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집이란 무엇일까

by 이성대

“우리, 서른다섯 전에 내 집 마련할 수 있을까?”


네가 무심한 듯 던진 그 한마디가 하루 종일 마음 한편에 남았다.

내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나는 자신 없어.”

그리고 웃었지. 사실 웃은 게 아니라, 그냥… 씁쓸했던 거다.


부모님이 인천에 집을 분양받았을 땐

“얼마나 오를까”가 모두의 관심사였다고 했다.

그 관심은 곧 욕망이 되었고,

욕망은 당연한 꿈이 되었다.


그때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불리는 것’이었다.

집이라 불리우는 무언가.


우린 수원과 용인, 성남 아래쪽을 돌아다녔다.


평일 오후여서일까.

한산한 스포츠센터 옆 부동산을 나와 걸었다.


신축과 구축 사이, 어중간한 아파트들.

CF 광고에서 고급스럽게 반짝이던 브랜드 로고는

얼마 전에 칠한 듯한 외벽들 속에서도

유독 덧칠되지 않은 색감으로 남아 있었다.


파 먹힌 듯 구멍 난 놀이터의 고무바닥을 지나며

스치듯 떠오른 생각이 발걸음을 붙잡아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내 20년, 30년을, 그만큼의 절반만큼

‘내 집’에게 넘겨준다.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 이 집을 내놓게 될 그날.

그 집에 매겨지는 가치는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이자를 기억해 줄까?

아니면, 그 모든 무게를 무시한 채

그냥 ‘오래된 집’이라 불릴까.



인구 절벽에 대한 뉴스는

벌써 몇 해 전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내 집’은 우리가 지내는 동안 함께 나이를 먹을 것이고,

대출이자는 앞으로 커질 제 몸집만큼 입을 벌리고 날 보챌 것이다.


이젠 집을 산다는 건

희망이나 욕망이라기 보단

그냥 감당해야 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욕심은 생긴다.

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내 집’이라는 말은

이상하게 따뜻하고,

가끔은 울컥하게 만든다.


“굳이 비싼 집은 필요 없어…”

돌아오는 길에 너는 그렇게 말했지만,

말속엔 ‘그래도 하나쯤은…’이라는 바람이 느껴졌었다.


집이 아니라,

그냥 ‘내 집’이라는 말에서 오는

작은 안정감을 갖고 싶은 걸까.


어렴풋이 느껴진다.

누군가가 사주거나,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맞지 않는 이상

성실할 뿐인 우리가 집을 가진다는 건

그저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그래도 나는 너에게 말한다.

“그래도, 욕심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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