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하는 조직에서 첫 2년은 GrowthPM으로, 최근 몇 달은 매체/광고 사업을 담당했다. 그 사이 조직이 다루는 사업과 제품군이 조금씩 더 크고 다양해지고, 현명하고 사려 깊은 리더들과 일하며 신입은 일 잘하는 주니어가, 주니어는 크고 작은 사업과 프로젝트의 담당자들이 되고 있다.
변화 가운데에 나의 이후 포지션, 임팩트를 내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최근에는 Product Analyst 내지는 Data Analyst 쪽으로 선회했다. 팀 하나에 분석가 역할을 병행하는 PM 또는 별도의 분석가가 있을 규모는 아니지만 각 제품/사업팀마다 수요 내지는 이슈가 점차 생겨나고 있고, 무엇보다 사내에 아직은 그만한 역량 및 관심을 지닌 이가 없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PMF를 찾아 고도화된 제품을 담당하는 GrowthPM은 PM인 동시에 언제나 분석가였다.
지난 3월 중순, GrowthPM에서 DA로의 전환을 앞두고 전사 동료들의 업무 및 데이터 사용 현황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떠오른 몇 가지 생각을적어본다.
1.
누군가는 여전히 데이터를 필요치 않는다. 혹은 필요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운영 및 사업개발 등 IT 서비스를 취급하는 조직 내에서도 대다수의 인력은 엑셀 또는 스프레드 시트 수준의 업무면 충분하다. 더욱이 이들은 데이터를 다루면서도 본인이 데이터를 다룬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어떤 데이터를 봐야 하는지 스스로 정의하거나 질문하지 않은 채,전임자의 시트와 대시보드를 답습한다. 이들에게 데이터는 스스러와는 상관없는 무언가로 남아있다.
2.
누군가는 데이터를 의심한다. 매출액과 전환율 외에 구태여 복잡하거나 깊숙하게 분석할 것이 있느냐 묻는 이도 있고, 그런 게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물음도 있다. 그러한 의심 혹은 질문 너머에는 어느새 '(빅) 데이터'란 단어가 벌써 고루해진 탓도 있고, 이제는 데이터며 개발이며 디자인이며 글이며 인간이 하던 모든 것들을 생성형 AI가 뒤집어놓을 거라는 흉흉한 이야기가 돌고 있는 탓도 있다.
3.
대부분에게는 데이터는 뒷전이다. 너무 바빠서 혹은 당장의 내 연봉과 성과에는 관계가 없어서 데이터를 올바르게 기록하고,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의사결정하는 과정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하던 대로 해도 이전만큼의 성과는 나올 것이고, 굳이 더 나은 방법, 더 깊은 이해, 더 좋은 의사결정 기준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4.
필요와 중요성을 체감하고 우선순위를 높게 설정했더라도 역량이 따르지 않는 이들도 있다. 데이터를 잘 활용한다는 건 SQL 또는 Python 너머에 있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가 막막하다. 가설을 검증하거나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어떤 지표를 봐야 하는지, 이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이를 토대로 검증된 것은 무엇이며 아직 모호한 것은 무엇인지 오해도 왜곡도 없이 이해하고 다시 이를 토대로 다음 계획과 목표를 수립하는 일이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애먼 지표를 KPI로 설정하여 달리는가 하면, A/B Test의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거나 p-value가 0.05 이하라는 사실만으로 배포를 결정한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데이터를 찾는다. 그리고 거기에 희망이 있다. 실무자인 우리가 데이터를 필요치 않다고 믿거나, 의심하거나, 뒷전으로 두는 이유는 대개 그 효용을 아직 체감하지 못했거나, 나의 현재 상태에 문제가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솔루션이 존재하고 또 어떤 해결이 가능한지 모를 때에, 우리는 실은 문제임에도 문제라고 체감하지 않는다. 결국 문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늘 주관과 인지의 영역이다. 이상이 낮으면 문제는 없다.
6.
그러니 어쩌면 좋은 DA는 후행적으로 수요에 대응(re-active)하는 게 아니라, 잠재한 문제를 발굴하고 무엇이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선행적으로(pro-active)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깊게 이해하게 돕고, 조금 더 쉽게 사용하게 돕고, 조금 더 활발히 소통하게 만드는 사람. 분석가(Analyst)가 너머 운동가(Activist)이자 옹호자(Advocate)로서의 DA.
분석가(Analyst)가 너머 운동가(Activist)이자 옹호자(Advocate)로서의 DA.
7.
DA를 Staff 조직 혹은 요청받은 업무를 수행하고 도와주는 서포터로 이해하는 이들도 많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PM으로서 한 일도 DA로서 해야 할 일도 결국 다르지 않다. 문제를 발굴하여 정의하고, 적절한 솔루션을 도출하여 제안하고 설득하고 해결해 주는 일. 내가 이해하고 있는 모든 일의 공통된 성공 방정식이다.
현황 진단 및 문제 발굴을 위해 진행한 인터뷰 캘린더. 전사 실무자의 절반 가량을 3주에 걸쳐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