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길도 있었구나
수술로 췌장을 전부 잘라낸 남편의 병원생활은 거두절미하고 하루 네 번의 혈당체크와 하루 네 번의 인슐린 주사 맞는 일정만으로도 정신이 오락가락할 만큼 버거웠다.
병원에서야 간호사가 시간에 맞춰 혈당체크와 인슐린 주사를 놔주었지만 집에 돌아가면 오롯이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데 이걸 다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을지 시작도 해보기 전에 걱정으로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저어. 선생님. 이번에 남편이 퇴원을 하면 암 요양병원에 몇 달만 입원해서 회복을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내 말에 남편의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선생님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병원에서 퇴원하면 집으로 가야지 왜 요양병원으로 가려고 해요?"
"제가 일을 해서 집에 남편 혼자 있어야 하고 집에서는 딱히 돌봐줄 사람도 없고요."
내 말을 들은 의사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냥 집으로 가세요. 암 환자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내 집이에요."
"그렇지만 병원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병원이 가장 나쁜 환경이에요. 나쁜 균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병원이니까 암 환자에게 좋을 리가 없어요."
듣고 보니 의사선생님의 말이 백번 다 맞는 말이라는 생각에 요양병원에 기댈 생각을 접고, 퇴원 후에는 암 환자에게 가장 좋은 환경이라는 내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퇴원하는 수속 절차는 허둥지둥 어리숙 하게 진행되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형병원에서 퇴원하는 일을 겪다 보니 시행착오도 만만찮았다.
허긴, 누가 암수술을 미리 예행연습하고 병원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을 테니 다들 나와 비슷하거나 나와 다름없겠지.
그런데 병원에 처음 입원할 때는 간단하게 가방 두 개 정도 들고 들어온 것 같은데, 입원기간 내내 직장과 병원을 오가면서 필요할 때마다 하루 몇 개씩 주워 나른 짐들이 병원생활 보름 만에 웬만한 자취 짐은 저리 가라 할 만큼 불어나버렸다.
남편의 짧은 입원 기간 내에 불어난 짐짝들을 보니 오병이어의 기적이 따로 없다.
헉, 도대체 이 많은 짐들이 다 어디서 모인 걸까?
한 번 쓰자고 집에서 데려온 생필품이나 나의 자질구레한 간식거리들, 별로 읽지도 못했으면서 욕심껏 잔뜩 짊어지고 왔던 암에 관련된 서적들.
입원기간 내내 매일 조금씩 비우거나 버리고 남은 공간을 채워 넣는 연습을 하고 살았더라면 퇴원하는 마당에 이런 실전에서 바람직한 삶의 자세가 빛을 발했겠지만 나는 그동안 비우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무엇이 그리 허기졌는지 가득 채워 넣기만 했나 보다.
잘 걷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서 짐들을 먼저 자동차에 옮겨 싣느라고 7층 병실에서 주차장까지 여러 번 왕복을 하고 나니 출발도 하기 전에 기진맥진이다.
내가 짐을 옮기느라 여러 번 주차장까지 왕복을 하는 사이에 남편은 병실에서 그런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편의 얼굴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가 어떤 표정인지 감이 잡힌다.
꽤 슬플 것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지간한 모든 일들은 남편이 다 알아서 했고 나는 그림자처럼 남편을 따라다니며 누리는 역할만 해왔고 남편은 알라딘 요술램프 속의 지니 처럼 내가 말만하면 알아서 뚝딱 해결해줬던 능력자였는데.
암에 걸리고 나니 남편과 나의 역할이 순식간에 뒤바뀐 듯 하고 우린 둘 다 이런 상황에 빠르게 적응이 안 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이십 년 동안 장롱면허와 비슷한 품격의 지방운전면허로 집 근처만 슬슬 운전하고 돌아다녀도 일 년에 몇 번씩 크고 작은 자동차 사고를 낸 화려한 이력이 있는 내가 낯선 장소인 서울에서, 그것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 갓 수술한 아픈 남편을 태우고 안전운전을 하고 집에까지 무사히 도착해야 하는데 퇴원하는 날에는 설상가상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퇴원하는 남편을 태우고 조심조심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차들이 빨리 달려서 주변 차들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속도를 맞추려고 하면 혹시라도 개복 수술한 환자에게 무리가 갈까 봐 내심 초조하고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남편의 배에 길다랗게 상처 난 개복 수술을 한 부위가 걱정되어서 도로에서 잠깐이라도 쉬어가기로 했다.
아픈 남편이 걱정되어 갓길에 차를 잠깐 세우고 쉬면서 문득 드는 생각.
만약에 말 야.
우리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미련 맞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지 않고 중간 중간에 갓길에서 멈춰 쉬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역주행도 감행 해보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법유턴도 해가면서 다양한 방식의 삶을 살아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지금처럼 암에는 안 걸리지 않았을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리도 단조롭게 앞만 보고 열심히만 살아왔을까?
열심히 산 이유가 암과 만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열심히 산 결과로 암과 만났다고 느껴지니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이라도 암과 만나기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신이 내려준 갓길을 외면하고 그냥 지나치는 실수를 절대로 범하지 않았을 것이며, 벌점을 빵빵하게 먹더라도 불법유턴도 용감하게 감행해보았을 것이고, 기나긴 인생길에서 직진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일찌감치 인정하고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행복함을 만 땅으로 충전하고 온갖 시도를 해보며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즐겼을 것을.
그동안은 무엇 때문에 갓길을 외면하고 직진만이 정답인 줄 알고 살아왔을까?
아프고 나니 별게 다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