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절친을 도와주려고 했던 행동으로 오랜 시간 배신과 따돌림을 겪으면서, 초등학교 삼 학년 어린 나이부터 인간관계의 회의를 느꼈고 사람을 믿지 못하는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여파로 정의가 무엇인지, 진정한 친구가 있을 수 있는지 등 인간관계에 관하여 답도 없는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때의 상처는 무의식에 숨어들어 성인이 되어서까지 저를 두고두고 괴롭혔고, 언제나 사방에 벽을 치고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 벽은 허물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욱 두터워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사람들의 평가였습니다. 저는 늘 사교성이 좋고 재미있다는 평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가족들과 지인들의 상담 전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난생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지고, 모르는 사람을 갑자기 초대하는 상황에서도 항상 오케이 하는 성격이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를 향한 그런 평가에도 제 주변엔 지인들이 몇 없습니다.
저도 가끔씩 이런 상황들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지만, 깊고 길게 가는 대인관계가 제겐 참 어려운 숙제 같습니다. 이럴 땐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길 좋아하는 이 마음이 진심인지 가심인지 스스로 헷갈리거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 또한 상처를 숨기고자 만든 자기방어의 일환인 가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늘 풀 수 없는 내면의 물음에 분명하게 돌아오는 답은 두 가지뿐입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또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늘 이런 대인관계를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나의 주변에 친구들이 많지 않다는 것에 여러 의미를 두고 스스로 분석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제 머릿속을 가득 채워 어지럽힐 땐, 제 성격을 탓하며 스스로를 참 많이도 괴롭혔습니다. 시시때때로 괴롭히는 생각들에도 전혀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나의 사람들을 갖고 싶었지만 여전히 그 사람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혼 후 대인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아마도 평생 내편이 생겼다는 믿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신랑의 직장을 따라 전혀 연고도 없는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이른 나이가 아녔음에 결혼을 하고 바로 이세 계획을 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두 달만에 아기천사가 우리 부부를 찾아와 주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 저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바로 임신을 하고 태교에 집중하여 외롭고 무료할 시간도 없었기에 일부로 아는 사람을 만들려고도 들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어느새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면서 이곳에서도 또다시 인간관계가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통해 등. 하원 때 만나는 사람들,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아파트 동주민, 아파트 안 마트 사장님 정도였습니다.
벌써 삼 년은 더 되었지만 코로나전엔 아이들을 매개로 서로의 집에 오가기도 할 정도로 가까워진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네모 네모한 저의 생각들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조금은 둥글어지고 있는 듯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인간관계가 이제야 편해졌구나 하는 착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도를 넘는 말과 행동들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저에게 날아와 박혔습니다. 사람 마음이 다 내 마음 같지 않구나 하는 것을 새삼 또다시 각성하게 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어느새 우리 집은 사랑방이 되어버렸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무엇을 바라고 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알고 있던 나로선 사람들의 행동들이 발아래 차이는 돌멩이처럼 걸리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집에 모이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본인의 집에서 보는 것은 아주 귀찮아하며 은근히 피했고, 신랑을 많이 위해준다는 이유로 신랑을 어떤 방법으로 조련하라는 말도 늘상 하곤 했습니다. 내 집에 아홉 번 오다가 당신들 집에 한 번 가면 내 아이에게 본인 집의 룰을 꼭 지키도록 했습니다. 가령 식탁에서 내려가면 더 이상 과자를 먹지 못하게 하거나 장난감은 한방에서만 가지고 놀게 하는 식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집에 머무르는 동안은 찍찍이 밀대로 먼지를 붙이며 사람 마음을 멀리도 내쫓았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게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저는 다시금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은 왜 일방적으로 예의를 차리고, 왜 일방적으로 마음을 주기만 하는 관계가 반복되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에 치가 떨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또다시 어릴 적 느꼈던 회의감을 복사하여 붙여 넣기라도 한 듯 익숙한 느낌의 불편함이 제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티가 나지 않게 조금씩 멀리하고 가끔씩 만나는 것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다시 또 단단한 벽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아이가 어린이집도 졸업을 했고, 코로나 사태로 이 년째 서로의 집에도 모이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저는 코로나 시대의 인간관계가 편하기까지 합니다.
'결혼식을 할 때 찾아와 주는 하객수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제 결혼식 때 그 부분으로 많이 씁쓸하고 당혹스러웠던 기억도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한해, 두해 지나면서 인간관계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고 깨닭게 되는 것이 많습니다. 주변에 지인이 꽤 많았던 신랑의 경우도 결혼식 전과 후로 인간관계가 싹 한번 정리가 되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경제적 조건, 계급, 나이, 성별, 성격, 학력 등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사람이 좋아서 만났던 때의 인연도 영원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결혼식을 해 보신 분이시라면 다들 큰일을 한 번 치르면서 얻게 되는 성찰과 교훈이 있을 것입니다.
내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꼭 와야 할 사람, 꼭 와주리라 믿었던 사람, 와주겠지 기대했던 사람, 내가 갔기 때문에 반대로 와주어야 하는 사람. 이분들 중 의외로 와주지 않아서 당혹스럽고 서운하기도 한경우를 겪습니다. 또 반대로 얼굴만 알았거나, 전혀 와주지 않아도 되거나, 기대하지 않은 분들이 와서 축의금을 많이 주거나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가기도 합니다. 이때 일차적으로 내 사람, 아닌 사람인 인간관계로 저절로 정리를 당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 후, 어깨에 늘어난 책임의 무게를 지탱하며 삶에 찌들다 보니 지인들과는 연락조차 하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이 몇 년 지속되다 보면 인간관계가 이차로 좁혀지는 것을 느낍니다.
나이에 숫자가 하나씩 더해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겪고 느끼면서, 어릴 땐 제가 인간관계의 환상이 참 컸던 것을 알게 됩니다. 살다 보면 극단적으로 사람의 온기가 절실할 때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 혈육조차 나에게 있어주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조금은 충격적인 일들을 겪으면서 저는 느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진정한 내 사람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내 옆에 존재한다면 그것으로 인간관계는 만족하여도 되는 게 아닐까 하고요.
저는 더 이상 어린날의 트라우마로 인한 인간관계에 집착하거나 고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가시나무(가수 조성모)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끝이 없는 비포장길이라 여겨지던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그래도 아주 조금은 생각도, 마음도 다듬어졌다고 감히 말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시가 많아 가시나무인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찔릴 것을 두려워 않고 다가와 머물러주는 나의 작은 새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있어 칼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에도 춥지 않고, 외롭지 않음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