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일련의 글에서 PM 취업을 희망하는 이들의 포트폴리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몇 가지 아쉬운 점과 개선 방안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일부의 오해나 착각과 다르게, 솔루션의 신선함이나 구체성, 또는 결과의 성공 여부와 그 수준은 선배 또는 면접관 입장에선 크게 중요치 않다. 신선하고 완벽하며 간단하기 그지없는 솔루션은 애초에 없고, 실무에선 성공보단 실패, 또는 아주 애매한 성공을 맞닥뜨리는 일이 더 많으니까. 그래서 가설을 검증할 명확한 지표, 결과 분석 등이 오히려 중요함을 이야기했다.
이 외에도 문제 발굴 및 정의 단계에서 수강생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패턴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인터뷰/설문 설계 단계에서 목적과 무관하거나 쓸모없는 질문, 아무런가설이 없는 질문을 추가하는 일이다. 고객/사용자 중심의 기획 등의 마인드셋을 듣고 배웠지만, 목적에 맞는 방식을 구상하는 연습, 그리고 가설을 검증한다는 것의 의미를 아직은 깊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듯하다.
인터뷰/설문의 이슈 (1)-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질문
세상에 알아서 나쁜 건 없다. 언제 어떻게 쓰일 줄을 모르니까. 아무리 기획하고 추측해도 예상 밖의 일은 늘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모든 행위에는 비용이 따른다. 고객과의 인터뷰나 설문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질문을 하는 데에도, 그 답을 모두 기록하고 분석하는 데에도, 그리고 무엇보다 고객이 그 모든 질문에 답을 하는 데에도. 그래서 질문은 기본적으로 목적에 부합하는 질문, 꼭 필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 인터뷰/설문도 일종의 MVP다.
대표적으로 성별이나 나이, 직업을 묻는 경우가 있다. 고객 아바타의 템플릿 또는 예시에 대개 그런 내용이 담겨있다. 그런데 그 정보가 정말 필요한가? 제품/서비스에 따라 연령과 성별, 직업과 소득 수준이 필요한 정보일 수도 있다.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그만큼 많다.
예컨대 부트캠프의 수강생 나이를 물어 평균 나이를 구하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애당초 인터뷰/설문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이 질문이 필요한가? 나이가 궁금했던 건가 혹은 구매 동기가 궁금했던건가?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에, 이 질문에 답을 구하면 목적이 달성되는가?
인터뷰/설문의 이슈 (2) - 알아도 쓸모없는 질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질문이란 바꿔 말하면 질문의 답을 구해도 그 답이 어디에도 쓰이지 않는 질문이다. 단순히 사실,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과 정보는 부차적이다. 모든 정보는 궁극적으로 가설을 검증하고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행동을 취하거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사용된다. 다시 말해 정보를 구하기로 했으면 그 정보를 어디에 어떻게 쓸 수 있는지 구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질문이 필요한 질문이다.
예컨대 부트캠프 신청자의 평균 나이가 31세임을 알았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정부지원사업의 특성상 30세 미만 대상으로만 모집해야 하는 강의였다면, '신청자 평균 나이 31세'는 사업의 정책에 위배됨으로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지원사업에서 신청자의 주거 지역은 제한하고나 우대하지 않는다면, 신청자들의 주거지는 물을 필요가 없다. 만약 서울이 52%라는 답을 구했다면 그다음 어떤 행동을 할 건가? 서울역에 가서 오프라인 마케팅을 할 건가? 서울시청에 가서 취준생들의 구직 현황이라도 비교해 볼 건가?"서울 거주자가 많구나~"하고 끝일뿐이다.
이는 비단 인터뷰/설문만이 아니라 제품에서 수집하고 측정할 지표를 설계하는 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이 지표를 측정해 어떤 정보를 얻게 되며 이를 토대로 무엇을 판단하거나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가? 이런 모습이 떠오르지 않으면 불필요한 지표일 가능성이 높다.
인터뷰/설문의 이슈 (3) - 가설이 없는 질문
이처럼 알아도 쓸모가 없는 질문을 적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추측컨대 질문에 대한 가설로서의 답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확인하고자 묻는 질문이라 할지라도, 대략적으로 어떤 답변이 나올지 예상해 볼 수 있다. 가설로서의 답변을 떠올려볼 수 있다.
어차피 만나서 물어볼 텐데 가설로서의 답변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지금이 고객을 만날 때인지 혹은 리서치 등 사전조사를 할 때인지 알 수 있다. 가설도 뭐라도 아는 게 있어야 나온다. 내가 예상되는 범주가 있어야 한다. 백지상태에서 진행되는 질문은 존재할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고객에게서 모든 걸 알아내겠다는 게 가당 키나 할까? 고객은 교사가 아니다.
둘째, 이 질문이 설문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점검할 수 있다. 만약 이러이러한 답변이 나온다면 이는 내 궁금증, 인터뷰/설문의 궁극적인 목적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까? 혹은 여전히 오리무중일까?
셋째,답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를 구상해 볼 수 있다. 이런 답변이 나오면 이를 통해 어떤 의미를 도출할 수 있을지, 그래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 시나리오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정보는 의미를 도출하여 행동을 취하거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사용된다. 구해낸 답의 쓰임이 그려지지 않거나 너무 뻔한 답이 나올 것이 자명한 질문은 불필요하다.
넷째, 질문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하거나 물어야 할지 설계하기 쉬워진다. 인터뷰나 설문은 구체적인 언어를 통해 고객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다. UX라이팅은 비단 상세페이지나 CTA 버튼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터뷰나 설문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는 과정 역시 일종의 UX다. 가설로서의 답변은 '이런 식으로 물어보면 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 사용자가 질문을 이해하고 혼선 없이 답할 수 있을까' 점검하고 설계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섯째, 팀의 이해도를 맞추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고객의 인터뷰나 설문을 들여다보는 건 비단 PM 뿐만은 아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도, 분석가도, 때론 개발자도 함께 들여다본다. 다만 서로 인터뷰나 설문의 목적, 혹은 내용을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다. 이때에 가설로서의 답변이 있다면 개별 질문이 무얼 알아내기 위함인지 동일하게 이해하는 게 쉬워진다.
가설조차 없다면 무얼 시작할 때가 아니다
이때 중요한 건 가설의 진위여부가 아니다. 가설은 가설일 뿐이니까. 전혀 생각 못한 범주의 답변 또는 기대와 다른 비율 또는 분포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틀리더라도 가설이 있는 것과 가설조차 없는 건 천지차이다. 가설은 어떤 멋들어진 기술이나 방법론, 프레임워크가 아니다. 세상을 최대한 구조적이고 논리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며 점진적으로 확률을 높여가기 위한 하나의 사고 체계 그 자체다. 답을 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이에게 가설이 없다는 건 아무런 사고 체계가 없다는 것과 같다. 가설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필요가 없는 질문일 가능성이 높다. 조금 더 과감히 표현하면, 가설조차 없다면 무얼 시작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