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 아이가 조금은 정의롭지 않길 바랍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스물다섯 살 즈음 한의원에 근무하게 되었다. 평소 허리가 아파서 다니던 한의원 원장님의 추천이었다.
그곳엔 나의 친언니가 근무 중이었다.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된 언니와 나는 좋아서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론 불편할까 걱정이 되어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내가 맡은 일은 접수. 총무 일이었다. 꼼꼼하고 똑 부러지는 성격에 맞게 일은 아주 수월하게 늘었다. 룰을 빨리 이해하고 환자분들과도 금방 친해지자 원장님도 매우 흡족해하셨다. 언니도 그제야 맘 편히 좋아할 수 있었다.
어느새 일 년을 근무했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언니와의 관계는 멀어졌다.
"누구는 말 못 해서 니 같이 말 안 하는지 아나?"
언니가 말했다.
나는 막내이고 네 명의 직원들은 모두 나보다 언니들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별난 막내였다. 병원 설립 후 모두 다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고 있던 무언의 룰을 어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엘 가나 왜 이렇게 무언의 룰을 어기고 싶은 걸까?
퇴근시간이 되자 모두들 청소를 하고 있었다. 제일 나이 많은 A언니가 환자 대기석에 앉았다. A언니는 등치가 꽤나 있었기에 바지보단 늘 편한 긴치마를 입었다.
A언니가 의자에 앉자 익숙한 듯 원장님이 다리를 베개 삼아 눕는다.
" A야 오늘도 팬티 빨간색이냐?"
원장님이 말했다. 그러자 A언니는 "아이참 원장님 몰라요~!" 하며 마저 귀를 파 준다. 마치 내가 희롱을 당하는 듯하여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무안하고 나쁜 기분을 억누르지 못하여 결국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 둘 다 경찰서에 신고해야겠는데요? 하하"
둘은 자주 성희롱을 하고 즐기는 듯 보였다. 나는 그때마다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며 소심한 말로, 소심한 복수를 하곤 했다. 내가 입사하기 전까지 원장님은 A언니 가슴까지 만지며 장난을 쳤다는 건 안 비밀이다.
본인 입으로 증명한바 A언니는 원나잇도 즐기고 문란했다. 자기 입으로 말을 해 주니 모를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원장님이 비 오는 날 불렀는데 안 갔잖아 변태"라는 말을 했다. 그녀도 그런 걸 은근히 즐기는 듯 보였다. 문란한 말은 수도 없이 많이 했지만 차마 글로 다 쓰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직원들은 모두 30분 전에 출근하여 청소를 하고 업무 준비 중이었다. 그날도 A언니는 지각을 했다. 그녀는 눈곱도 떼지 않은 채 출근을 하고, 직원들이 일을 시작하는 동안 3층 원장님 댁에 올라가 샤워를 하고 내려오는 건 다반사였다. 지각을 했음에도 여유롭게 직원 대기실에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화장도 했다. 365일 다이어트 중인 그녀는 배가 고픈지 어김없이 3층을 들락날락하면서 밥을 먹고 내려온다. 그곳에선 내가 이해하기 힘든 다른 차원의 일들이 일어났다. 그런 놀라운 일들이 어느새 내겐 너무도 익숙한 관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A언니는 조울증이 심했다. 기분이 좋으면 웃으면서 세상 다정하게 대했고, 기분이 나쁘면 또 금방 얼굴을 바꿔 히스테리를 부리는 게 그녀의 일과였다. 직원들은 늘 자신의 일보다 A언니 비위 맞추는 일에 더욱 바빠 보였다. 앞에선 파리처럼 비비며 비위나 맞추면서 돌아서면 헐뜯는 그런 언니들의 아부가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에게 절대 비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별난 사람이었다.
하루는 A언니가 차트를 들고 나에게 왔다. 이유 없이 차트를 차락 던지고 쌩하니 찬바람을 날리며 사라졌다. 내가 고작 너의 감정 쓰레기통인가? 기분이 팍 상했다. 보험을 다 친 차트를 들고 A언니에게로 갔다. 그녀에게 나도 차트를 던졌다.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십 년 묵은 체증이 소화되는 느낌일까? A언니는 강약약강인 사람이었다. 다른 직원들에겐 기분대로 행동하고 원장님 눈치도 안 보는 그녀가 오직 막내인 내 눈치만 봤었다.
그동안 참고 참았지만 유독 그날 감정이 폭발했던 이유가 있었다. A언니에게 일 년 급여가 오르지 않을 것이란 걸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늘 이런 식이었다. 원장님은 A언니에게만 상의하고 남은 직원들에게는 통보만 하는 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삼 년 동안 급여 인상이 무마되었다고 했다. 나는 직원들이 이해가지 않고 멍청하게까지 느껴졌다. 왜 우리 급여가 A언니 입에 달린 건가?
차트를 던지자 눈치가 보인 A언니가 나한테 왔다.
"XX야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뻔뻔함의 도가 지나친 이 말에 나의 인내는 폭발하고 말았다.
"네 언니 때문에 기분 안 좋은데요? 언니가 먼저 저한테 차트를 던졌잖아요. 언니는 뭐 기분 나쁜 일 있어요? 제가 뭐 잘못했어요?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할게요. 언니가 동의해서 언니한테 피해가 가는 건 제가 신경 안 쓰겠어요. 하지만 언니 동의 한마디에 다른 직원들이 피해를 받는 건 앞으로 이렇게 말해주세요. 원장님 저는 괜찮지만 다른 직원들에게도 한 번만 여쭤봐 주세요. 라구요."
그 일로 원장님께선 면담을 요청하셨다. 원장님의 물음에 A언니의 만행을 얘기하고 불공정한 급여에 대하여 개선을 부탁드렸다. 원장님이 말했다.
"A가 그렇게 행동하는 건 나도 다 알고 있었다. 네가 나중에 이런 자리에 와 보면 알겠지만 그래도 계속 잘 다녀준 A를 나는 그만두게 할 수는 없다."
돌려서 말하셨지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란 말을 못 알아들을 리 없는 나였다. 오너 입장에선 일 잘하는 사람보다 입안의 혀처럼 놀아주는 직원이 더 필요한 것이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자 친언니가 말했다.
"누구는 말 못 해서 니 같이 말 안 하는지 아나?"
충격적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언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됐었다.
그 일로 나는 일을 그만뒀다. 내 발로 나온 것 같지만 나는 잘렸다. 절 주인이 떠나라는 무언의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이런 무언의 룰을 자주 어긴다. 그것이 내가 배우고 자란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정의란 곧 자존심이었다. 나란 사람은 돈 없인 살아도 자존심 없인 못살았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비굴하게 살기는 싫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면 복이 오고, 누구나 행한 대로 돌려받다는 교훈은 전래 동화부터 시작해서 여러 책 속, 그리고 어른들께 수없이 질릴 만큼 들었다. 하지만 다 거짓말이었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삶에서는 그랬다.
나는 정직하고 바르게.. 정의롭게 살면 살 수록 힘들어졌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두 힘들어졌다.
살아오면서 그때 그 직원들처럼 성희롱도 견뎌내고, 몇 년간 급여가 오르지 않아도 참아내고, 아부라도 잘하는 무기(?)를 지녔었다면 나는 훨씬 덜 힘들게 살아왔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나의 얘기만이 아니다. 이 사회는 바른말하는 사람, 정의로운 사람을 불편해한다. 심지어 정의로운 사람들이 따돌려지는 문화를 자주 목격한다.
인간이라면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내 아이들에게 내가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칠 수 있을까? 정의로움에도 정도가 있는 것일까?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정의를 가르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