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펄
겨울이라 벽지와 매트리스 사이에서 안경을 찾았다.
가끔 생각나면 보이는 곳을 훑고, 손이 닿는 곳을 뒤적여 보긴 했지만, 딱히 간절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물건일 뿐이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몇 주 동안 보이지 않던 물건이었다. 그녀와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었다.
일상을 보내다가, 강의를 듣거나 영화를 볼 때, 그리고 일에 집중하고 싶을 때만 안경을 썼다.
난 눈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면 눈에 안 좋아”라고 종종 말했지만, 난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있고, 퇴근 후에도 빠져 살았다.
기절하듯 잠들기 전까지 유튜브를 보며 보내는 날들이 대부분이었으니, 그 말이 와닿지는 않았다.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이미 안경을 ‘내 눈’처럼 여기지 않았다. 아니 혹은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2009년 나는 공학 중학교를 다녔다. 지하철 개통을 계기로 지어지는 신도시에 지어진 학교였다.
촘촘한 아파트 블록 사이에도 이사 온 집에서 가까운 중학교는 있었지만, 신도시에는 아이들이 많았고 뺑뺑이로 운이 나쁘게 먼 학교에 배정받았다.
학교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버스를 타면 10분, 걸으면 20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옆 단지에 사는 지연이는 나와 같은 반이었다. 나와 비슷한 형편이었던 지연이는 종종 등교시간에 같은 버스를 타곤 했고 그렇게 친해졌다.
교내에는 매점이 없었고 학교 정문을 지나 짧은 횡단보도를 건너면 문방구가 있었다. 그곳은 매점 역할도 하곤 했었다.
지연이는 불량식품을 참 좋아했었다.
껌이나 '마이쮸'나 '차카니', 아주 불량식품은 아니지만, 어른들은 먹지 않았던 그런 것들.
짝꿍을 하던 때엔 등굣길에 같이 들렀다. 지연이가 없는 날엔 혼자 사 와 나눠먹거나 그랬었지.
나는 칠판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서 검은 뿔테 안경을 샀고, 지연이는 빨간색 에나맬 안경을 썼었고, (그 사실이) 중요하진 않다.
점심시간엔 방송부에서 아이돌 노래를 틀어주었다. 아이들은 그 노래를 좋아했었다. 그땐 ‘멜론’이나 ‘유튜브 뮤직’이 없었으니까, 기껏해야 mp3, 아이팟 정도에 넣고 다니는 노래 몇 곡이 전부였으니까
나는 노래보다 네 목소리가 좋았다.
겨울이었다. 지연이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나왔다. 지연이는 선물로 큰 인형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친구들과 번화가의 큰 문구점에서 내 키만 한 하얀 곰인형을 사 왔었다.
그 곰인형을 껴안는 건지 깔리고 있는 건지 모르게 파묻힌 채 버스를 탔었다.
곰인형의 팔이 자꾸 좌석 팔걸이 사이로 삐져나갔고, 그게 신경 쓰여서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다음날에 지연이를 만났다. 자주 그네를 타던 놀이터였다.
“나 내년에 미국 가.”
“…”
“미안해.”
이틀 동안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