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제품을 팔기로 결심한 후 바뀐 마인드셋

문학가에서 사업가로, 감성에서 비즈니스로

by 플래터


1. 기회가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창업이든 사업이든, 사이드 프로젝트든 혹은 그저 딴짓이라 부르든, 아주 대단한 미션이나 비전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창업가가 되겠다는 게 아니니까.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뭐라 부르든, 어떤 뜻을 품었든, 비즈니스는 고객이 경험하는 문제를 해결하여 가치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을 기회를 만든다는 것뿐이다.


그러니 일말의 가능성이나 기회가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일까?



2. 가능해서 하는 게 아니라 가능하게 만들고 싶어서 하는 것


그럼에도 가만히 살펴보니, 하지 않을 이유 혹은 경험하게 될 어려움이 십여 가지는 예상된다.


'네카라쿠배' 기획자나 PM/PO도 아닌데 과연 내 브랜드, 내 이름으로 신입~주니어를 키워내는 강의를 팔 수 있을까? 혹은 시니어 급이나 CPO도 아닌데, 과연 될까? 퇴근 후나 주말에 여유가 너무 없어지는 건 아닐까? 시장에 이미 많은 교육이나 강의가 있는데 경쟁력이 있을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가능성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될 거라는 확신이 아니라, 되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모든 중요한 도전과 선택이 그렇지 않던가. 학창 시절 갈망하던 서울의 상위권 대학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에 희망했던가? 가고 싶어서 갈 수 있게끔 공부했던 것 아닌가? 취업은 어떻고, 연애나 결혼은 어떻던가. 가능성은 원래 낮다. 그걸 높이는 게 노력과 도전이고, 그걸 높이고 싶게 만드는 게 도전하는 본인의 동기와 욕구다.



3. 비전과 미션이 중요하구나


아무리 가능성, 기회가 보인다고 한들 그보다 더 많이 산재한 어려움을 헤쳐나갈 동인은 무엇일까? 가능성은 미지수니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역시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아무리 크든 작든, 비전과 미션이야 말로 가장 큰 동인이라는 게 와닿았다.


통역을 전공하던 학부 시절, 성적표나 장학금 같은 게 아니라 영어 그 자체가 좋아 온종일 몰두했다.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가고, 스터디에 가고, 집에 와서는 홀로 연습했다. 오죽하면 종종 영어로 꿈을 꾸곤 했다. 그런다고 해서 당장 실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눈앞의 성과보다 더 큰 목표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왜 많은 엑셀러레이터나 투자자들이 창업팀의 아이템이나 역량 외에도 비전과 미션을 중요시 여기는지 이해되었다. 아이템은 실패할 수 있고, 역량은 모두가 좋을 순 없다. 그러나 비전과 미션이 확고하다면, 이를 달성할 아이템도 다시 찾을 수 있고, 역량도 채울 수 있다.


기획자나 프로덕트 매니저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지식과 경험, 노하우를 제공하고자 하는 나의 비전과 미션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땅바닥에서 헤엄치던 시절의 불안감과 막연함을 달래주고, 비본질적인 것에 시간과 돈을 쓰는 효율을 해결해주고 싶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럼에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눈앞의 성과보다 더 큰 목표를 두고 있었기 때문



4. 첫 시작은 원래 부끄럽다. 준비되면 늦었다.


첫 시작은 부끄럽다. 첫사랑의 추억이 부끄럽지 않은 청춘이 없고, 첫 글이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없듯이, 제품/서비스의 첫 모습이 부끄럽지 않은 PM이나 사업가는 없을 것이다.


이직 후, 전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개발자분과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신입 기획자나 PM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한다는 나의 이야기에, 어떻게 그런 자신감을 갖느냐 물어봤다. 혹시나 틀릴 수 있는 데, 그 부담감을 어떻게 극복하냐는 것이었다.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 친구들도 제가 CPO나 시니어가 아닌 걸 알고 있어요. 제가 뭐 대단한 사업과 전략의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요 뭐. 그 친구들의 수요랑 제가 줄 수 있는 공급의 접점이 있으면, 해보는 거죠 뭐."


이런 마인드를 갖기 이전에는, 회사에서 내놓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늘 부끄러웠다. '이런 걸 돈 주고 판다고?' '하... 거봐, 고객 Voc 가 이렇게 들어오고 그 똥 치우는 건 결국 나네...' 밀려오는 운영 업무나 고객 문의/불만에 압도당할 때면 더욱 그랬다. 신입으로, 운영 인력으로 일할 때 더욱 그랬다.


