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불안이 얼굴을 드러냈던 날
삐빅- 삐빅- 삐빅- 삐빅-
불안정한 기계음보다 한 발 앞선 확신이었다. 순간 물가에 튀어나와 흙바닥 위를 파닥이는 물고기처럼 뱃속 아이의 긴급한 시그널을 느낄 수 있었다.
다급히 응급수술이 시작됐다. 마치 삶은 고깃덩이 같았던 무감각의 하반신과는 달리 온전히 깨어 있었던 정신 덕분인지 평생 몰랐었다면 오히려 약이었을, 그날의 모든 상황을 나는 기억한다.
불안한 듯 긴박하게 바뀌어가던 아이의 심박동 기계음. 그리곤 조금의 시차를 두고 이란성쌍둥이처럼 닮고 태어난 나의 기계음.
삐빅- 삐빅- 삐빅- 삐빅-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마취약 부작용이 불러온 혈압 하강, 그로 인한 호흡곤란.
첫 아이를 만났던 소중한 날, 병적 수준으로 찾아온 외상 후 스트레스, 공황장애, 대인기피, 산후 우울증.
그렇게 불안은,
내게 오랫동안 숨겨왔던 그 얼굴을 드디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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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생김새
그날부터였다.
호흡, 생각, 삶 내게 오는 그 모든 것이 두려워진 건.
가족, 친구, 지인 등 그 누구와도 마주하는 게 싫었고, 어떠한 생각을 한다던지, 숨을 쉬는 것처럼 아주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행위조차 두려움으로 변해 나를 옥죄었다.
평소 꼼꼼한 성격 탓에 뭐든 일일이 적어놓고 되뇌지 않아도 항상 '때'보다 빨리 해냈던 내가, 단순한 생각과 제스처조차 두려워 떨고 있었다. 당연히 깊은 생각과 행동들은 더욱 기피하게 되었다.
이러한 증상들에 시달리던 난, 출산을 축하해주러 오겠다던 모든 연락과 지인들의 방문을 마다했다. 병적으로 다소 심각했던 증상들은 산후우울증이 호전되고서도 최근까지 이어져 조금씩 삶에 영향을 줬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아이들의 유치원 준비물을 챙겨 보낸다던지, 어떤 요일은 특별히 활동복을 단체로 입어야 한다던지 하는 사소한 챙김 조차 스스로 기억해서 챙기는 것이 힘들었다.
그렇게 넘쳐서 흘러내리던 생각을 꾸역꾸역 주어 담던 아이는 시간이 흘러, 결국엔 스스가 멈추지 못한 생각들에게 집어삼켜졌다. 그래서 나는 점점 생각과 의지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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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건, 그런 하루하루의 불안 중에도 시댁엘 가면 병적 불안증이 조금은 사그라들곤 했다는 것이다. 하루 3시간 정도 겨우 잘 수 있었던 잠을 모조리 몰아 자고, 정신을 빼놓고 달콤한 잠에 파묻힐 수 있었던 곳. 어른다운 어른, 뭐든 자신감 넘치고, 현명하신 어머니 옆이 나는 그렇게도 든든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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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의 초대
어느새 결혼 7년 차, 그동안은 시부모님 두 분이 쉬는 날이 맞지 않으시다는 이유로 한 번도 내 집에 초대한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이 내게는 참으로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주었다. 내 집에 초대하지 않아도 되는 지극히 타당한 핑계였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몇십 년 만에 어머니가 직장을 옮기셨다. 그 계기로 인해 드디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쉬는 날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문득,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너무나도 잘 버텨주었던 그 핑계가 끝날 즈음, 나의 상태 또한 많이 호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용기 내어 시부모님, 시 할머님, 시고모님을 집으로 초대했다.
격식을 갖춘 8인 상은 단 한 번도 차려 본 적이 없던 나는 약속을 잡은 그날부터, 당일이 되기까지의 3주 동안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했다. 차라리 시간이 후다닥 지나 빨리 약속 당일이 되길 바랬다.
약속 하루 전,
소고기 뭇국, 제육볶음(쌈), 계란말이, 시금치, 메추리알, 깻잎, 깍두기, 멸치볶음, 잡채, 산적(전), 명란젓.
이렇게 차려 낼 음식을 대충 종이에 적어 필요한 재료들을 장 봐놓고, 할 수 있는 반찬들을 우선적으로 해뒀다. 그리곤 다음날 아침에 해야 할 음식들의 재료를 모두 손질해놓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약속 당일,
결국엔 시부모님이 도착하는 시간에 딱 맞춰 적어 놓은 음식들을 다 차리는 데 성공했다.
어머니께서만 유일하게 내 집엘 와보셨는데, 그땐 아이를 놓고 얼마 안 된 터라 음식 솜씨도 없었을뿐더러 산후우울증이 심각한 상태였기 때문에 음식을 직접 해드릴 상황도 되지 못했다. 몸조리 기간이란 핑계가 좋았다. 어머니께서는 일일이 싸들고 오신 재료로 손수 밥을 차려주시곤 했다.
단 한 번도 며느리의 음식을 본 적도, 맛본 적도 없으시니 시 할머님과 시고모님까지 모시고 오시며 분명 나보다도 훨씬 마음을 쓰고, 신경을 쓰셨을 것이 분명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해. 김치랑 밥 먹음 되고.. 알았지?"
내겐 '대충' 하라는 말만 되풀이하시곤 정작 자신은 음식 할 재료며 물김치, 소불고기 등등 자신의 냉장고 한 채를 통째로 이고 온 듯한 짐들을 챙겨 오셨다. 역시 내 어머니다.
금방 핏덩이를 낳고선 바로 산후우울증을 앓아 정신을 못 차리던 며느리를 보고 걱정이 참 많았을 내 어머니. 그럼에도 염려를 내비치기보다 그저 믿고 기다려주신, 언제나 깔끔하고 정갈한 손 맛으로 내 정서까지 든든히 채워주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께 이제라도 손수 만든 음식을 대접할 수 있음에 참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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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통하는 법.
점심 끼니를 맞춰 도착하신 시댁 식구들. 준비해 놓은 음식들을 한 상 가득 차려 낸 걸 보시던 어머니가 나의 등을 토닥이며 꼭 안아주신다.
"아이고 아이들 데리고 잡채 하고 전하고 이 많은 음식을 혼자 언제 다했니. 수고했네. 장하다 우리 미혜."
'장하다'는 세 글자가 더없이 뭉클하게 다가왔던 순간이다. 그 순간 우린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다.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분명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고맙다. 사랑한다.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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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진심을 대접했습니다.
완성한 상차림은 남기지 못했네요.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다행히 음식이 입에들 맞으셔서 연신 맛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어수선한 기분에 3일 동안 잡고 있었던 글을 이제야 마무리하고 올립니다.
왜 이렇게까지 안 써졌는지 모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