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의 이른바 브랜딩 컨설턴트들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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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들의 인터뷰엔 보통 큰 시장의 큰 문제를 해결하라는 이야기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크고 절실한 문제를 해결했으니 그만큼 개개인이 지불하는 대가가 클 것이고, 시장이 큰 만큼 많은 이들이 값을 지불할 테니까. 난치병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하는 일, 로켓을 쏘아 올리는 일, 자율주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 등 이른바 세상을 바꾸는 아이템과 기술이 여기 속할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내 주변의 작은 문제, 즉 니치 niche 시장부터 시작해도 된다는 이야기 역시 존재한다. 2001년 어느 일본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는 "우리 스스로 사용하려고 만든 컴퓨터였다. 친구들에게 보여주니 다들 갖고 싶어 했는데, 이걸 만드느라고 업계에 들어왔다. 회사를 시작하려는 마음 같은 건 없었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확실한 믿음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산업이나 세상, 법인에 대한 거창한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애플은 많은 걸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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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 어느 친구는 큰돈을 벌고 싶은 마음으로 창업 아이템을 찾아 나섰다. 그는 돈이 될 만한 것, 대세와 트렌드를 찾아다니며, 창업을 위한 창업을 했다. 연락을 할 만큼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지금 그의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가끔은 의아했다.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어서 실현해 보려고 창업을 하는 게 아니라, 창업을 위해 이런저런 아이템을 찔러보는 건가?' 물론 그는 매사에 열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대로 어느 소셜벤처의 대표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크고 전도유망해 보이는 시장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확실하게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었다. 그걸 해결하고자 친구와, 친구의 지인과, 지인의 지인과 고민하며 시장과 맞부딪혔다. 우리에게 알려진 그런 큰 기업은 아니지만, 회사는 여전히 성장세라는 소식을 얼마 전 어느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다. 기업이 크는 데에, 시장의 크기가 중요한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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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개인 및 영세 사업자들을 위한 이른바 '브랜딩 컨설턴트'라는 계정들을 종종 발견한다. 이전의 업력과 경험을 알 수도 없는 이들이지만, 강의와 강연, 컨설팅과 출판 등으로 적지 않은 매출을 내는 듯 보였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생각해 보았다.
어느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인스타그램엔 소비자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출퇴근길 혹은 자기 전 하릴없이 인스타그램을 훑는 사용자에게는 명확한 Pain point가 없거나 있다 한들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 이들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팔겠다는 시도는, 고객 규모에 비해 그다지 효과가 높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개인 일상이 아닌 뚜렷한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를 유통시켜 고객을 모아 매출을 올리고자 하는 크리에이터나 1인 사업가 등을 자칭하거나 희망하는 이들은 어떤가. 이들의 수는 분명 소비자에 비해 매우 적지만, 경험하는 pain point가 분명하고 크기 역시 상대적으로 크다.
그래서 성공한 크리에이터보다도 성공한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이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판매하는 브랜딩, 마케팅 컨설팅을 하는 이들이 더 재미를 본다. 금광에 들어간 광부보다 광산 입구에서 청바지를 팔던 사람이 오히려 부자가 되었다는 골드러시 시절의 루머 또는 일화(?)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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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시장과 작은 시장. 트렌드와 나의 문제. 수는 많지만 수요가 애매한 고객과, 수는 적지만 수요는 확실한 고객. 결국 선택과 전략의 문제겠지만, 비단 큰 시장과 큰 흐름, 압도적인 기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정리해 본다.
아래는 스티브 잡스의 인터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cdxl7VWLb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