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공감능력 없거든요"라고 당당히 말하는 준우의 이야기>
발령받은 지 다섯 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6학년 2반 담임을 맡았는데, 첫날부터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준우였습니다.
키 크고, 잘생기고, 자신감 넘치는 눈빛.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준우입니다."
성적 최상위권에 야구까지 잘했습니다.
학급회장도 압도적 표차로 당선.
재치있고 유머러스해서 준우 주변엔 늘 친구들이 가득했습니다.
'복받은 아이구나.다 가졌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겐 아주 중요한 딱 하나가 없었습니다.
3월 둘째 주.
청소 시간에 준우 자리 밑에 사탕 봉지가 있었습니다.
"준우야, 쓰레기 좀 주워줄래?"
준우는 힐끗 보더니 발로 슥— 옆자리로 밀어버렸습니다. 자연스럽게.
"준우야, 지금 발로 밀었어? 선생님이 주우라고 했는데?"
"아, 죄송합니다."
준우는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쓰레기를 주워서 버렸습니다.
다음 날도 똑같았습니다.
그 다음 날도. 제가 말하기 전까지는 절대 줍지 않았습니다.
어느 수학 시간, 문제를 풀다 뭐가 잘 안 풀렸는지, 준우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활동지 하나만 더 주세요."
"지우개로 지우면 되잖아."
"깨끗하게 다시 쓰고 싶어요."
제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준우는 학습지를 마구 구기더니 쓰레기통으로 던졌습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쓰레기통에 쏙.
아이들이 "오—" 환호했습니다.
"준우야, 지금 뭐 한 거야?"
"아, 죄송합니다. 다시 안 그럴게요."
저는 뭘 잘못했는지 한참 지도하고, 활동지를 다시 주었습니다.
복도에서는 더 심했습니다.
다들 조용히 걸어가는데 준우만 계단을 세 칸씩 쿵쿵쿵 뛰어내려갔습니다.
"준우야! 뛰지 마!"
"네!"
언제나 대답은 잘합니다.
준우는 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뛰어내려갔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준우 이름을 불렀습니다.
수업 중에도, 쉬는 시간에도. 준우를 부르고, 수업하고, 또 부르고.
다른 예쁜 아이들을 칭찬해줄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5월. 도덕 시간.
공감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능력이야. 아이들은 어릴때 대부분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데 커가면서 다른 사람까지 생각할 수 있게 자라는 거지."
그때 준우가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 그럼 저는 공감능력이 없는 거네요."
"...무슨 말이야?"
"저 공감능력 없거든요."
교실이 조용해졌습니다.
"진짜요. 남들이 뭐 슬퍼하든 화나든 잘 모르겠어요. 저만 재밌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준우는 분명히 성공할 아이였습니다. 머리 좋고, 운동 잘하고, 집안 좋고, 외모도 뛰어나고. 이미 중학교 야구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는 소문도 들렸습니다.
그런데 공감이 없었습니다. 남이 힘들든 슬프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준우 어머님과 상담을 해야했습니다.
어머님은 말끔한 옷차림에 비싸보이는 가방, 악세서리에 화장도 정갈하게 하고 오셨습니다.
조심스럽게 준우의 행동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쓰레기 발로 밀기, 종이 함부로 버리기, 복도에서 뛰기. 주의를 줘도 다음 날이면 또 똑같은 것.
준우 어머니는 아름다운 얼굴로 환하게 웃으셨습니다.
"선생님. 우리 준우 집에서는 안그래요. 제 말을 얼마나 잘 듣는데요.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한테 인기도 많아요. 또 저한테는 얼마나 잘한다고요. 학교에서 부족한 점이 있으면 그건 학교에서 가르쳐 주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참, 저희 애는 혼내는 것보다 칭찬하면 말을 잘 들어요. 선생님, 칭찬 많이 해주세요."
상담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저는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9월. 체육 시간.
준우가 야구공을 잘못 쳐서 옆 반 아이 얼굴에 맞았습니다.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 아이를 보건실로 데려갔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습니다.
"준우야, 그 친구한테 가서 사과해야지." "네."
준우는 그 아이에게 가서 "미안" 한마디 했습니다. 표정 변화도 없이. 형식적으로.
그리고 다시 운동장으로 나가 환하게 웃으며 야구를 했습니다. 방금 일은 까맣게 잊은 듯.
준우는 어떤 어른이 될까요? 분명히 크게 성공할 겁니다.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들어가고, 프로 야구 선수가 될 수도 있죠.
그런데 공감이 없습니다. 남의 아픔을 모릅니다.
문득 뉴스에서 본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남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똑똑하고 능력 있지만 공감은 없는 사람들.
입안이 한약 먹은 것처럼 씁쓸했습니다.
12월. 졸업식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습니다.
어느 날 방과 후, 준우가 제 책상으로 왔습니다.
"선생님, 중학교 가면 저 반장 또 할 수 있을까요?"
"그럼. 준우 인기 많으니까 할 수 있겠지."
"선생님, 신성중학교에서 연락 왔어요! 야구부로요!"
신이 난 얼굴이었습니다.
"축하한다. 그런데 준우야... 선생님이 올 한 해 동안 준우 이름 참 많이 불렀지?"
"네! 선생님이 저 되게 좋아하시나 봐요."
환하게 웃는 얼굴.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준우야, 혹시... 네가 친구들이나 선생님한테 미안했던 적은 없었어?"
"음... 지난번에 야구공 맞은 애요? 그때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아....중학교 가서도 건강하게 지내렴."
"네! 선생님도 건강하세요!"
졸업식 날, 준우는 웃으며 교문을 나섰습니다. 밝고 당당하게.
저는 준우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준우가 몇 년 후, 몇십 년 후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능력은 있지만 공감은 없는 사람.
똑똑하지만 남의 아픔은 모르는 사람.
성공했지만 남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
자기보다 못하면 남을 얕잡아보는 사람.
자기만큼 성공하지 못하면 열심히 안해서 그렇다는 사람.
그리고 이것도 압니다. 교실에서 준우에게 쏟았던 시간 때문에 조용히 공부하던 다른 스물여덟 명에게는 충분히 관심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그것이 제가 교사로서 느끼는 가장 큰 좌절입니다.
때로는 교육이 안 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답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준우가 꼭 괜찮은 어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