸기 때문이다. 아빠를 찾는 간절한 마음을 잠옷 바지에 밴 아빠의 냄새로 달래며 심리적 안정을 찾는구나 싶어, "아빠 없는 아이들은 불쌍해서 어쩌나" 하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온 아들의 말은 반전이었다. 그 잠옷 바지의 주인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라는 것이었다.


아빠를 찾는 목소리와 엄마의 옷을 끌어안는 몸짓. 어쩌면 아이는 아빠, 엄마의 부재를 엄마의 포근한 향기로 메우며, 쏟아지는 잠을 청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엄마의 바지를 끌어안고 목에 걸고 다니는 행위 역시, 평소라면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을 터다. 그곳은 금기된 방이었고, 옷은 입는 것이지 놀이 도구가 아니니까.


그것이야말로 창의력 교육의 시작이다. 이런 전복적인 발상의 정점은 김창완의 노래 <기타로 오토바이 타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타로 오토바이 타자 / 수박으로 달팽이를 타자 / 김치로 옷을 지어 입어 보자 /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지금 들어도 이 가사는 가히 충격적인 쾌감을 준다. 기타는 연주하는 물건이고 김치는 먹는 음식이라는 어른들의 견고한 상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노래는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외친다.


손녀가 물컵에 손을 담그고 엄마의 잠옷을 스카프로 만드는 것은, 이 노래 속 가사처럼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는' 것과 같은 맥락의 눈부신 일탈이다.


평소 손녀는 베이비시터의 돌봄을 받는다. 시터에게는 무엇보다 '안전'이 일 순위다.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가도 좋은 영역을 분명히 정해두고 그 울타리 안에서 아이를 지켜낸다. 그것이 시터의 책임이자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인 나는 다르다. 나는 하루 종일 아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위험한 요소만 슬쩍 치워줄 뿐, 아이의 모든 시도를 허락한다. 덕분에 우리 손녀는 평소라면 '금지'되었을 집안 구석구석을 탐색하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낮잠도 잊은 채 호기심과 모험심을 한껏 발휘하는 아이의 눈동자는 생기로 가득했다.


내가 루소의 『에밀』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주입식 교육의 세례를 받으며 자란 내게 루소의 교육철학은 그야말로 거대한 충격이었다. 교과서에 갇힌 지식이 아니라, 지리를 배우기 위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직접 지형을 살피며 지도를 그리게 하는 그 생생한 방법론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때부터 교육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고 믿었다. 비록 학교 현장에서 1:1 교육이라는 루소의 방식이 비현실적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탐구의 정신만큼은 교실 안에서 구현하려 애썼다. 나의 두 아들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보다는 과정, 지식보다는 경험 중심의 학습을 최우선으로 두었다.


34년을 교육자로 살며 수많은 아이를 만났지만, 정작 내 손주를 돌보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특히나 나처럼 '경험을 통해 위험을 스스로 감지하게' 하고, '모험을 통해 겁 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교육 방식은 요즘 부모인 며느리들을 불안하게 할지도 모른다.


​나의 철학은 단순하다. 넘어져도 괜찮고, 조금 다쳐도 괜찮다. 그 모든 생채기와 경험이야말로 아이를 단단하고 강하게 키워내는 최고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의 이런 방식이 그저 예전 농촌에서나 통하던 투박한 육아법이라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실과 전담 교사 시절,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요리 실습을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실습 전 아이들에게 안전 교육을 충분히 시켰음에도 사고는 찰나에 일어났다. 한 남학생이 달궈진 프라이팬 가장자리에 팔을 살짝 스친 것이다.
​당시 아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내색하지 않고 하교했기에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오후, 학부모로부터 거친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가 화상을 입었는데 학교는 무엇을 했느냐는 질책이었다. 교육자로서 아이의 상처에 마음이 아픈 것은 당연했지만, 쏟아지는 비난 앞에서 나는 그저 연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교감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돌봄 교실에서 공놀이를 하던 1학년 아이가 혼자 공을 받으러 가다 창가 시멘트 난간에 이마를 부딪친 것이다. 1cm 남짓 찢어진 상처였지만, 나는 돌봄 선생님 대신 직접 부모님께 수화기를 들었다.


담임교사가 학부모의 거친 항의를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구조가 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교사가 그런 항의에 시달리고 나면 정작 아이와 심리적 거리감이 생기기 마련인데, 나는 그것이 가장 경계스러웠다.


