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답답해서 말이지.
봄이 오긴 했나 보다.
빠른 자가용을 탄 속도로 봄을 만나게 되는 남쪽에 비해 느려 터진 자전거의 속도로 봄을 만나게 되는 북쪽에 사는 우리 집 주변에도 온갖 잡풀들이 봄이 온 걸 알고 얼굴을 내밀었고 20년 전에 남편이 심었던 문배나무도 하얀 꽃을 피웠다.
그러고 보니 꽃과 나무를 좋아했던 남편은 이십 년 전 즈음에도 집 주변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었구나.
남편이 오래전에 심은 나무들은 집 주변에 여러 종류가 꽤 있는데 그중에서도
봄이 되면 하얀 꽃을 피우고 당당하게 서있는 문배나무를 볼 때마다 나무가 가진 품격이 기품 있다고 생각되어서 문배나무를 스칠 때마다 저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그 녀석 진짜 잘 생겼다. 네가 우리 집 여러 나무 중에서 최고로 갑이다.'
'넌 어떻게 한 자리만 차지하고 이십 년을 버티고 있었는데 그렇게 멋있기까지 하고 난리냐. 내가 만약 너처럼 한 자리만 차지하고 이십 년을 버텼다면 내 주변은 온통 쓰레기 매립지가 됐을 텐데.'
요즘 들어 부쩍 내 삶이 헛되고 볼품없는 낙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늘 채워지지 않고 허기지고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게 다라고?
남들도 다 그렇고 그렇게 사는 거라고?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남들이 서있는 자리는 찬란하고 해맑아 보이는데 내가 서있는 내 자리만 우중충하고 거기다가 햇볕도 안 드는 것 같아.
이런 날은 속 시원하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에 보태자면 네가 지금 서있는 자리의 문제점은 이것이고 개선할 점은 저것이고.....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자세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더 잘하려고 노력 같은 터무니없는 행동 하지 말고 지금 그대로를 실컷 즐기라고 빈말이라도 다정하게 건네주는 상대가 있었으면 더 좋겠다.
힘들 때는 그냥 흐르는 물처럼 물이 흐르는 속도에 몸을 맡기고 생각 없이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처럼 날씨도 따뜻해지고 문배나무 꽃피는 살만한 봄이 됐음인지 점 점 생각도 많아진다.
이봐, 잘 난 이웃 문배나무야?
나도 너처럼 뽀대 나진 않지만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 맞지?
내가 하도 답답해서 별걸 다 너한테 묻는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