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착하지 않아도 괜찮아.
감사합니다.
그랬었다. 착한 아이여야만 했었다.
사고를 치는 언니들, 음주 운전이 습관이시던 아버지, 가난이 주는 서글픔, 치매를 앓고 계시던 할아버지, 자살을 시도하던 엄마.
어린 나는 이 모든 조건들이 불러들이던 두려움에 겁을 집어먹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형태 없는 검은 존재가 늘 내 그림자로 둔갑해 나를 쫓아다녔다. 그 존재는 너무나 약삭빠르게 스며들어 스스로 인식했을 땐 이미 종잡을 수 없는 큰 공포로 변해있었다.
어린 나로선 엄마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를 유지하기 위해, 두려움이란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모님의 깨진 마음의 독에 계속하여 기쁨을 채워 넣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명석하지도 않은 나는 억지스러운 우수 성적표를 만들어 내야 했고, 차녀임에도 장녀 노릇을 해야 했으며, 가족들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했어야 했고, 누구한테도 밉보이지 않는 착한 아이여야 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친절한 사람인가요?"
나는 며칠 전 어느 책의 한 구절에서 던져진 이 질문에 걸려 넘어졌다. 바삐 이동하던 생각들이 경고도 없이 켜진 빨간불에 급정지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나에겐 너무나 충격적인 질문이었다.
살아오면서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소중한 것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 불러온 자기 방어 중 하나였으리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스스로를 지독하게도 괴롭혔다. 끝없이 채찍질을 해야 했고, 스스로의 마음은 숨기고 무시했다.
타인의 기쁨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마음의 안정을 찾던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후로도 정확히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스스로를 사랑해 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서른 중반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기로 결심한 지금 이제야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았다.
나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불친절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젠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이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어쩌다 걸려 넘어진 질문에서 땅을 짚고 일어서는 방법을 깨달았다.
언제나 어리석은 나를 일깨워주는, 나에게 던져지는 세상 모든 질문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