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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터 Mar 12. 2022

문제를 정의한다는 건 분명한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것

두리뭉실한 불안이나 생각을 문장으로 옮겨보자

얼마 전 팀의 동료가 서비스에 대한 어떤 우려 섞인 아이디어를 들고 왔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는데, 팀원의 우려 혹은 아이디어 뒤에 자리한 문제 정의가 불분명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유형의 고객이, 어떤 활동을 하는데 문제가 생겨서, 어떤 지표가 떨어질 게 우려된다는건지 확실치 않았다. 무언가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그 정체가 불분명했다.


대화가 끝나고 퇴근 길, 문제 정의는 어떻게 하는걸까? 혹은 나는 문제 정의를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는가? 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순히 고객의 유형을 나누면 되나? 그럼 문제 정의란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한 활동인가? 혹은 지표를 들고오면 되나? 그럼 문제 정의란 지표의 선정과 예측인가?


이런 저런 생각이 이어진 끝에, 결국 문제 정의란 "두루뭉실한 생각을 분명한 언어로 옮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내용을 정리해 공유한다.




우리의 생각은 두리뭉실하고 요동친다


우리의 모든 생각은 두리뭉실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한다. 퇴근을 생각하다가 어느새 퇴근 후 먹을 치맥을 생각하고, 치맥을 생각하다가 배달 어플의 쿠폰이 남아 있는지를 생각하고, 쿠폰을 생각하다가 지난주에 동네 마트에서 나눠준 전단지가 생각난다. 날뛰는 야생마, 혹은 출렁이는 바다와도 같다.


이는 어쩌면 발상과 창작, 영감의 원천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를 향해 얼마나 멀리 혹은 얼마나 깊게 갈지 모르기에, 그 끝에 놓인 것이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감성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획자가, PM이, 혹은 프로덕트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덕트 팀의 생각은 이처럼 두리뭉실해선 안 된다. 프로덕트를 통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정확히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하는 건지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의지와 다르게 우리의 생각은 자꾸만 요동치고, 변화한다.


우리의 생각은 좌측의 구름처럼 형태가 불분명하거나, 우측처럼 빠르게 이곳저곳으로 옮겨간다. 결국 분명하지 않고, 계속해서 요동친다.



생각을 언어에 담으면 분명해진다


어쩌면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 혹은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는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의 색깔에 대한 언어밖에 없기에 무지개를 7가지 색으로 표현하지만, 색을 훨씬 더 다양하게 분류하는 언어를 가진 민족은 무지개를 더 다채롭게 표현한다는 이야기. 더 나아가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에선 '사피어 워프 가설'을 빌려, 과거-현재-미래를 하나의 순환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외계인의 언어 체계를 배운 주인공이, 어느덧 그들처럼 미래를 과거처럼 보거나 인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컨택트. 외계인과의 조우 너머, 언어가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어쨌든 우리의 언어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생각을 담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우리의 두리뭉실하고 표류하고 요동치는 생각을 분명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언어에 담는 것이다. 그것도 지나가면 사라질 말言이 아니라, 종이 혹은 화면 위에 문장, 글로 담는 것이다.


두리뭉실하고 요동치는 생각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어, 그중에서도 글로 정리하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부는 변하고, 또 소실된다.


물론 엄밀하게는 이 과정에서 변형이나 소실이 생기기도 한다. 처음엔 A라고 생각했지만 이를 표현할 적절한 어휘가 없거나, 적다 보니 달라서 A를 A'라고 적어야 하거나 혹은 "에이"라고 적게 될지도 모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나는 그저 '마음이 불안하다'라고 생각했는데, 적으면서 정리하다 보니 알고 보니 '마음이 불편하다'가 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분명한 단어와 문장으로 적어 내려가는 과정에서 나의 두리뭉실하고 요동치던 생각들은 구체적인 단어에 담겨,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고, 구체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더 이상 두리뭉실하지 않게 된다. 변화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엄밀한 단어 선정, 단어의 정의가 중요하다


그런데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모든 생각을 정확히 담을 수는 없다. 나의 생각은 1부터 100까지를 담는데, 어떤 단어는 고작해야 1부터 70까지밖에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나는 A라고 생각하는데, 이 단어에는 A 말고도 B와 C의 뜻을 내포하는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을 언어로 구체화할 때에, 단어의 선정이 중요하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단어도 실은 모두 오묘하게 뜻이 다르다. 정확하다, 적확하다, 정밀하다, 엄밀하다, 세밀하다, 등등... 예시로 나열한 단어 모두 일상에서 비슷한 의미로 쓰일 수 있지만 그 뜻과 용례를 파헤치다 보면 결국엔 다른 단어다. 다른 현상, 다른 생각을 내포하고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나왔고, 반대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말 역시 같은 이유에서 나왔다. 나의 두리뭉실하고 요동치는 생각을 언어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비슷해 보이는 두 단어가 실은 서로 의미하는 게 다르다는 이야기다.



결국 문제를 정의한다는 건 제대로 된 단어를 골라서 분명한 문장으로 쓰는 일인지도 모른다


기획자로써 제대로 된 문제를 발견하고, 또 정의하는 일에 집중하는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문제를 정의한다는 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제대로 된 단어를 골라서 이를 분명한 문장으로 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가령 "구매자의 1개월 뒤 리텐션을 올린다"는 목표와 이를 위한 방안을 검토하자는 이야기를 공유받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다짜고짜 방안을 떠올리거나 레퍼런스를 찾아보는 일이 아니라 "구매자의 1개월 뒤 리텐션을 올린다"라는 생각 자체를 뜯어보는 일이었다. 단어 하나하나의 정의를 다시 내리고 이를 다시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이었다.


- 구매자란 누구, 어떤 유형의 고객을 의미하나? (다양한 상품, 유형, 수준의 구매자가 있다)

- 리텐션이라는 게 애초에 무엇인가? (이걸 정의할 수 있어야 이걸 올리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 그럼 1개월 뒤 리텐션은 무엇인가?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어떻게 측정하는가? (측정 기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  등등...


그리고 이 과정을 머릿속으로 하는 게 아니라, 문장으로 적어 차근차근 쪼개어 나간다. 그러다 보면 내가 기획을 통해 풀어야 하는 문제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분명해진 문제의 정의에 팀원이 동의하는지 물어본다. 방법과 실행 안을 찾는 건 이다음의 일이고, 문제의 정의만 분명하고 또 방향성에 맞다면, 방법을 찾아 실행하는 건 어쩌면 순탄할 수도 있다. (적어도 문제 정의가 불분명한 경우보단 순탄하다)

기획 이전에 생각을 정리하는 용도로 쓰는 노트의 일부. 일종의 이슈 트리 issue-tree와 같다. 이렇게 정리하다 보면 풀어야 하는 문제의 정체가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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