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마시고 난 커피잔

이해, 존중 그리고

by 이성대

커피를 마시고 난 뒤, 일어난 너의 뒷모습은 나에게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는 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너는 늘 따듯한 라떼를 마셨었다.


"자기야, 왜 맨날 라떼만 마셔?"

나의 질문이었고,

"너도 그러면서 매번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잖아.."

너의 답변이었다.


담배를 배운 이후로, 냄새 때문에 라떼를 마시지 않게 됐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커피를 좋아해서 카페 사장이 꿈이었던, 너도 라떼만 마시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었다.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였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일에 대해선 이해하려 노력했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존중하며 지냈었다.




공유하는 시간이 짙어지고 더 많은 공간을 향유할수록, 오히려 더 많이 참게 되는 것이 많아졌다.

그리고 ‘참는 것’이 사랑의 방식인 줄로만 알았다.


우린 예전보다 '이해한다’는 말을 쉽게 쓰지 않았고, ‘괜찮다’는 말 뒤에 감정을 감췄다.


감정이 저물자, 갈등이라는 이름의 골짜기 또한 깊어졌다.


자존심, 혹은 이기심.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 절벽은 서로에게 점점 높아져갔다.


'권태기'라고 던지듯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


어디선가 봤었던 그랜드 캐니언의 골짜기처럼

우리는 서로의 지구에서 가장 깊은 상처가 되었다.




사소한 삐걱 거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원래 그래"

"원래 그런 건 없어"

"누나 있잖아, 원래 그래라는 말이 제일 싫어"

"넌 왜 이해 못 하는 거야?"


처음으로, 넌 카페에서 나보다 먼저 유리문을 밀어내서 나갔었다.


이해와 존중, 그리고 받아들이는 건 다르다.



그동안 새로운 인연들보다, 가지고 있던 인연들을 붙잡고 살아갔어서 그럴까

오랜 고민 끝에 참석한 자리는 어색한 자리였다.


난 오늘 따듯한 라떼를 마셨다.

여전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더 좋아하지만, 따듯한 라떼도 마시고 싶어지는 날이 생겼다.


지독한 담배를 끊기도 하기도 했지만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고,

라떼의 맛이 대단하게 바뀌어서도 아닐 것이다.


처음에 라떼를 보기만 해도 생각나던 너였다.

시간이 지나서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더 이상 원망하기도, 그리워하지도 않지만 가끔 떠오르긴 한다.


그때의 너를,

시간이라는 이름의 렌즈를 통해서

제대로 바라보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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