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초등학교에 다녀요.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하얀 카네이션을 만든 수진이 이야기>

by 송희온


발령받은 지 몇 해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첫 출근 날, 6학년 3반 교실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맨 뒷자리 창가에 앉아 있던 수진이었습니다. 수진이는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무엇보다 눈빛이 맑았습니다. 첫인사를 나눌 때도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이 참 의젓해 보였습니다.


"선생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수진이는 성적도 우수했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습니다. 반장은 아니었지만, 누가 힘들어하면 먼저 다가가 도와주는 아이였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수진이 주변에 모여들었고, 수진이는 늘 환하게 웃으며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교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선생님... 송 선생님이십니까? 저... 수진이 아버지입니다. 혹시... 오늘 방과 후에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습니다.


"네, 그러세요. 혹시 무슨 일이..."

"아니... 아닙니다. 그냥... 꼭 찾아뵙고 싶어서요."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후, 교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습니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수진이 아버지였습니다. 정장 차림이었지만 넥타이는 비뚤어져 있었고, 머리는 며칠 감지 않은 듯 부스스했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찾아뵙게 되어서..."

수진이 아버지는 의자에 앉자마자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그리고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기다렸습니다.

"선생님... 제 아내가... 지난주에..."

수진이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심장마비였습니다. 어제까지 너무 건강했습니다. 그런데 퇴근길에 그만..."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수진이한테는... 아직 자세히 말 못 했습니다. 그냥... 엄마가 하늘나라 갔다고만... 수진이가... 너무 의젓하게 받아들여서... 오히려 제가 더... 더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수진이 아버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계속 말했습니다.


"수진이가 요즘 집에서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개고... 자기 일은 혼자 다 하고... 제가 늦게 들어오면 밥도 차려놓고... 선생님, 저는... 저는 아빠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선생님, 혹시 수진이가 학교에서 이상한 모습 보이면... 제발 저한테 연락 주세요. 수진이가...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보여서... 제가 더 걱정입니다."


수진이 아버지는 그렇게 한참을 우셨습니다.


다음 날부터 저는 수진이를 더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수진이는 여전히 밝았습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수업 시간에는 손도 열심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창밖을 바라보는 수진이의 눈빛이 텅 비어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다가 혼자 멍하니 있을 때, 미술 시간에 가족 그림을 그리다가 물감을 흘렸을 때, 쉬는 시간에 책을 읽는데 시선이 책에 가있지 않을 때.

저는 그럴 때마다 수진이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주었습니다. 등도 토닥토닥 해주었습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선생님이 여기 있다. 너의 곁에 있다.'라는 것만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5월 어버이날이 다가왔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카네이션을 만들고, 감사 편지를 썼습니다. 수진이도 열심히 카네이션을 접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진이는 카네이션을 두 송이 만들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빨간색, 하나는 하얀색이었습니다.


"수진아, 카네이션 예쁘게 만들었네. 누구 드릴 거야?"

"아빠 드릴 거예요. 빨간 카네이션이요. 아빠가 엄마 몫까지 하시니까... 두 배로 감사해야죠."


"그럼 하얀 카네이션은?"

수진이는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한테요. 하늘에서 받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수진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습니다.

"그럼, 엄마가 분명히 받으실 거야. 하늘에서도 수진이가 보일 테니까."


수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카네이션을 정성스럽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버이날 다음 날, 수진이 아버지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선생님, 어제 수진이가 저한테 카네이션을 주면서 '아빠, 힘내세요. 나는 괜찮아요. 우리 둘이 힘내면 되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수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9월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었습니다. 학부모님들이 교실에 오셔서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날이었습니다.

수진이 아버지는 4월에 뵀을 때보다 훨씬 깔끔해 보이셨습니다. 면도도 하시고, 정장도 단정하게 입으셨습니다. 공개수업 내내 수진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참 따뜻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학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학부모님들은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수진이 아버지께서는 마지막까지 남아계셨습니다.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셨나 봅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수진이가... 요즘 많이 밝아졌습니다. 집에서도 이제는 엄마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같이 보고... 저도... 이제는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이 잘 이겨내고 계시는 거예요."

"아닙니다. 수진이가 저를 이끌어주고 있습니다. 수진이가... 너무 훌륭하게 자라줘서... 제가 오히려 배우고 있습니다."


수진이 아버지는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4월에 보았던 그 무너질 것 같던 모습은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겨울방학을 앞둔 12월.

수진이가 제 책상에 편지 한 통을 놓고 갔습니다.



선생님께.

저는 처음에 엄마가 왜 떠나셨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너무 억울하고 슬펐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아무 말 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때, 아무 말 없이 저와 그냥 같이 있어 주실 때, 조금씩 견딜 수 있었어요.

아빠도 많이 힘드실 텐데 저 때문에 더 힘내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더 잘하고 싶어요. 엄마가 하늘에서 보시면 자랑스러워하실 수 있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계셔서 제가 이겨낼 수 있었어요.


수진 올림"


편지를 읽고 나니 눈물이 났습니다.


수진이는 지금도 씩씩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수진이는 6학년이 아니라 어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세살 아이가 겪기에는 너무나 큰 슬픔을 견디고,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습니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수진이와 수진이 아버지는 서로를 의지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가족이란 함께 있을 때만 가족이 아니라, 서로를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어디에 있든 가족이라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