그러나 기획자로 일한 뒤, 특히나 나의 제품과 서비스를 시도해 보기로 한 지금의 생각은 다르다. 어차피 세상에 완벽한 제품과 서비스는 없다. 애초에 세상에 완벽한 상태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인간은 모두 태어나기를 연약하게 태어나고, 제대로 아는 것도 없이 대학에 입학하고, 사격은 커녕 오락실 총 게임도 제대로 못하면서 군에 입대한다. 준비되었다고 생각한 때에는 이미 늦었다. 아무 단서도 없다면 무모하지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단서를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준비되었다고 생각한 때에는 이미 늦었다. 아무 단서도 없다면 무모하지만,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단서를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5. 그러니 일단 하자. 다만 가설을 갖고. 그러면 틀리든 맞든, 성장한다(고 믿는다)


정년이 보장된 교직원에서 퇴사하던 2019년 여름, 실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 실력이랄 것도, 포트폴리오랄 것도 없었다. 다만 스타트업에서 더 주체적으로 일하겠다는 목표, 그리고 스타트업이라면 나의 성향과 맞을 거라는 가설만 있었다. 그 목표와 가설만 들고 10명 남짓한 스타트업이 50~60명으로 성장하기까지 바닥을 짚으며 헤엄치듯 일했다.


돌이켜보면 방법이 다소 무식했지만, 퇴사와 함께 세웠던 핵심 가설은 검증되었다. 무엇보다 커리어란 무엇인지, 나의 적성과 적합한 환경은 무엇인지 그렇게 알게 되었다. 저질렀기에 배울 수 있던 것들이다.


그 후 프로덕트 매니저로 이직을 하던 21년 가을에도 실은 제대로 준비된 건 없었다. 산업과 아이템이 모두 바뀌었고, 직무도 세밀하게는 달랐다. 그럼에도 이곳이라면, 이 직무라면 내가 얻고자 하는 역량과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가설은 확고했다. (애초에 그런 곳을 찾아다녔다.)


돌이켜보면 그래서 서류와 면접 과정에 선의의 과장이 섞여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 준비되어 있다는 듯한,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주려고 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팀과 회사에 미안한 마음까지는 없다. 분명 공정하게 모든 절차를 통과했기에 받은 합류 제안이고, 적응에 시간은 걸렸지만 어느덧 2년 가까이 일하며 내 몫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회사 역시 사람을 구할 할 때에 선의의 과장을 하기 마련이니까. 연애처럼.)


어쨌든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나는 원하던 걸 얻었고, 21년 가을에 세웠던 핵심 가설을 검증했다. IT 스타트업의 환경, 애자일 방법론,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직무 등. 지금의 지식과 경험, 배움도 그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미 충분히 성장해서 시도할 수 있던 게 아니라, 시도했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


이미 충분히 성장해서 시도할 수 있던 게 아니라, 시도했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



6. 실패와 좌충우돌이 기대된다


이러나저러나 멋들어진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지만, 결국 한 동안 좌충우돌 할 것이다. 회사의 힘으로는 MAU 몇십만을 우습게 이야기했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달랑 고객 한 명에 울고 웃을 게 눈에 뻔히 보이니까.


그러나 그만큼 더 배움이 클 것을 알기에 다가올 시행착오들이 기대가 된다. 실은 성공이 기대되는 것보다, 좌충우돌을 통해 성장해 있을 모습이 더 기대된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고객 수, 매출액 등고 무관하게 궁극적으로 얻어낼 성공의 지표, 결과물일 테니까.


좌충우돌을 통해 성장해 있을 모습이 더 기대된다.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얻어낼 성공의 지표, 결과물일 테니까.




7. 생각을 바꾸는 법


예전엔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생각이 먼저일까 혹은 행동이 먼저일까?


20대의 대부분을 일종의 예술가 혹은 문학가의 감수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삶을 대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대학에서 4년간은 밴드에서 싱어송라이터로 내 곡과 가사를 쓰고 불렀고, 이후로는 소설과 수필을 탐독하며 자주 글을 썼다. 많게는 1년에 150권의 책을 읽고, 200편의 길고 짧은 글을 썼다. 그렇게 스무 살부터 서른까지 꼬박 10년 간, 예술가와 문학가의 우울과 연민, 포용과 공감, 지혜와 용기를 배우고 또 익혔다.


기획자, 또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는 방법 역시 간단하다. 직접 비즈니스를 하면 된다. 그러면 내가 세상에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지, 이를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 그것을 얼마에 팔지, 그 가격에 팔기 위해 주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초기 고객은 어디서 어떻게 발굴할 수 있는지, 이 모든 가설을 어떻게 하면 가장 적은 리스크로 검증할지 등은 저절로 생각하게 된다. 혹은 모르더라도 찾아보게 된다.


일례로 첫 한주는 초기 고객 확보 전략에 대해 생각하고 또 찾아봤다.

초기 고객.png


일단 하면 생각이 바뀌고, 방법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이 달라져서 행동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행동을 달리해서 생각이 달라지는 건 아닐까.


생각이 달라져서 행동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행동을 달리해서 생각이 달라지는 건 아닐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