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붕

감정은 밝히는 게 아니라, 감싸는 것

by 이성대

"성대야, 조금 늦은 시간인데... 괜찮아?"

“요즘 그분한테 연락이 좀 뜸해졌어”


금요일 저녁 늦은 밤, 형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내게 카톡을 보냈다.

소개팅으로 알게 여성분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대화가 불과 며칠 전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기보단, 걱정이 앞섰다.


‘왜?’ 보다는 ‘괜찮은지’가 나는 늘 궁금했었던 것 같다.


불안해하는 그는 그녀가 저번주 수요일 만남 이후부터 답장이 늦어졌고, 말수가 줄었다고 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초조하게 관계 변화의 원인을 곱씹는 그의 말이

이해되면서도 안타까웠다.


‘그게 먼저가 아닐 텐데 ‘



과거에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답장이 늦어질수록 불안했고,

결국 “요즘 연락이 뜸하네?”라는 말로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돌아오라는 손짓이 아니라,

돌아서게 하는 신호였음을,

지금은 어렴풋이 안다.


감정은 분석하면 멀어진다.

사랑의 이유는 설명이 아니고, 느낌이다.

붙잡으려 하면, 더 멀어진다.




“이렇게 물어보면 너무 무례한 건가? 어때 보여 성대야”


연락이 뜸한 이유를 고민하는 그에게 나는 말했다.


“그걸 지금 묻는 건 좋지 않아. 그건 그냥 그 사람을 몰아세울 뿐이야”

“... 형, 대신 마음을 보여줘야지. 진심 아니었어?”


그의 조금 늦은 답장은 그들의 지난 대화들과 함께였다.

살펴본 그들의 대화 속에서 그의 말투는 조심스러웠고, 대화 내용들은 무난한 일상의 이야기들이었다.


그가 그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실을 아는 내게는, 오히려 그 무난함이 무관심처럼 느껴졌다.


그 여자분이 “내가 혼자 다가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그런 말투였다.


그는 생각보다 감정을 많이 감추는 사람이었다.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썸일까


당사자가 아닌, 내가 느끼기에도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갔고, 멀어진 대화.

그의 말투 하나하나, 아쉬운 부분을 짚을까 싶다가도,

아닌 듯하다.


‘잘 안 됐네, 더 좋은 사람 나타날 거야.’

위로의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지금은 이유를 캐묻기보다는,

형이 진심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쪽이 나아.”


“지금 이대로라면 썸? 그냥 끝인데, 그런 이유들을 물어본다고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니까?”


이유를 듣는다고 해서 후련해지지도 않을 거라고, 찜찜한 기분이 없어질 것도 아니라고.


따듯하지 않은 텍스트들을 쏟아내고, 기운 빠진 듯한 그의 카톡을 보면서


슬프게도 끝이 가까워 보이는 걸 느꼈다.




월요일 아침,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 차였어...”


새벽 1시,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고


끝을 말하는 그녀의 카톡은 '만나고 싶었다'는 그 말로 시작됐었다고 했다.


“만나서 얘기하고 싶었는데…”


… 우리 그만 연락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결국 몇 줄의 메시지로,

그녀는 관계를 조용히 정리했다.


"형, 그만 연락하자는 말에 다시 이유를 묻진 않았지?"

혹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걱정돼서 물었다.


다행히도 그는 그 썸붕의 이유에 대해서, 더 말하거나 묻지 않았다고 했었다.


그냥, 알겠다고 했다고.


그리고 나는, 그 조용한 받아들임 속에서

그가 조금 더 성숙해졌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그가 그 새벽의 메시지를 받은 순간보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은 지금이 더 울컥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받지 못한 채 놓아주는 일은

얼마나 쓸쓸한지를.


우리는 때때로 감정을 '밝히려' 든다.

이해받고 싶고, 해명받고 싶어서.


하지만 감정이란 건,

밝히는 게 아니라 조용히 감싸주는 것이 아닐까.


그가 그날 밤 물어보지 않기로 한 건

‘포기’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따뜻하려는 선택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의 썸은 끝났다.


하지만 그 관계를 지켜본 나는

조금 더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 또한 다음에 다시 사랑을 시작할 때,


그땐, 어떤 이유를 묻는 대신, 온기를 먼저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게 누군가와 다시 관계를 시작하는

가장 따뜻한 방식일 테니까.




죽기 직전의 새싹도

누군가에겐 양분이 된다.

감정은 실패하지 않는다.

그저, 다음 피어남을 위한 흙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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