​나는 부모님께 연신 사과하며 흉터가 남지 않도록 일반 병원 대신 성형외과나 피부과로 가실 것을 정중히 안내했다. 치료비는 학교 안전공제회에서 전액 부담하니 영수증을 꼭 챙기시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고성과 거친 항의였다. 나는 죄인처럼 몇 번이고 머리를 숙여야 했다. 문득 예전 기억이 스쳤다.


아이가 학교에서 다쳐오면 오히려 선생님께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리던 학부모들의 모습이. 시대가 변했음을, 교육의 온도가 달라졌음을 뼈아프게 실감한 순간이었다.

사고 이후 학교는 시멘트 난간마다 안전 보호대를 덕지덕지 붙였다. 진작 했어야 할 조치였으나, 학교의 안전불감증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교장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지독한 '안전 강박증'에 걸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북부의 한 평생교육시설 준공식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관내 교장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누구랄 것도 없이 시설 점검에 나섰다. "여긴 마무리가 덜 됐네", "모서리가 너무 날카로워 아이들이 다치겠어", "난간 높이가 규정에 맞는 거야?" 시설이 담고 있는 교육 내용보다 모두가 '안전'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독한 직업병이었다.


사고가 나면 공제회에서 비용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거액의 위로금을 요구하거나 끊임없는 민원으로 학교 업무를 마비시키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때로는 학교 전담 변호사가 나서야 할 만큼 사태가 커지기도 한다. 그러니 교장은 교육의 본질보다 안전사고 예방에 온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사고와 거센 항의를 겪고 나면, 학교 현장에서 역동적인 활동이 자취를 감춘다는 사실이다. 다칠 위험이 있는 공놀이는 금지되고, 아이들은 하루 종일 제자리에 앉아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색칠 공부나 종이접기 같은 정적인 활동에만 매달리게 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딱딱한 나무의자에 붙박이처럼 앉아 지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체육 시간이고, 그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운동장의 식물을 관찰하든 달리기 게임을 하든 햇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환하게 웃는 시간이다.


​창의력은 좁은 칸을 채우는 색연필 끝이 아니라, 마음껏 대지를 딛고 선 아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몸짓에서 시작된다. 비록 '안전'이라는 이름의 울타리가 우리를 주저하게 할지라도, 하루에 한 번은 아이들이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며 자신만의 페달을 밟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손녀의 엉뚱한 일탈을 응원하는 이유이며, 이 땅의 모든 '에밀'들이 잃지 말아야 할 진정한 교육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고에 대한 두려움과 학부모의 거센 항의가 현장을 위축시킨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다치는 것도 두렵지만, 더 두려운 것은 그 뒤에 쏟아지는 날 선 비난이다. 이 공포는 체육뿐만 아니라 과학 실습, 실과 요리 등 조금이라도 위험 요소가 있는 모든 체험 교육을 멈추게 한다. 심지어 현장 체험 학습과 수학여행마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화랑들은 산천을 누비며 호연지기를 길렀다는데, 현장 체험학습마저 사라진 교실에 어떤 교육이 남을 것인가. 나는 아이들이 모니터 화면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박제된 수업'만 남게 될까 봐 진심으로 우려된다. '상상하는 대로' 날아올라야 할 아이들이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는 기계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사실 나 또한 우리 손녀가 학교에서 똑같은 사고를 당해 이마를 여섯 바늘이나 꿰매야 했다면, 나 역시 이성을 잃고 거세게 항의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상처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어른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아들이 중학교 수학여행에서 턱이 깨지는 큰 사고를 당했었다. 사고는 종종 불가항력적일 때가 많다. 담임이 막을 수 있는 사고는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항의보다는 펑펑 우는 일 외에 할 일이 없었다. 아들은 수술하고 한 달가량 입원했고 JSA단원이 될 만큼 건강하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묻고 싶다.
학교는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하되, 교사는 그 책임의 공포에서 벗어나 마음껏 체육을 하고 현장 체험학습을 이끌 수는 없는 것일까.

루소가 말했던 '경험 중심 교육'이, 아이들이 직접 부딪히고 탐구하며 창의력을 꽃피우는 그 생동감 넘치는 현장이 우리 교육계에서는 진정 불가능한 꿈인 것일까.

우리 아이들이 '김치로 옷을 지어 입고, 기차 타고 시계로 들어가는' 엉뚱한 상상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주머니 속 '별'을 빼앗지 않는 사회, 넘어져 무릎이 깨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는 현장. 그것 이상일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