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결국 굿을 했다. 그래서 한동안 정신없이 지내며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미신이라며 결사반대를 하던 아빠도 엄마의 종잡을 수 없는 정신적인 증세를 이기지 못했다. 친정 부모님과 우리 부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결국 굿을 했다. 그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행위였다.
이틀 전 엄마가 오셨다. 굿을 하고 꼭 2주 만이었다. 우리 모녀는 엄마가 좋아하는 통삼겹을 구워 먹으러 동네 안 가까운 가게로 향했다.
엄마랑 마주 앉아 주문한 고기가 나오길 기다리다 생각에 잠겼던 내가 말했다.
"엄마 못난 딸년이 엄마 좋아하는 고기를 7년 만에 구워주네? 어떻게 둘이 외식 한번 할 생각도 못했을까? 우리 정말 많이 아팠나 보다."
얘길 듣던 엄마의 눈에 금방 눈물이 핑 돌았다.
"사주에 우린 뒤 바뀌어서 네가 엄마, 내가 딸이라더니 그래서 이 엄마가 늘 애처로워 네가 챙기나 보다. 다음 생엔 우리 반대로 태어나자. "
눈물로 촉촉해진 엄마의 말에 분위기를 바꾸려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다시 태어나서 또 이 짓을 하자고? 우리 다음 생엔 부부로 태어나서 서로 사랑하면서 마음 편히 살자 엄마."
우리 모녀는 마음속 흐르는 눈물을 대신해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정신적으로 같은 시기에 많이 아팠던 우리는 밥을 먹어야 되는지 무얼 해야 되는지 조차 잘 모를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뇌 스스로가 거부하여 지워진 기억들도 많다.
굿을 해서인지 우연 인지는 잘 모르지만 엄마는 10년 만에 편안한 모습이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상관없었다. 엄마는 편안해졌고 그런 엄마를 보면 나도 편안해졌다.
15살 때부터 공장 일을 하며 노부모와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어린 나이에 일찍 부모를 여의어 엄마의 빈지리가 사무치게 그리웠을 내 엄마. 그런 가여운 엄마에게 이런 나라도 엄마가 되어줄 수 있다니 사주 따위 미신 이어도 상관없었다. 엄마의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음에 마냥 감사했다.
10년 만에 찾아온 이 평화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잘 모르겠다. 이 고요한 평화가 아주 오래도록 유지되길 바라며 엄마가 꼭 아셨으면 하는 것이 있다.
모든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으며, 우리가 믿고자 하는 신도 언제나 내 깊은 무의식 속에 있다는 것을.
찾고 싶은 믿음도, 찾고 싶은 답도 언제나 깊은 무의식 속의 나에게 있다. 이제라도 그녀가 진정한 '나'를 찾아 아프지 않고 그저 편안하길 간절히 바란다.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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