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텐 알베크, 『삶으로서의 일』—워라밸을 넘어 ‘단 하나의 삶’으로
"직장에 헌신하던 시대는 지났다."
"일만큼 내 삶의 여유도 중요하다."
"퇴근하면 일은 끝, 진정한 내 삶이 시작된다."
기성세대의 직장 중심 문화에 반발하며 생겨난 말이 '워라밸'이다. 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찾겠다는 것이다. 이제 워라밸을 무시하고 직장에 헌신하는 건 꼰대적 사고방식으로 취급받는다.
물론 동의한다. 밤낮으로 일에만 몰두해 가정과 취미, 삶의 여유를 잃어버린 채, 존엄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망각한 채 조직의 부품처럼 살아가는 것은 마땅치 않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워라밸이란 말은 몇 가지를 전제한다. 일은 고되고 일로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 행복은 일 밖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 일하는 시간은 나의 삶이 아니며, 진정한 내 삶은 일이 끝난 지점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의문이 든다. 내 삶은 하나인데, 왜 나는 둘로 나뉘어야 할까.
덴마크의 철학자 모르텐 알베크는 『삶으로서의 일』에서 이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워라밸'은 균형을 만들어주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분리시키는 위험한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시간을 나누면 삶이 나뉘고, 삶이 나뉘면 결국 '나'도 나뉜다. 알베크는 우리가 단 하나의 삶을 살고 있음을 강조한다.
일터의 시간도 내 삶의 시간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일하러 간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살기 위해 하루를 시작한다"가 더 정확한 표현 아닐까.
일은 삶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짜여 있는 일부다. 그 시간은 결코 되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그 시간을 "버티는 시간"으로 취급한다. 삶의 절반이 버텨야 하는 시간이라면, 나머지 절반으로만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그 강박은 퇴근 후의 시간을 '진짜 삶'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진다. 워라밸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일터 밖에서 무언가를 소비하고 경험하고 기록해야만 비로소 살고 있다는 느낌을 얻는다. SNS에 사진을 남기고, 그게 행복이라 믿으면서.
행복보다 더 오래가는 것
알베크는 우리가 자주 혼동하는 세 가지 감정을 구분한다. 만족은 욕구가 채워졌을 때의 감정이고, 행복은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찰나다. 문제는 만족이든 행복이든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베크가 보기에 인간의 충족감은 본질적으로 순간적이다. 채워지는 순간 다시 비워지고, 그 빈자리를 또 다른 무언가로 채우려 한다. 워라밸이 끝없이 '일 밖의 행복'을 요구하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의미(Meaningfulness)'다.
지금의 내가 괜찮고, 앞으로의 삶도 괜찮을 것이라는 확신. 행복은 순간이지만, 의미는 방향이다. 삶이 무너질 때 버티게 해주는 것도 만족이나 행복이 아니다. 알베크는 이것을 '실존적 면역 시스템'이라 부른다. 왜 힘든데도 계속해나가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이게 나에게 의미 있으니까."
의미를 만드는 네 가지 조건 — MQ
그렇다면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알베크는 이를 MQ(Meaning Quotient, 의미 지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내 삶이 존엄하고 희망이 있다는 감각은 네 가지 요소에서 나온다.
목적(Purpose) — 내 일이 어디에 쓰이는지 아는 것
소속감(Belonging) — 부품이 아니라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
개인적 성장(Personal Growth) —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가
리더십(Leadership) — 조직이 나를 존중하고 방향을 보여주는가
MQ는 거창한 변화가 있어야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내 일이 누구에게 어떤 변화를 주는지 떠올려보는 것, 동료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것, 지금 하는 일이 진짜 가치를 만들고 있는지 잠시 멈춰보는 것. 알베크는 음악에 휴지부가 있어야 멜로디가 들리듯, 삶에도 그런 멈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작은 성찰이 의미를 조금씩 만들어낸다.
균형이 아니라, 의미 있는 불균형
우리는 자주 균형을 찾으려 한다. 일도, 가정도, 나 자신도 완벽하게 챙기는 삶. 하지만 과연 그런 균형을 저울에 잰 것처럼 맞출 수 있을까.
알베크가 제안하는 것은 '완벽한 균형'이 아니라 '완벽한 불균형(Perfect Imbalance)'이다. 어떤 날은 일이 더 중요하고, 어떤 날은 가족이 더 중요하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 하지 말고, 하나의 삶으로 통합하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불균형 자체가 아니라, 그 삶 전체가 여전히 나에게 의미 있는가다.
일과 삶의 기계적 균형을 추구하는 한, 일로 보내는 시간은 견뎌야 할 고통일 뿐이다. 그러나 일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시간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삶은 없다. 하지만 전체로서 의미 있는 삶은 가능하다. 알베크의 말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과 삶을 나누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삶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눈이다.
오늘 하루가 버티는 시간이었다면, 한 번쯤 물어볼 만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 시간을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