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이자 '포수'일 뿐이었던 안중근을 기억하며

하얼빈 에세이

by 하은

뮈텔은 안명근이 105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정보를 총독부에 알렸다. 성직자는 고해성사의 모든 내용을 비밀로 해야 하지만 빌렘은 이것을 뮈텔에게 알렸다. 또한 뮈텔은 총독부에 이 정보를 제공했다. 나는 이것을 보고 몹시 화가 났지만, '뮈텔은 정말 세속적이다.'라는 말로밖에 표현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작가는 '성직자의 내면은 매우 복잡하거나, 또는 매우 단순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간결한 말을 사용했다. 나는 정말 간결하지만 무엇보다도 더 분노에 차있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이 문장이 가장 인상 깊었다.

안중근은 체포된 후 첫 신문에서 일본의 검찰관이 그의 직업이 무엇이냐고 하자, 그는 자신의 직업이 '포수'라고 말했다. 또한 재판장에서는 '무직'이라고 말했다. 그는 충분히 자신의 직업이 독립운동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자신을 '무직'이며 '포수'라고 했을까?
난 그가 애국에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저 포수로써 총을 쏠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한 청년으로써 나라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이유만으로도 그는 한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했던 것이다.
뤼순 감옥 구내 묘지에 묻힌 사람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고, 안중근이 일본의 재판장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 이제는 100년 전 일이 돼버렸기 때문에 김구가 안중근의 유해를 발굴하려고 한 것, 남북한 합동 발굴단이 구성된 것, 이것들은 어쩌면 소용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에도 용산구의 효창공원에는 이봉창의 묘 옆자리에 안중근의 가묘가 마련되어 있어 유해가 봉환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이런 모든 활동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그것이 실탄 일곱 발과 백 루블만을 가지고 하얼빈으로 떠났던 서른한 살의 청춘, 안중근을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그의 청춘을 쏟아부어 그토록 처절히 외쳤고, 외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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