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도 해보고
미친 듯 빠져도 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나는 당신의 얼굴에 난 거무튀튀한 기미와 같은 불안과 우울을 안고 산다. 어느 정신과 전문의 말을 빌리자면 산후우울증, 갱년기 우울증 모두 뿌리 깊은 우울을 가진 사람일수록 호르몬 변화에 취약하여 더욱 쉽게 찾아온다고.
그래서일까. 난 두 번의 출산 모두 극단적인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15시간 진통에도 자궁문이 열리지 않은 탓인지 뱃속의 태아는 호흡 불안정을 겪었고 급히 응급 수술에 들어가야 했다. 그런 나는 준비도 채 안된 마음으로 갑작스러운 수술을 통해 출산을 해야 했고, 수술 과정 중 마취약 부작용으로 혈압이 급 하강했다. 하반신 마취 수술이었으므로 정신이 말짱히 깨어 있는 상태로 호흡곤란을 겪었던 것. 아이와 나 연속적인 호흡 불안을 경험하곤 도저히 온전한 정신 상태론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 결국 충격과 극도의 불안을 겪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병까지 함께 얻었다.
운이 없는 것이라고 봐야 할까. 나는 두 번의 출산 모두 같은 과정을 거쳤고, 출산만 하면 산후우울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함께 이겨내야 했다. 첫째 때 1년, 둘째 때 6개월 꾸준히 정신과 치료를 했으며 이젠 증상이 많이 호전되어 혼자서 아이들을 돌볼 정도가 되었지만 당시엔 보호자 한 명이 밤낮으로 내 옆에 붙어 있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둘째를 낳고 4년 정도가 지난 지금도 가끔은 약을 타서 먹고 있기 때문에 사실 여전히 완치라고는 말할 수 없는 상태다.
결국,
마주 보고야
한 걸음을 뗄 수 있더라.
나는 그렇더라.
요 며칠 그때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아마도 신랑이 입원을 하고 여러 날 집을 비울 걸 생각하니 다시 불안증이 급 올라온 것이리라.
그동안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고통과 두려움을 대상으로 매일 싸워 왔다. 두려움으로부터 한 발짝을 떼어 놓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공포스러운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으리라. 그럼에도 난 한 걸음씩 걸어야만 했다. 한걸음의 용기를 내딛는 날이 오늘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난 더욱더 두꺼운 껍질의 알에 갇힐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집중하는 것, 티브이를 보는 것, 노래를 듣는 것, 집 안을 환기시키는 것, 소음을 듣는 것, 모래알 같은 밥을 씹어 넘기는 것,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 진료를 받는 것, 치료를 받는 것, 건강 검진을 받는 것, 신랑을 외박 보내고 혼자 아이들과 1박, 2박 생활하는 것, 낮 시간 아무도 없는 집에 오롯이 혼자인 것... 그리고...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행동 하나하나에 난 용기가 필요했고, 두려움에 떨 던 몸을 조금씩이라도 움직여 걸어 내야만 했다. 이 사소하고도 당연한 것들을 언제 다시 내 스스로 할 수 있을지 앞이 캄캄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던 그런 때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출구를 벗어난 게 아니며 어는 한 구간을 자나고 있을 뿐이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연습. 첫날보다 둘째 날이, 둘째 날 보단 셋째 날이 조금 더 나은 것 같다. 늘 그래 왔듯 이번에도 난 잘할 수 있다. 이번 상황을 또 잘 겪어 내고 나면 나는 조금 더 예전의 평범함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
결혼 후, 정신적인 병을 얻은 후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아이들과 혼자인 적이 없었다. 아직 신랑은 적어도 5일 정도는 더 있어야 집으로 돌아와 함께 생활할 것이다.
오늘은 이런 내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나는, 식탁에 앉아 조용히 글을 쓰고 있는 내 몸에서 천천히 일어선다. 그리곤 뒷걸음질로 나와 내 등 뒤에 선다. 묵묵히 앉아 그저 치유를 끄적이고 있는 나를 힘껏 안아주곤 토닥인다.
너 정말 대견하고 멋지다고,
정말 수고했다고, 그리고 정말 정말 고맙다고.
작가님들도 오늘은 유체이탈을 경험하듯 스스로를 안아주고 토닥여 주면 어떨까요.
대견하다, 수고했다, 고맙다.
그리고 또 고맙다.